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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고조선(왕검조선)의 아사달(阿斯達), 왕검성(王儉城), 장당경(藏唐京)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20. 1. 25. 00:46

 

윤여동설 -고조선(왕검조선)의 아사달(阿斯達), 왕검성(王儉城), 장당경(藏唐京)의 위치 - 최초공개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으로 추정되는 내몽골 영성현 대명진의 대형토성터. 규모는 가로 약2.1km, 세로 약1.6km이고, 좌표는 동경1190849, 북위413359초이다. 성의 내부면적이 약 100만평쯤 된다]

 

 

 

[아사달성으로 추정되는 내몽골 영성 서쪽 대형토성터의 무너진 성벽과 불탑. 중국학자들은 이곳을 요 중경대정부터라고 하고 있는데, 순 엉터리 비정이다]

 

 

[왕검조선의 두번째 도읍 왕검성(王儉城 :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의 피서산장(열하행궁). 성의 내부가 약 170만평 정도로 매우 넓고 풍광도 아름답다. 과연 옛날 고조선의 단군들과 고구려의 왕들이 살았음직한 경치좋은 곳이다.]

 

[피서산장 성벽. 북사 고구려전에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성으로서 장안성이라고도 하는데, 동서의 폭은 6리로서 산의 굴곡을 따라 성곽을 쌓았고,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았다. 성안에는 오직 군량과 무기만을 저장하여 외적이 침입할 때를 대비하였다가 외적이 침입하면 곧 성안으로 들어가 단단히 지킨다. 왕은 그 한쪽에 궁실을 별도로 지어 놓았는데, 평상시에는 거처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으로서, 고구려 말기에 고구려왕들이 평양성 밖 장안성(長安城)에서 거처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남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위 그림처럼 내몽골 영성현의 서쪽 지금의 노합하변에 아사달이 위치했었고, 그 동쪽에 장당경(당장경)인 영성현(천의진)이 위치했었다.

  규원사화를 보면, "나라를 다스린지 30여년 만에 홍수를 만나 큰 파도가 하늘로 치솟아 요동과 만주의 벌판을 덮어 패수가 넘쳐나고 평양이 물에 잠겨 네 아들을 보내 마땅한 땅을 두루 살피게 했다. 그리하여 아사달 아래 당장(唐壯)의 땅이 선택되었다.............그래서 아사달 아래 움막을 짓고 부루에게 명하여 평양의 (수재당한) 백성들을 모두 데려다가 살리도록 하였다. 다시 물과 땅을 다스려 몇해 후에는 (평양이) 안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당장 역시 살기좋은 낙원이 되어 있었다"라고 당장경을 개척하게된 이유가 평양의 수재당한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후대에 이르러 바로 이 장당경(당장경)이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가 권력을 잃자 맨 처음 낙향했던 곳이었고, 다시 아사달성으로 가서 선조의 제사를 지내며 조용히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후손 대에 이르러 언젠가 맥이 끊어졌을 것이다]

 

 

 

 

[내몽골 영성현의 이상한 형태의 도시계획 : 그들은 영성현(천의진)이 단군과 관련 있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