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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경주 금척리고분군(金尺里古墳群)을 발굴한다고?

윤여동 2024. 6. 4. 14:57

윤여동설 경주 금척리고분군(金尺里古墳群)을 발굴한다고?

 

 

 

 

 

 

  경주 금척리고분군(慶州 金尺里古墳群, 경주시 서쪽 건천읍 금척리 소재)을 발굴한단다.

  아마 우리 신라의 왕릉 또는 신라 왕족이나 귀족, 호족의 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물이 출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를 확인하기 위해 발굴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필자는 경주 금척리고분군 발굴 소식을 접하면서 맨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초등학교 때 불렀던 감자꽃이라는 동요였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필자가 보기에는 그곳 경주의 금척리고분군은 발굴해 보나 마나 흉노족 계열의 무덤으로서 북방유목민족 문화유물이 발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앞서 도굴만 당하지 않았다면, 이곳 금척리고분군에서도 경주지역 타 구역에서 출토된 금관형태와 비슷한 금관이나 금동관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고, 청동동복 등 북방유목민족의 문화유물이 출토될 것이다.

  특히 북방 오르도스(鄂爾多斯) 지역 유목민족들의 문화유물이 다수 출토될 것이지만, 우리 신라의 왕릉이나 신라인의 무덤임을 확인시켜 줄 만한 문화유물은 출토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발굴해 보지도 않았는데, 필자는 그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의 신라(新羅)는 한반도 경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라는 발해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중심으로 천년왕국을 이루었던 나라였고, 바로 그곳 금주시(錦州市)가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이었다.

  신라왕들은 모두 그곳 발해 북쪽 대륙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

 

  그리고 한반도 경주(慶州)는 대륙에서 왕망의 ()나라에 적극 협조했던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과 김륜의 후손들이 신나라 멸망 후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대륙에서 도망쳐 한반도 남부로 와서 세운 흉노족왕국(匈奴族王國)의 도읍이었다.

  그러니 한반도 경주에서 신라왕릉이 발견될 리 없고, 한반도 경주 부근의 고총들은 흉노족왕릉이거나 흉노족들의 무덤인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필자가 한반도 경주를 다 뒤지고, 파봐도 그곳에서 신라왕릉은 단1기도 발견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이 조성된 적이 없었으니 발견될 리도 없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경주 부근의 대형 고총들 즉 그것이 흉노족왕릉이던 흉노족왕족, 귀족, 호족의 무덤이든 될수록 많이 발굴해 보라.

  그리해야 한반도 경주가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음을 밝힐 수 있고, 신라의 서라벌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수 있을 테니까.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태조성한왕릉(太祖星漢王陵)으로 비정되는 경주 봉황대고분을 발굴해 보라. 아마 보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래야 한반도 흉노족왕국의 건국시조인 태조성한왕(太祖星漢王)의 신분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