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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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지금의 중국 동북평원(東北平原)이 옛날에는 말갈, 동옥저, 예(동예)의 동쪽 대해(大海)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중국 동북평원(東北平原)이 옛날에는 말갈, 동옥저, 예(동예)의 동쪽 대해(大海)였다 - 최초주장 후한서 읍루전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에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후한서 동옥저전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 후한서 예전 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동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 땅이었다. 삼국지 읍루전 읍루는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다.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하였는데,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

카테고리 없음 2019.05.31

윤여동설 -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은 죽령(竹嶺)과 철령(鐵嶺) 사이의 땅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은 죽령(竹嶺)과 철령(鐵嶺) 사이의 땅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조를 보면,   “11년임인(A.D.642) 가을7월 백제왕 의자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지방의 40여개 성을 쳐서 빼앗아 갔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党項城)을 빼앗아 당 나라로 가는 길을 끊으려고 도모하므로 왕이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어 태종에게 급한 사정을 보고하였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大耶城)을 쳐서 함락시키니 도독 이찬 품석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이 싸움에서 죽었다.   겨울에 왕이 백제를 쳐서 대야성 전투의 보복을 하고자 즉시 이찬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처음에 대야성이 패하자 도독 품석의 아..

카테고리 없음 2019.05.26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再思)의 신분에 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再思)의 신분에 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고구려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再思)는 아직까지 의문의 인물이었다. 그의 신분에 대하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유리왕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고구려는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왕)으로부터 5대 모본왕까지는 해(解)씨였고, 6대 태조대왕으로부터 그 이후 고구려왕들의 성씨는 모두 고(高)씨로 나타난다. 고구려의 왕위는 해씨와 고씨 두 성씨로 이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고씨인 6대 태조대왕 고궁(高宮)의 아버지 재사의 성씨 역시 고씨였을 것이므로, 고재사(高再思)가 해씨인 2대 유리왕의 친아들일 수는 없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대왕 조에, “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도 한다]의 이름은 궁이요, 아명은 어수이니 유리왕의..

카테고리 없음 2019.05.19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장가구시 회안성진 : 규모 가로세로 각 약 1.5km 좌표 동경 114도28분01초 북위 40도27분48초] [위 : 무너진 현토성 성벽]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했던 한사군은 낙랑군(樂浪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 현토군(玄菟郡)이었다. 그 중 현토군(玄菟郡)은 처음에는 기원전 107년에 옥저 땅에 설치되었으나 기원전 75년에 이르러 그 위치를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 옮긴 현토군이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 낙양 동북 4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현토군으로서 바로 이 현토군이 고구려, 동부여와 수많은 접촉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때 새로 옮겨진 현토군은 지금의 중..

카테고리 없음 2019.05.07

윤여동설 - 조선 영조 때 이인좌의 난과 분무공신(奮武功臣)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조선 영조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과 분무공신(奮武功臣) - 최초공개 [조선 영조 어진] 1728년(영조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으로서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이라고도 한다. 경종이 세자 때부터 질환이 심했으므로, 숙종은 세자의 왕위계승을 우려해 이이명(李頤命)에게 연잉군(延礽君 : 뒤의 英祖)을 은밀히 부탁하는 정유독대(丁酉獨對 ; 1717년 숙종과 이이명 두 사람만의 만남)를 하였다. 경종은 숙종 말년에 세자청정을 할 때도 정사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고, 재위 중에도 국사를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웠다. 이에 노론측은 경종의 무자다병(無子多病)을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책..

카테고리 없음 2019.04.17

윤여동설 -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 속에 식인국(食人國)이 표기되어 있었다

윤여동설 -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 속에 식인국(食人國)이 표기되어 있었다 고지도인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는 명 영락 16년인 1418년에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필자주 : 識貢圖는 職貢圖의 오기일 것임]를 보고 청 건륭 28년 계미년(1763년)에 막이동(莫易仝)이 모사했다는 세계지도이다. 명나라 초인 1418년에 이렇듯 정확한 세계지도가 그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1418년이라면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즉위한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지도 속에 "식인국(食人國)"이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도의 서북쪽 귀퉁이에 "凡未加紅圈者皆原圖所未命名者(붉은색 테두리가 되어 있는 것은 원도인 천하제번직공도에 표기된 것이고, 그 밖의 것은 모사할 때 써 넣은..

카테고리 없음 2019.04.12

윤여동설 -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와 남제왕 70세 때인 519년 기해년에 지은 익산 미륵사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와 남제왕 70세 때인 519년 기해년에 지은 익산 미륵사지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 무광왕의 존재에 대하여는 알게 되었으나 그 무광왕의 신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전해진 기록이 없어 과연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연구해 보니 무광왕(武廣王)은 대륙백제 제12대 계왕의 아들로서 대륙에서 20여 년간 13대 근초고왕과 왕위다툼을 하다가 패하자 한반도로 도망쳐 백제(반도백제)를 다시 세우고 지모밀지에 도읍한 후 왕위에 오른 인물 즉 반도백제의 건국시조였다.  [대륙백제][장자파]           ..

카테고리 없음 2019.04.05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왕검은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고조선(왕검조선)의 초대 황후가 곧 하백의 딸이었다는 말이다. [단군왕검의 왕후가 되었던 비서갑 하백녀의 모습일까?] 이암(李嵒)의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보면, “무진년 제요도당(요 임금) 때에 왕검이 단국(檀國 : 환웅국)으로부터 아사달(阿斯達 : 아사달 부근의 태백산의 오기일 것이다)의 단목지허(檀木之墟 : 신단수터 즉 단목이 있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의 아들로 삼게 되었다..... 비서갑(斐西岬)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아내로 삼아 양잠을 관장하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

카테고리 없음 2019.03.29

윤여동설 - 천부인 세 개(天符印 三箇)의 진짜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천부인 세 개(天符印 三箇)의 진짜 의미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서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품고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 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속에서 환웅을 서자(庶子)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서민(庶民)으로 본다면 환웅은 그 신분이 ..

카테고리 없음 2019.03.25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최초공개     졸본[卒本 : 忽本(홀본)이라고도 한다)은 동명왕(東明王)이 세운 졸본부여의 건국지이기도 하고,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건국지이기도 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졸본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었을 뿐 사실 그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필자가 지금 북경의 북쪽에 위치한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이 바로 졸본임을 밝혀 냈다.   지금 후성진은 그 북쪽에 후성적벽(后城赤壁) 또는 적수애(滴水崖)라고 부르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산이 있고, 공기 맑고, 풍광 또한 아름다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는데, 그곳의 지세를 보면..

카테고리 없음 201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