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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도읍 시기 천문관측지 첨성대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4. 1. 5. 18:18

윤여동설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도읍 시기 천문관측지 첨성대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고구려 평양성 도읍 시기 첨성대터로 비정되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반벽산]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태조본]

 

[천성열차분야지도 석각. 숙종복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

 

  지금 전해지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에 제작된 돌에 새긴 천문도인데, 숙종 때 오류를 바로잡아 다시 복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에 석각천문도가 있었는데, 전쟁통에 잃어버렸고(필자주 : 당나라군이 패수 강물에 빠뜨려 버렸다고도 한다), 탁본만이 전해져 오던 것을 조선 초에 새로 새겨 만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 고적 조를 보면, “첨성대 유지(遺址)가 평양부 남쪽 3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고구려 평양성 도읍 시기에 석각천문도를 첨성대(瞻星臺)에 설치해 두고 그를 천문관측에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도읍 시기 천문관측지였을 첨성대(천문대)는 과연 지금의 어디에 설치했던 것일까?

  한반도 북한의 평양일까?

  그런데  후한서에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에 위치 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 베이징)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필자주 : 고대의 1척은 한뼘 길이인 약23cm였고, 10리는 지금처럼 4km가 아니라 약2.3km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고대 사서들에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의 남쪽에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서쪽에는 백제가 있었고, 신라의 남쪽에는 가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우리의 삼국과 가야가 모두 지금의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필자가 발해 북쪽 대륙에서 찾아낸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의 피서산장(열하행궁)이고, 백제의 북한산(北漢山)은 진황도 도산(都山), 백제의 도읍 웅진(熊津)은 진황도 노룡현을 말하는 것이며,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고, 가야의 금관성(金官城)은 요녕성 호로도시 흥성시의 흥성고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의 개경(開京) 역시 한반도 황해도 개성이 아닌 발해 북쪽 하북성 관성(관성만족자치현)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옛 고구려 평양성에 위치하고 있었던 첨성대(瞻星臺)는 한반도의 북한 평양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의 평양성 즉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피서산장(열하행궁) 남쪽 반벽산(半壁山)이 바로 천문을 관측하기에 알맞은 장소로서 고구려 평양성 시기의 첨성대(瞻星臺) 터로 비정되는 곳이다.

  좌표는 동경1175643초 북위405727초인데, 지금은 불교 사원이 들어서 있다.

 

고구려 평양성 도읍 시기의 천문관측 장소를 정확하게 찾으면, 고구려 평양성 도읍 시기의 천문관측 기록의 진위여부도 확인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천문학자들의 연구결과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