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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태조(太祖) 성한왕릉(星漢王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 2019. 12. 21. 23:12

윤여동설 - 태조(太祖) 성한왕릉(星漢王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위 : 한반도 경주오릉]

 

[위 : 태조 성한왕릉으로 비정되는 한반도 경주 봉황대고분]

 

  한반도 역사에서 태조성한왕(太祖星漢王)”이라는 왕은 아직까지 의문의 왕이다.

  한반도 경주에서 출토된 문무왕비편이라는 곳에서는 “.........(二)十五代祖星漢王(........(이)십오대조성한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고, 흥덕왕비편이라는 곳에서도 太祖星漢(태조성한), 二十四代孫(24대손)”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성한왕이라는 왕은 한반도 경주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의 건국시조왕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한왕의 신분에 대하여,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필자는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金日磾)의 고손자 김성(金星)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역사의 진실은 오직 하나 뿐이므로 둘 중의 하나는 잘못 짚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일까?

  성한왕이 김알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라가 한반도 경주를 중심으로 천년 왕조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필자는 신라가 한반도 경주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천년왕조를 이룬 나라였고, 한반도 경주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인 흉노족들이 대륙에서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하자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나라를 세웠던 흉노족왕국의 도읍지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태조 성한왕이라는 왕은 흉노족들이 한반도 경주일원을 차지하고 세웠던 나라(필자주 : 국호와 왕위계승에 대하여는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다)의 건국시조였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필자의 주장은 한반도에 신라는 없었고, 경주지역의 고대 왕릉들은 신라왕릉이 아니라 흉노족왕국의 왕릉들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필자의 주장대로라면, 태조 성한왕의 능도 한반도 경주지역에 조성되었을 것인데, 지금 어느 곳이 성한왕의 능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한반도의 경주오릉을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 알영부인,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릉이라 하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혁거세릉은 담엄사 옆에 있다. 관에서 밭의 개간이나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혁거세왕이 하늘로 올라간 지 7일 뒤에 오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나라사람들이 합쳐서 장사지내려고 하였으나 요괴스런 뱀의 방해로 인하여 각각 장사지내고 드디어 오릉(五陵)이라고 이름하였다한다. 사릉(蛇陵)이라 하기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

 

 

  한반도 경주 오릉을 발굴해 본 일도 없고, 유물이 출토된 적도 없는데 그곳을 신라 혁거세왕릉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 왕릉들을 그렇게 비정했는지 매우 의아하다.

 

[필자주 : 신라 서라벌의 알천은 경주부의 동쪽 5리에 위치하였고, 알천양산촌은 동촌이었다. 그런데 알천양산촌 남쪽에 담엄사(담암사)가 위치하였으며, 담엄사(담암사)의 북쪽에 혁거세릉이 조성되었다. 결국 오릉(사릉)은 서라벌의 동쪽 알천양산촌과 담엄사(담암사) 사이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경주의 나정과 오릉(사릉)은 경주시내의 남쪽에 위치한다. 한반도 경주가 옛 서라벌이었는가 하는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혁거세의 탄생지 양산나정과 혁거세거서간의 능인 오릉(사릉)은 방향자체도 맞지 않게 엉터리로 잘못 비정한 것이라 하겠다]

 

  다만 유추해 본다면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반도 경주지역 왕릉의 실태를 처음 조사할 때 오릉 부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을 것인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이 시조왕릉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 동네 사람들도 확실한 것이야 알 수 없었겠지만, 옛날부터 그곳이 시조왕릉이라고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고,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도읍 서라벌(금성)이라고 생각한 조사자는 오릉이 신라시조혁거세왕릉이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진 시조왕릉이라는 의미는 흉노족왕국의 건국시조인 태조 성한왕이라는 의미였을 지도 모르는데...........ㅉㅉ

 

  또한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의 경주에 있는 고분 중 단일고분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봉황대(鳳凰臺)고분이 혹시 흉노족왕국의 건국시조인 태조 성한왕(星漢王)의 능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건국시조의 왕릉이었기 때문에 온 국력을 기울여 거대하게 조성했고, 그 후대에는 시조왕릉보다 더 크게 봉분을 만들지 않는 전통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그곳은 당시의 왕궁이 위치하고 있었을 한반도 경주 경주읍성의 바로 남쪽 가까이에 위치해 있고,

  시대가 뒤로 갈수록 왕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능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그곳을 발굴해 보아야 확인될 수 있는 문제이겠지만, 봉황대 부근의 고총들에서는 한결같이 최고수준의 흉노계통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봉황대고분이 도굴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곳에서도 최고수준의 흉노계통 유물들이 출토될 것이고, 혹시 태조 성한왕릉이라는 지석이 출토될지도 모르는 일이며, 오릉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경주의 왕릉들은 신라왕릉이 아니라 흉노족왕국의 왕들이 죽어 묻힌 곳이다.

  한반도 경주에서 신라 왕릉을 찾지 마라.

  신라왕릉은 지금의 발해 북쪽, 요하서쪽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