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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충남 공주(公州)의 지세가 배(舟) 모양일까?

윤여동 2020. 2. 16. 10:08

 

윤여동설 - 한반도 충남 공주(公州)의 지세가 배(舟) 모양일까?

 

                                       [배 모양 지형인 진짜 웅진(하북성 진황도 노룡현)]

 

                                                      [한반도 충남 공주시가지의 지형]

 

[영평부성도로서 이는 지금의 진황도 노룡고성의 무너지기 전 원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대륙백제 웅진성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忠淸道) 공주목(公州牧) 조를 보면,

  〔건치연혁

  본래 백제(百濟)의 웅천(熊川)으로 문주왕(文周王)이 북한산성(北漢山城)에서 이곳으로 옮겨 도읍하였다가 성왕(聖王)에 이르러 남부여(南扶餘)로 옮겼다.

  () 나라 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新羅) 김유신(金庾信)과 백제를 공격하여 멸하고는,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어 군병을 주둔시켰는데, 당 나라 군사가 철수하자 신라가 그 땅을 모두 점유하였다.

  신문왕(神文王)이 웅천주(熊川州)로 고쳐 도독(都督)을 두었고, 경덕왕(景德王)이 웅주(熊州)로 고쳤다

  고려(高麗) 태조(太祖) 23년에 지금 이름(공주)으로 고쳤고, 성종(成宗) 2년에 목()을 두었으며, 14년에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안절군(安節軍)이라 하고, 하남도(河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현종(顯宗) 3년에 절도사를 폐하였고, 9년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고, 충혜왕(忠惠王)의 후()2년에 원() 나라의 평장(平章) 활활치(闊闊赤)의 아내가 된 경화옹주(敬和翁主)의 외향이라 하여 목()으로 승격시켰고, 본조(本朝 : 조선)에서는 그대로 따르다가 세조(世祖) 때에 진()을 두었다.

  [산천]

  주미산(舟尾山) : 주 남쪽 5리에 있다.

  정지산(艇止山) : 주 서북쪽 5리에 있다.

  사공암(沙工巖) : 주 남쪽 3리에 있다.

  세간에서 이르기를, "고을의 형세가 물 위를 가는 배와 같기 때문에 주미(舟尾)ㆍ정지(艇止)ㆍ사공(沙工)으로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공주목 산천 조에 이렇듯 공주 고을의 형세가 물위를 가는 배와 같다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 한반도 충남 공주의 지세는 물위를 가는 배와 같지도 않고, 사공암이라는 바위가 있지도 않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세가 많이 변해버렸고, 사공암도 닳아 없어진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치 배 모양 지세를 갖추고 있다는 진짜 웅진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 옛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의 도읍 웅진(熊津)이었고, 그곳에 있는 노룡고성이 옛 웅진성이었다.

 

☆ 중국에서는 지금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 옛 고죽국이었다고 하고 있는데, 순 엉터리이다.

 

  백제(온조백제)는 원래 대륙에서 건국되어, 그곳 대륙에서 서기660년에 멸망했고, 한반도에는 4세기 중반에 세워진 무광왕의 반도백제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 반도백제가 멸망한 시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원사에 원 지원4(A.D.1267)까지 존재했었다는 백제의 기록이 있으니 혹시 이 기록이 바로 반도백제의 기록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하북성 진황도 노룡이 옛 대륙백제의 진짜 웅진성이었음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조선 초에 이르러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온 후 온조왕이 세운 대륙백제의 기록으로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흔적들을 모두 덮어 씌웠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