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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송서 왜국전 속 의문의 기록 왜5왕 찬, 진, 제, 흥, 무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4. 18. 00:00

윤여동설 - 송서 왜국전 속 의문의 기록 왜5왕 찬, 진, 제, 흥, 무 - 최초주장

 

 

  송서 권97열전 제57이만동이 왜국전을 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의문의 기록이 들어있다.
  기록을 보면,
  왜국은 고(구)려 동남 대해 중에 있는데,

  고조 영초2년(A.D.421)에  왜왕 찬(讚)이 만리 밖에서 조공을 보내와 그 성의를 가상히 여겨 작위를 주었고,

  태조 원가 2년(A.D.425)에 진(珍)이 왕위에 올라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는데, 이때 자칭 "사지절도독 왜(倭)·백제(百濟)·신라(新羅)·임나(任那)·진한(秦韓)·모한(慕韓)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고 하며 정식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자 송 태조는 "안동장군왜국왕"의 작위를 주었고,

  또 진이 "왜·수 등 13인평서정로관군보국장군"호를 정식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자 그대로 들어 주었으며,

 

☆ 고구려 장수왕은 서기 427년에 도읍을 황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다.

 

  20년(A.D.443)에 왜국왕 제(濟)가 조공을 바치자 "안동장군왜국왕"이라는 작위를 다시 주었고,  
  28년(A.D.451)에 이르자 제에게 "사지절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제군사"를 더해주고 "안동장군"은 그대로 하였는데,

  제가 죽고 세자 흥(興)이 (왕위에 올라) 조공을 바치자 세조 대명 6년(A.D.462)에 흥에게 "안동장군왜국왕"의 작위를 주었고,

  다시 흥이 죽고 동생인 무(武)가 왕위에 올라, 자칭 "사지절도독 왜(倭)·백제(百濟)·신라(新羅)·임나(任那)·가라(加羅)·진한(秦韓)·모한(慕韓)7국제군사 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고 했고,

  순제 승명 2년(A.D.478)에 (왜국왕 무가 사신을 보내와) 동정모인(東征毛人) 55국, 서복중이(西服衆夷) 66국, 도평해북(渡平海北) 95국을 했다는 글을 보내오자 송 순제는 "사지절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왜왕" 이라는 작위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왜왕  찬, 진, 제, 흥, 무 등 5왕이 과연  일본서기 속의 어느 왕을 말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왜국의 위치와 주변국]


                                                                                 도평해북95국
    고구려
    대방

                             

                                                     서복중이66국              왜국              동정모인55국

 

 

  그런데 "도독6국제군사" 또는 "도독7국제군사"라는 의미는 주변 6국 또는 7국 군사의 지휘권을 갖는다는 의미이고,

"동정모인 55국"이라는 의미는 왜국의 동쪽에 위치한 모인(필자주 : 몸에 털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인지, 털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인지는 확실치 않다)들의 나라 55개국을 정벌했다는 뜻이고,

"서복중이 66국"이란 왜국의 서쪽에 위치한 오랑캐 무리 66개국을 복속시켰다는 의미이며,

"도평해북 95국"이란 왜국에서 바다를 건너가 그 북쪽 95개국을 평정했다는 의미인데,

서기 478년이라면 고구려는 장수왕 66년에 해당하는 해로서 강력한 제국이 되어 있던 해였고, 신라는 눌지마립간 21년이었고, 백제는 삼근왕 2년이었다.


  그런데 이때 왜국이 도대체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동쪽으로 55국을 정벌할 수 있으며,

  서쪽으로 66국을 복속시킬 수 있었으며,

  바다 건너에 있는 북쪽 95국을 평정하여 왜국의 영향권 내에 둘 수 있었을까?

 

☆ 양직공도 왜국사에는, "왜국은 대방의 동남쪽 대해 가운데 있는데, 산과 섬에 의지하고 산다. 대방으로부터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가 그 북쪽 해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방은 지금의 북경 동쪽 준화 부근에 위치했었다. 따라서 그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위치했다면 고대 왜국은 지금의 일본열도가 아닌 발해 연안 요동반도 쯤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강력한 고구려가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왜국은 어떻게 동쪽, 서쪽, 북쪽의 주변 216국을 거느린 대제국이 될 수 있었으며, 송나라에서는 무슨 이유로 왜국왕에게 "사지절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왜왕"이라는 작위를 주었던 것일까?
  혹시 이때 왜국이 정말로 강대국이었고, 신라, 가야 등이 강력한 고구려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왜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맺었던 것일까?

 

☆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고, 대방은 북경 동쪽 준화 부근에 위치했으므로 왜국은 그 동남쪽 발해 연안에 위치했다는 말이 된다.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에 고대 왜국이 위치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옛날 어느 한 때 지금의 압록강 북쪽 만주지역이 모두 옛 고대 왜국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남제서 권 58, 열전 제39 동이 왜국전에도,

  왜국은 대방 동남쪽 대해중의 섬에 있고, 건원 원년(A.D.479)에 왜왕 무에게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 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왜왕"이라는 작위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 조를 보면,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낸 기록이 보이고, 신라 역시 내물왕의 아들인 미사흔을 왜국에 볼모로 보냈는데, 왜국에서 그를 돌려 보내주지 않자 박제상이 사신으로 가서 그를 탈출시키고 죽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보이는데, 태자나 왕자를 왜국에 볼모로 보내야 했다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왜국이 백제나 신라보다 상국의 위치에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시기를 따져보면, 혹시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346년 병오년에 제작된 칠지도에 금상감으로 글자를 새겨 왜왕이 된 아들에게 하사했다는 그 아들의 후손왕들이  왜국 5왕인  찬왕, 진왕, 제왕, 흥왕, 무왕이 아닐까?

  사실이 이러했다면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대륙백제와 발해 동쪽에 위치했던 고대 대륙왜국(왜백제)의 친밀했던 관계가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