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신라 40

윤여동설 – 신라 황룡사종(皇龍寺鐘)을 물에 빠뜨린 곳은 한반도 경주의 대종천(大鐘川)이 아니라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의 소릉하(小凌河) 하류일 가능성

윤여동설 – 신라 황룡사종(皇龍寺鐘)을 물에 빠뜨린 곳은 한반도 경주의 대종천(大鐘川)이 아니라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의 소릉하(小凌河) 하류일 가능성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 황룡사(皇龍寺) 장육 편을 보면, "신라 24대 진흥왕 재위 14년 계유(A.D.553) 2월에 용궁 남쪽에 궁궐을 지으려 하였는데,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나자 이를 고쳐서 절을 짓고 이름을 황룡사(黃龍寺)라 하고, 기축년(A.D.569)에 이르러 담장을 쌓아 드디어 17년 만에 완공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 황룡사가 이때 세워졌음을 알 수 있고,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에 황룡사종(皇龍寺鐘) 편을 보면, “신라 제35대 경덕대왕이 천보13년(A.D.754) 갑오년에 황룡사종을 주조하였다. 장(長 : 길이) 1장3..

카테고리 없음 2023.06.24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3월 당나라 고종이 명을 내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방면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륙군 1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고 왕(신라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을 칙명으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군사로서 성원하도록 하였다. 여름5월26일에 왕이 김유신, 김진주, 김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래주(萊州, 필자주 : 산동반도 래주)로부터 출발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 필자주 : 서북쪽으로 갔다가 동북쪽으로 향했다고 해야 옳은 ..

카테고리 없음 2022.01.29

윤여동설 – 신라 여근곡(女根谷)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여근곡(女根谷)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요녕성 조양시 조양현 양산진(羊山鎭) 칠도하자(七道河子), 좌표 : 동경120도25분33초 북위41도12분14초] 삼국사기 신라본기 27대 선덕여왕 5년(A.D.636) 조를 보면, “여름5월 두꺼비들이 대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두꺼비의 성난 눈은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는 서남쪽 변경에 역시 옥문곡(玉門谷)이라는 곳이 있다하니 반드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골짜기에 잠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하고는 곧 장군 알천과 필탄 등으로 하여금 가서 뒤지게 하였더니 과연 백제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이를 엄습하여 모조리 쳐..

카테고리 없음 2021.03.20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흉노족들이 남겨 놓은 경주 석굴암을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만든 작품으로 이해한다]  [흉노족들이 세운 절인데,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세운 불국사라 한다]  [흉노족 왕의 시신을 육탈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인데, 이를 천문을 관측하던 신라의 첨성대라 한다]    [흉노인들이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며 놀던 곳을 우리는 지금 신라인들이 시를 읊으며 놀던 포석정이라 한다]   [흉노족왕릉에 세워진 능비를 지금 우리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능비라 한다]        [흉노족왕들이 쓰던 왕관을 지금 우리는 신라의 왕들이 쓰던 왕관이라 한다]    사실 한반도에 환국(桓國)은 없었고, 환웅의 단국과 신시(神市)도 없었으며,..

카테고리 없음 2020.01.01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고구려 천리장성 구당서 고구려전 정관5년(A.D.631) 조를 보면, "건무(영류왕의 이름)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년(A.D.631)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동북쪽은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바다(해)까지 닿았는데 무려 16년 만에 준공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 내몽골 오란찰포 서남쪽 대해(岱海) 부근의 장성흔적 : 고구려 천리장성의 서남쪽 끝 부분으..

카테고리 없음 2019.06.28

윤여동설 - 신라 선덕여왕릉 조성지 진짜 낭산(狼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선덕여왕릉 조성지 진짜 낭산(狼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위 : 신라의 천년 도읍지 서라벌이었던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옛사진]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 금성(金城) 동쪽의 진짜 낭산(狼山)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낭산(狼山)”이라 하여 산의 형상이 틀림없이 늑대(이리)모양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찾고 보니 산의 일부가 실제로 늑대의 머리형상과 닮아 있었다.    신라와 금성, 월성, 만월성, 명활성의 진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18대 실성이사금 12년(A.D.413)조의 “가을 8월 낭산(狼山)에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기에 누각처럼 생겼고, 향기를 풍기며 오래도록 없어지지 ..

카테고리 없음 2018.07.28

윤여동설 - 신라(新羅), 가야(伽倻)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新羅), 가야(伽倻)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지금 많은 사람들은 신라가 흉노족과 관련 있는 나라였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한반도 경주 부근에 우리의 신라가 위치했었다고 인식하고 있고, 김해 부근에 가야가 위치했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 부근에서 유목민족이었던 흉노족들의 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기 때문에 신라, 가야와 흉노를 결부시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경주에서 발견된 문무왕비편이라는 명문으로 인하여 신라 김씨왕들이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가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사실 한반도 경주 부근에 천년왕국 신라가 위치한 적은 없고, 가야 ..

카테고리 없음 2018.03.10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거란지리지도에 표기되어 있는“고려백제신라계(高麗百濟新羅界)"의 진짜 의미     위 거란지리지도를 보고 재야 역사연구자들은 우리의 대륙사를 밝혀줄 왜곡되지 않은 보물같은 지도라고 반색하는 반면 강단사학자들은 말도 안되는 잘못 그려진 엉터리 지도라 폄훼한다.   그런데 진실은 하나 뿐일 것이다.  재야 역사연구자들이 틀렸거나 강단사학자들이 틀렸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옳다는 말이 되는데,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실제 지금의 북경(필자 주 :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고, 요나라, 금나라 때의 동경요양부였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고, 그리하여 그곳에 “고려백제신라계..

카테고리 없음 2017.11.23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전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 제6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眞番郡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신찬이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서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고 통현은 15현이고, 진번군의 치소는 삽현(霅縣)으로서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고, 통현이 15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라고 임둔군과 진번군의 위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진번군(眞番郡 필자주 : 사실은 番의 음이 普安反이라 하였으니 진반군이라 읽어야 옳다)의 위치에 대한 정설이 아직까지도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역사학자들조차 진번군의 위치를 정확..

카테고리 없음 2017.10.15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 천리장성 : 고려 덕종 2년인 서기 1033년에 거란과 여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필자주 : 사실은 동북쪽방향임)으로 바다까지 천리장성 축성.   고려사절요 덕종 경강대왕 2년(계유년, 서기 1033년) 8월 조를 보면, “평장사 류소에게 명하여 북쪽 경계에 관방을 새로 설치하게 하였는데,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 경계인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쌓기 시작하여(起自西海濱古國內城界鴨綠江入海處) 동쪽으로 위원, 흥화, 정주, 영해, 영덕, 영삭, 운주, 안수, 청새, 평로, 영원, 정융, 맹주, 삭주 등 13성을 거쳐 요덕, 정변, 화주 등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길이가..

카테고리 없음 2017.09.29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전을 보면, 6대 태조대왕 90년(A.D.142) 가을9월 환도(丸都)에 지진이 있었다. 10대 산상왕 2년(A.D.198)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13년(A.D.209) 겨울10월 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冬十月 王移都於丸都) 11대 동천왕 20년(A.D.246) 가을8월 위나라에서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로 나와 침입하였다......... 겨울 10월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함락시켜 주민들을 도륙하고, 곧 장군 왕기를 시켜 왕을 추격하므로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필자 주 : 단단대령 또는 절령[자비령]의 오기인 듯)에 이르니 군사들은 분산되어 흩어지고.........

카테고리 없음 2017.09.11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임나(任那)가 있었다 없었다,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아니다 대마도에 있었다, 아니다 큐우슈우에 있었다 등등 임나에 대하여 논란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필자는 임나(任那)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를 찾기에 앞서 먼저 고대 왜국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우리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가 과연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나는 가야의 일원이었고, 백제와 가까이 접하고 있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임나의 종발성을 공격한 기록이 호태왕비문에 전하기 때문이다. [필자주 :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도 강수 스스로 자신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 하였고, 진경대사탑비문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17.08.12

윤여동설 - 신라 3백리 장성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3백리 장성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장성(長城)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한반도에서 장성의 흔적은 어느 한곳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후대인 고려시대에도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역시 한반도에서는 장성의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한반도에서는 역사서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장성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41대 헌덕왕 18년(A.D.826) 조를 보면, "가을7월 우잠태수 백영을 시켜 한산(漢山) 북쪽의 여러 주와 군 사람들 1만을 징발하여 패강(浿江 : 패수)에 장성 3백리를 쌓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패강(패수)은 한반도의 대동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경 동쪽을 흐르는 지금의 난하를 ..

카테고리 없음 2017.06.18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삼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과의 수많은 접촉기록인데,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에 연접되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리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또 13년(B.C.6) 조를 보면,   여름5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낙랑이 ..

카테고리 없음 2016.10.07

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속 지진기록은 한반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속 지진기록은 한반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5대 파사왕 21년(A.D.100) 겨울10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어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자가 생겼다. 11대 조분왕 17년(A.D.246) 11월에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15대 기림왕 7년(A.D.304) 가을8월 지진이 있었고 샘이 솟았다. 9월에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어 민가를 쓰러뜨리고 죽은 자가 있었다. 17대 나물왕 33년(A.D.388) 여름4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6월에 또 지진이 있었다. 18대 실성왕 5년(A.D.406) 겨울10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19대 눌지왕 42년(A.D.458) 봄2월 지진이 있었고 금성 남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2..

카테고리 없음 2016.10.01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금관총은 흉노족왕국 이사지왕릉(尒斯智王陵)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금관총은 흉노족왕국 이사지왕릉(尒斯智王陵) [이사지왕릉(금관총) 출토 금관]                 [尒斯智王(이사지왕) 명문]                  [尒斯智王刀(이사지왕도) 명문]                                                                                                 이사지왕(尒斯智王).......................   그가 어느 나라의 왕이었는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이제 경주의 금관총이 이사지왕릉임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금관이 출토되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금관총”이라는 명칭대신 무덤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이사지왕릉(尒斯智王陵)”으로 명명하는..

카테고리 없음 2015.08.01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 때 설치했고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영현은 18현이다” 라고 기록하고 나서 18개 영현을 나열했는데, 그를 보면 “양평현, 신창현, 무려현, 망평현, 방현, 후성현, 요대현, 요양현, 험독현, 거취현, 고현현, 안시현, 무차현, 평곽현, 서안평현, 문현, 번한현, 답씨현”이다. 그런데 고구려 미천왕은, 재위 12년인 311년에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고, 재위 14년인 313년에는 낙랑군(후한낙랑군)을 침공하였으며, 재위 15년인 314년에는 대방군을 침공하고, 재위 16년인 315년에는 현토군을 침공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

카테고리 없음 2014.10.25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성이었던 주류성과 임존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성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조를 보면, “무왕의 조카 복신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중 도침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 웅거하며 반하였다. 옛 왕의 아들로서 왜국에 볼모로 갔던 부여풍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으니 서북부에서 모두 호응하매 군사를 이끌고 사비 도성에 있는 유인원을 포위하였다. 당나라에서 조서를 내려 유인궤로서 검교대방주자사를 삼아 왕문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군사를 적당하게 발동시켜 유인원을 구원하게 하니........(중략).........인궤가 군사를 엄숙하게 통제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여 오므로 ..

카테고리 없음 2014.10.04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요동은 우리 고대 역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요동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요동(遼東)”은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내는 비밀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하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왔던 곳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명· 청시기에 지명을 옮겨 놓은 곳이지 고대의 요동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요하도 고대의 요수가 아니고, 요하하류는 고대의 요택이 아니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고대의 왜국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