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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호태왕(好太王)의 강역확장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3. 7. 08:24

윤여동설 고구려 호태왕(好太王)의 강역확장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명(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銘)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옛날 추모왕이 터를 잡고 창업했도다.

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郞 部卵降世生而有聖德☆☆☆☆

출자는 북부여 천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시니 성덕이 있고...

()命駕巡幸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王臨津言曰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郞鄒牟王

하늘의 명을 받아 남쪽으로 순행하며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날 때 왕이 나루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황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 추모왕이다.

爲我連葭浮龜應聲卽爲連葭浮龜然後造

나를 위하여 갈대로 엮은 거북이여 떠오르라 소리치니 갈대로 엮은 거북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渡於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

강을 건너 비류곡 홀본 서쪽 성산 위에 도읍을 세웠다.

焉不樂世位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黃龍負昇天

왕위에 올라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하늘에서 황룡을 내려 보내와 왕을 영접해가니 왕이 홀본 동쪽언덕에서 황룡을 타고 승천하였다.

顧命世子儒留王以道興治

외아들 유류왕이 도를 일으켜 나라를 다스리고

大朱留王紹承基業

대주류왕이 왕위를 이어 대업의 기초를 튼튼히 했다.

還至十七世孫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号爲永樂太王

세월이 흘러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에 왕위에 올라 영락태왕이라 하였다.

恩澤洽于皇天威武桭被四海掃除☆☆庶寧其業 國富民殷五穀豊熟

황천의 위력으로 온 세상을 깨끗이 하고... 은택을 베푸니 사람들이 편안히 각자의 생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들은 풍년가를 불렀다.

昊天不弔州有九宴駕棄國以甲寅年九月二十九日乙酉遷就山陵於是立碑銘記勳績以示後世...

하늘의 부름을 받으니 그를 잊지 않기 위하여 구연가기국에서 산릉 가까이로 돌을 옮겨 갑인년 929일 을유일에 후세에 볼 수 있도록 훈적을 새겨 비를 세우노라.

 

영락 5(A.D.395) 을미년 조

 

永樂 5年 歲在乙未

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王以碑麗 不歸人 躬率往討

왕이 비려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過富山 負山 至鹽水上

부산과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러

破其三部落 六七百營

세 개 부락 6, 7백 영을 격파하고

牛馬群羊 不可稱數 于是旋駕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하는데

因過襄平道 東來 城 力城 北豐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을 거쳐왔다

王備獵 遊觀土境田獵而還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경치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영락 6(A.D.396) 병신년 조

 

百殘新羅舊是屬民

백잔과 신라는 옛날 (우리의) 속민이었다

由來朝貢

그런 이유로 조공을 바쳐왔다

而(倦)以辛卯年來

그런데 신묘년이래 (조공 바치는 것을) 게을리 하였다

海(浿)破百殘☆☆新羅以爲臣民[필자주 : 바다가 아니라 패수를 건너서....라는 주장이 있는데, 옳아 보인다]

바다(패수)를 건너 백잔...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軍至窠南攻取 壹八城 臼模盧城 各模盧城 于氐利城 ☆☆城 閣彌城 牟盧城 彌沙城 古舍蔦城 阿旦城 古利城 利城 雜濔城 奧利城 勾城 古模耶羅城 須鄒城 ☆☆而耶羅城) 瑑城 於利城 ☆☆城 豆奴城 農賣城 沸城 比利城 彌鄒城 也利城 大山漢城 掃加城 敦拔城 ☆☆☆城 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于婁城 蘇赤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芑城 林城 ☆☆☆ ☆☆☆ ☆利城 就鄒城 拔城 古牟婁城 閏奴城 貫奴城 彡穰城 曾拔城 宗古盧城 仇天城 ☆☆ ☆☆ 逼其國城

우리 군사가 남쪽 그들의 보금자리를 쳐 일팔성(壹八城)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우저리성(于氐利城) ☆☆(☆☆) 각미성(閣彌城) 모로성(牟盧城) 미사성(彌沙城) 고사조성(古舍蔦城) 아단성(阿旦城) 고리성(古利城) 리성(利城) 잡미성(雜濔城) 오리성(奧利城) ()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 수추성(須鄒城) ☆☆(☆☆) 이야라성(而耶羅城) 전성(瑑城) 어리성(於利城) ☆☆(☆☆) 두노성(豆奴城) 농매성(農賣城) 비성(沸城) 비리성(比利城) 미추성(彌鄒城) 야리성(也利城) 대산한성(大山漢城) 소가성(掃加城) 돈발성(敦拔城) ☆☆☆(☆☆☆) 누매성(婁賣城) 산나성(散那城) 나단성(那旦城) 세성(細城) 모루성(牟婁城) 우루성(于婁城) 소적성(蘇赤城) 연루성(燕婁城) 석지리성(析支利城) 암문기성(巖門芑城) 임성(林城) ☆☆☆(☆☆☆) ☆☆☆(☆☆☆) 리성(利城) 취추성(就鄒城) 발성(拔城) 고모루성(古牟婁城) 윤노성(閏奴城) 관노성(貫奴城) 삼양성(彡穰城) 증발성(曾拔城) 종고로성(宗古盧城) 구천성(仇天城) ☆☆(☆☆) ☆☆(☆☆)을 빼앗으며, 그 나라의 국성(國城)인 도읍에 바짝 접근했다

殘不服義 敢出迎戰

()잔주가 태왕의 뜻에 불복하고 감히 나와 맞아 싸웠다

王威赫怒 渡阿利水遣刺迫城

왕이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빠르게 진군시켜 성에 육박하였다

殘兵歸穴 就便圍城

()잔병이 소굴로 돌아가므로 성을 포위했다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잔주가 곤경에 처해 남녀 1천명 세포 1천 필을 바치며

跪王自誓 從今以後永爲奴客

왕 앞에 무릎 꿇고 스스로지금 이후로 영원히 노객이 되어 따르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太王恩赦 始迷之愆錄 其後順之誠

태왕이 은혜를 베풀어 용서하고 약속한대로 그 후 성의 있게 순종하는지를 지켜보겠노라 하였다.

於是得 五十八城 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이때 58개 성, 7백개 촌, 장수와 ()잔주의 동생 그리고 대신 10명을 얻었다

旋師還都

개선하여 도읍으로 돌아왔다

 

영락 8(A.D.398) 무술년 조

 

八年 戊戌 敎遣偏斯觀 帛愼土谷

영락 8년 무술년에 교시로서 군사를 백신의 토곡으로 보내 관찰하게 하였다.

因便抄 得莫斯羅城, 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이로 인하여 막사라성, 가태라곡 남녀 3백인을 잡아왔다.

自此以來 朝貢論事

이로부터 조공을 바치며 업무를 보고하게 되었다.

 

영락 9(A.D.399) 기해년 조

 

九年 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영락 9년 기해년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였다.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왕이 하평양을 순수하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에게 아뢰기를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왜인이 그 나라의 국경에 많이 와서 성과 못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노비로 삼고 있으니 왕에게 귀의하여 명령을 청한다고 하였다.

太王恩慈 稱其忠誠 特遣使還 告以密計

왕이 은혜와 자비로서 그 충성심을 칭찬하고 특별히 사신을 돌려보내면서 밀계를 내렸다.

 

영락 10(A.D.400) 경자년 조

 

十年 庚子 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

영락 10년 경자년에 교시로서 보기병 5만으로서 가서 신라를 구하라 하였다.

從南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倭賊退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까지 왜인으로 가득했는데 관군이 그곳에 이르니 왜적이 퇴각했다.

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安羅人 戌兵拔新羅城

왜의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에 있던 안라인들이 즉시 항복하므로 신라성 군사들을 뽑아 지키게 하고,

城 倭寇大潰 城內十九盡拒隨倭安羅人 戌兵新羅城

..성에서 왜구를 크게 궤멸시키고 성내에서 왜를 따라 항거하는 안라인 열에 아홉을 모두 쳐부수고 신라성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 결락 ..........................

殘倭潰逃 拔城 安羅人 戌兵

나머지 왜구가 궤멸되어 도망치자 성에서 병사를 뽑아 안라인을 지키게 하였다.

昔新羅寐錦 未有身來論事 ☆☆☆☆

옛날에는 신라의 매금이 직접와서 보고하지 않았으나

廣開土境好太王 ☆☆☆☆ 寐錦 家僕勾請 ☆☆☆朝貢

광개토경호태왕이 (신라를 구해준 이후에는) 신라매금이 스스로 가복이라 칭하며 명령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영락 14(A.D.404) 갑진년 조

 

十四年 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石城

영락 14년 갑진년에 왜가 감히 대방 경계를 넘어 들어와 백잔병과 화통하여 석성을 침공하였다.

連船 ☆☆☆

...배를 잇대어...

王躬率往討 從平穰☆☆☆鋒相遇 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기 위하여 평양으로부터 가다가 ...봉에서 마주쳤다.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왕이 적을 막아서며 대열을 끊고 우왕좌왕하는 적을 죽이니 왜구가 궤멸하고 패했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죽였다.

 

영락 17(A.D.407) 정미년 조

 

十七年 丁未 敎遣步騎五萬 ☆☆☆☆☆☆☆☆

영락 17년 정미년에 교시를 내려 보기병 5만을 보내 (후연의) .....를 치도록 하였다.)

王師 四方合戰 斬煞蕩盡 所獲鎧鉀一萬餘領 軍資器械 不可稱數

왕의 군대가 사방에서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모두 죽이고 개갑 1만여 영과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군자기계를 획득했다.

還破沙溝城 婁城 牛田城 ☆☆☆ ☆☆☆

돌아오다가 사구성, 누성, 우전성 ........성을 격파했다.

 

영락 20(A.D.410) 경술년 조

 

二十年 庚戌 東扶餘舊是鄒牟王屬民

영락 이십년은 경술년이다. 동부여는 옛날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中叛不貢

중간에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王躬率往討

왕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가서 토벌하였다

軍到餘城 而餘擧國駭服

군대가 부여성에 도착하자 부여의 온 나라가 놀라 항복했다

獻出...

...을 바쳤다

王恩普覆 于是旋環

왕의 은혜로움을 널리 펼치고 개선하여 돌아왔다

又其慕化隨官來者

또 그 (은혜로움을) 사모하여 따라온 관리도 있었다

味仇婁鴨盧 椯社婁鴨盧 肅斯舍鴨盧 ☆☆☆鴨盧

미구루압로 타사루압로 숙사사압로 ...압로였다

凡所攻破城六十四 村一千四百

무릇 공격하여 빼앗은 곳이 64개 성 14백 개 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