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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예(濊)”와 “맥(貊)”이 각각 존재했었다

윤여동 2018. 8. 3. 21:36

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이 각각 존재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와 맥() 그리고 예맥(濊貊)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조금도 헷갈릴 필요가 없다.

  예(,)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고,

  맥()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발해 북쪽 영성(寧城), 능원(凌源)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그리하여 이 예()와 맥() 두 나라는 환웅국 시절 환웅천왕의 왕비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두 세력이었다.

  환웅설화에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어보려고 하다가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웅녀이야기는 바로 호랑이를 신으로 섬기는 예()족 처녀와 곰을 신으로 섬기는 맥()족 처녀가 환웅천왕의 왕비자리를 놓고 경쟁하다가 최종으로 맥족 처녀가 왕비로 간택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위만조선 때에 이르면 이 예()는 위만조선의 영향권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한()나라의 요동군(遼東郡)으로 복속하기를 원하게 되자 전한(前漢 : 서한)의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 滄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얼마 후 파했다는 곳이다.

  맥()은 위만조선에 완전히 복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의 국호는 진번국(眞番國)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랬다가 기원전 108년에 이르러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처음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할 때 위만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성(王儉城, 왕험성이라고도 한다) 일원은 낙랑군(樂浪郡)이 되고, 진번국은 진번군(眞番郡)이 되며, 임둔국은 임둔군(臨屯郡)이 되고, 옥저는 초기 현토군(玄菟郡)이 된다.

  이때 창해군 예()는 위만조선에 복속된 상태가 아닌 독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할 때 4군의 영역 밖에 위치하게 되는데, 기원전 86년에 이르러 졸본부여의 동명왕에게 쫓긴 해부루가 북쪽으로 도망쳐 와서 그 창해군 예()의 땅을 점거하고 동부여(東扶餘)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창해군 예()는 살던 땅을 잃고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자 전한(前漢)에서는 한()나라에 우호적인 세력인 창해군 예()를 한사군 중 임둔군 땅으로 옮겨 살게 조치하게 되어 임둔군(臨屯郡)은 폐지되는 것이고, 바로 그 임둔군의 위치에 예(: 동예라고도 부른다)가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임둔군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이다.

 

전한서 권6 무제기 제6 원봉 3(B.C.108) 조를 보면, “여름에 조선이 그 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였다. 그 땅을 낙랑, 임둔, 현토, 진번군으로 만들었다.

[신찬왈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서 장안에서 6,138리 떨어졌고, 15현을 다스린다고 하였고,

진번군의 치소는 삽현(霅縣)으로서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으며, 15현을 다스린다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장안으로부터 임둔군과 진번군까지의 거리를 바꾸어 잘못 기록한 것이다.

즉 진번군이 장안으로부터 6,138리 떨어져 있었고, 임둔군은 장안으로부터 7,640리 떨어져 있었다고 기록했어야 옳았다.

 

  후한서나 삼국지에 나타나는 진한 북쪽의 예(: 동예)가 바로 그것이고, 진번군 역시 같은 시기에 폐지되고, 그 땅에 맥()이 나타나게 되는데, 진번군의 맥족들도 이때의 혼란기를 틈타 맥국(貊國)을 건국했던 듯하다.

 

삼국유사 마한 조를 보면 삼국사를 인용하여, “명주는 옛 예국이다. 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옥새를 얻어 바쳤다. 또 춘주는 옛 우수주인데 곧 옛 맥국이다. 또 혹은 말하기를 지금의 삭주가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예국(濊國)과 맥국(貊國)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 예()가 한반도의 강원도 강릉지역에 위치했었고, ()은 한반도의 강원도 춘천지역에 위치했었다고 하며, 강원도 일원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 예()는 한반도에는 없었고, () 역시 한반도에는 없었으며,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본디 어디에도 없었다. 예맥이라는 말은 예()와 맥()을 합해서 부를 때의 호칭이었을 뿐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 전을 보면, “예(동예)는 북쪽으로 고구려, 옥저, 남쪽으로 진한과 접했다.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으로는 낙랑까지이다. 예와 옥저, 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 땅이었다.................

원봉3년에 이르러 조선(위만조선)을 멸하고 나누어 낙랑, 임둔, 현토, 진번 4군을 설치하였다. .................

소제 시원5년에 이르러 임둔과 진번을 파하여 낙랑, 현토에 붙였다가 현토를 다시 구려로 옮겼으며, 自單單大領已東沃沮濊貊悉屬樂浪 뒤에 그 지역이 넓고 멀어 동쪽의 7개현을 나누어 낙랑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

건무6년에 도위(낙랑동부도위)를 폐지하고 대령(단단대령) 동쪽의 땅을 포기하고 그 거수로서 현후를 산고 모두 때때로 조하하도록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기록 속의 원문인 自單單大領已東沃沮濊貊悉屬樂浪을 해석하기를 단단대령 동쪽의 옥저(沃沮)와 예맥(濊貊)을 모두 낙랑에 속하게 했다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틀린 것으로서, ”단단대령 동쪽의 옥저(沃沮)와 예()와 맥()을 모두 낙랑에 속하게 했다라고 해석해야 옳다. 왜냐하면 세상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예()는 원래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지금의 시라무렌하(서랍목륜하)를 따라 동쪽으로 대흥안령을 넘어 진한(후일의 신라)의 북쪽에 위치한 임둔군 땅 즉 지금의 내몽골 오한기(敖漢旗), 고륜기(庫倫旗) 부근으로 옮겨가서 다시 예()를 재건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예(東濊)라 부르고 이때 창해(蒼海)라는 명칭도 함께 따라 온 것으로 나타나는데, 원래 그 임둔군 땅을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삼국지 예()전을 보면, “예(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했고,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옛날부터 그 나라의 노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들이 고구려와 동종이라고 한다.........언어와 법속은 대개 구려와 같지만 의복은 다름이 있다.........동성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해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주야로 술을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이를 무천(舞天)이라 한다. 또 호랑이를 신으로 섬겨 제사지낸다......낙랑단궁이 그 지방에서 만들어 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전을 보면, “그 나라 노인들은 자기들이 옛날 다른 곳으로부터 망명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그 나라의 옥새에 濊王之印(예왕지인)이란 글자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濊城(예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의 땅이었으나 부여(동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맥()에 대해서는 세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지만 맥은 곧 옛 진번국이었으며 한사군 때의 진번군으로서 삽현(霅縣 : 지금의 어디인지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이 그 치소였다 하는데, 지금의 영성, 능원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이곳 영성, 능원은 사실 옛 환국의 중심지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옛 환국의 중심종족은 바로 이 맥족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맥족의 땅 부근인 아사달(阿斯達)에서 건국하였다가 왕검성(王儉城 :후일의 평양성으로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어 옛 환국 지역인 영성, 능원지역은 정치 중심지의 역할에서는 약간 소외되게 된다.  

  지금 능원 우하량 선사유적지는 바로 환국의 환인, 고조선의 단군 등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왕릉의 능역으로 생각되는 곳인데, 그 후 언젠가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그 맥이 끊어지게 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근래에 이르러 다시 발견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 능원 부근의 선사문화는 옛 환국, 고조선의 문화로서 곰을 신성시 했던 맥족들이 남겨 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사해, 부신 등의 선사유적은 용을 신성시 했던 옛 임둔국(필자주 : 이들은 예족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모르는 다른 종족이다)의 선조들이 남겨놓은 것이며, 옹우특기 적봉 부근의 선사문화도 용을 신성시했던 옥저의 선조들이 남겨 놓은 것으로 생각되므로 이들은 원래는 같은 종족이었을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