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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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시사 – 신장위구르, 티베트, 내몽골은 과연 언제쯤 중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윤여동시사 – 신장위구르, 티베트, 내몽골은 과연 언제쯤 중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합해진 것은 쪼개지고, 쪼개진 것은 언젠가는 다시 합해지는 것은 세상사의 순리이고, 흥하면 언젠가는 망하고, 망하면 또 언젠가는 흥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쪼개졌다 합해졌다 하기를 무한 반복하였고, 왕조 역시 대개의 경우 짧으면 수십년, 길어야 2-300년 정도 밖에 유지하지 못했다. 그것이 중국(中國)의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그 강역이 비정상적으로 너무 넓고, 또 55개 소수민족과 한족(漢族)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 지금 중국 인구의 90%가 한족(漢族)이라고 하나, 이는 어불성설로서 사실 진짜 한족(漢族)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자기의 원래 종족을 숨기고 한족으로 행세하..

카테고리 없음 2021.08.07

윤석열(尹錫悅) 전검찰총장의 12대조 척화신(斥和臣) 팔송(八松) 윤황(尹煌)선생 묘

윤석열(尹錫悅) 전검찰총장의 12대조 척화신(斥和臣) 팔송(八松) 윤황(尹煌)선생 묘 [위 : 충남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팔송 윤황 선생(1571-1639) 묘역 전경] [위 : 팔송 윤황선생묘] [위 : 생전에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한 윤황선생과 배위 창녕성씨 묘표] [위 : 사후에 의정부영의정과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증직받은 윤황선생 묘비석] [위 :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는 팔송 윤황선생 신도비(묘비)] [위 : 묘역 아래 팔송선생 재실 전경] [위 : 재실] [위 : 조선 숙종 36년(1710)에 대사간 윤황 선생을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에 증직할 때의 교지] [위 : 조선 숙종 37년(1711)에 윤황 선생에게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릴 때의 교지] [위 : 조선..

카테고리 없음 2021.08.01

윤여동설 – 한반도 울주 천전리각석 명문은 흉노족들의 작품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울주 천전리각석 명문은 흉노족들의 작품 - 최초주장 [울주 두동면 천전리각석] [한반도 흉노족왕국의 왕족들이 새긴 천전리각석 명문] [한반도 흉노족왕국의 왕족들이 새긴 천전리각석 명문 탁본] 우리의 신라(新羅)는 한반도 경주에 도읍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사실은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천년왕조를 이은 나라였고, 그곳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신라의 천년 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이었다. 따라서 신라의 왕성이었던 금성(金城), 월성(月城) 등도 그곳에 있었고, 신라 왕릉들 역시 그 부근에 조성되었다.[필자주 :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대륙 상고사와 고대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한반도 경주에는 단1기의 신라왕릉도..

카테고리 없음 2021.07.24

윤여동설 – 고려도경(高麗圖經) 속 송나라 서긍일행의 고려행 항해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도경(高麗圖經) 속 송나라 서긍일행의 고려행 항해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지금 많은 사람들은 송나라의 서긍이 1123년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다녀간 후 그림과 글로 써서 송 휘종에게 보고했다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고, 이때 서긍이 명주 정해현 즉 지금의 절강성 영파(寧波)를 출발하여 황해(서해)를 가로 질러 건너 동북쪽 방향에 위치한 한반도 개성을 향하여 항해하여 왔다가 돌아간 것으로 해석하는데, 필자는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당시 고려는 한반도에 위치했던 나라가 아니라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위치인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한 나라였고,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땅도 한반도가 아니라..

카테고리 없음 2021.07.17

윤여동설 – 고대 발해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15m정도 더 높았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발해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15m정도 더 높았을 가능성 - 최초주장 [고대 갈석산(지금의 보정시 낭아산)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중국 황제들이 갈석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데, 해수면이 현재보다 10-15m 올라가면 하북성 보정시까지 바닷물이 들어가게 되어, 지금의 낭아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위 : 해수면 15m상승시 발해연안의 지형변화도] [위 : 발해 해수면 20m상승시 북경 부근 발해연안의 지형변화도]    발해의 해수면이 현재보다 약 10-15m쯤 더 높았을 경우 해변에 위치했었다고 전해지는 갈석산(필자주 :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낭아산)의 위치가 쉽게 설명된다.   그리고 지금의 북경 일원을 고대의 요동(遼東)으로 비정할 경우..

카테고리 없음 2021.07.10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왕검성(王儉城)의 서쪽에 위치했던 부여(夫餘, 扶餘)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왕검성(王儉城)의 서쪽에 위치했던 부여(夫餘, 扶餘)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옛 부여와 북부여의 도읍성이었을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적성고루(赤城鼓樓)]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를 보면,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에 대하여,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猰貐. 필자주 : 흉노를 말한다)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 필자주 : 대해의 오기이다)에 닿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고조선(왕검조선)의 제후국에 대하여, “천하의 땅을 공적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치우씨(蚩尤氏)의 후손에게는 남서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남국(藍國)이라 하였다......[필..

카테고리 없음 2021.06.26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觀世音應驗記(관세음응험기)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 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은 기록 속의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이 백제 30대 무왕(武王)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백제 무왕 때 지모밀지(필자주 : 지금의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로 도읍을 옮기려 했었는데, 무슨 사정이 생겨 그곳으로 도읍을 완전히 옮기지는 못했고, 부도읍 정도로 활용했었을 것..

카테고리 없음 2021.06.13

윤여동설 – 요녕성 조양시 북표(北票)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好太王) 때 망명해온 동부여인들의 무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녕성 조양시 북표(北票)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好太王) 때 망명해온 동부여인들의 무덤 - 최초주장 [중국에서 선비묘군(鮮卑墓群)이라고 새겨 세워놓은 요녕성 조양시 북표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 표지석]    중국 요녕성 조양시 북표시에서 발견된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광개토태왕)이 영락 20년(A.D.410)에 동부여를 침공하여 64개 성 1천4백개촌을 빼앗고 개선할 때 따라온 동부여 관리들과 그 후예들의 무덤일 것이다.[필자주 : 길림대 주홍(朱泓) 교수도 부여족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왜 라마동고분군이 동부여(東扶餘) 사람들의 무덤일 것이라고 하냐면,    호태왕 비문 영락 20년(A.D.410) 조에,   二..

카테고리 없음 2021.05.29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탄현(炭峴)과 백강(白江), 기벌포(伎伐浦)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탄현(炭峴)과 백강(白江), 기벌포(伎伐浦)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삼국유사 기이 제1 태종 춘추공 조를 보면, “정관 15년(A.D.641) 신축에 (의자왕이) 왕위에 오르자 주색에 빠져서 정사는 어지럽고 나라는 위태로웠다. 좌평 성충이 힘 써 간했지만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옥에 가두니 몸이 쇠약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으나 성충이 글을 올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 했습니다. 원하옵건대 한마디 말씀만 올리고 죽겠습니다. 신이 일찍이 시국의 변화를 살펴보니 반드시 병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용병은 그 지세를 잘 가려야 하는 것인 즉 요충지에 진을 치고 적을 맞아 싸우게 되면 사직을 보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외국 군사가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카테고리 없음 2021.05.23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낙양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 일원]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승덕시(평양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리쯤 된다]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당산시 건창영진(백제 남한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여리쯤 된다] [위 :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중국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후한서에는 요동(遼東)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다고 중국 사서들에 기록되..

카테고리 없음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