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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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시사 – 동해안유전펀드를 조성하여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유전 시추 비용을 충당하자

시사 – 동해안유전펀드를 조성하여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유전 시추 비용을 충당하자 [포항 불의 정원 : 포항 앞바다에 석유와 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하는데, 마침 포항에서 가스가 솟아올라 불이 붙어 수년째 불타고 있으니 우연 만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 동해안 영일만 앞바다에 원유와 가스가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단다.  포항 불의정원에도 가스가 수년째 불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양의 많고 적음은 차치하고 부근에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그렇다면 영일만 앞바다 심해를 어떻게든 파 봐야 할텐데 그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 시추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섯 군데는 파 봐야 한다는데, 한군데 파 보는데 1,000억원이 넘게 든단다.   무슨..

카테고리 없음 2024.06.23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의 진짜 금성(金城)터, 만월성(滿月城)터, 월성(月城)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의 진짜 금성(金城)터, 만월성(滿月城)터, 월성(月城)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위 : 남쪽과 북쪽에서 바라본 서라벌(只今 遼寧省 錦州市)의 지형]  [금성 추정지(해발 20m쯤에 위치)와 그 동쪽 1리의 알천] 금성(金城) : 경주부 동쪽4리혁거세거서간 21년(B.C.37) 경성(京城)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성이 경주부의 동쪽 4리에 위치했고, 혁거세 때 흙으로 성을 쌓았으며, 둘레가 2,407척이라 하였다. [금성과 월성(반월성)의 중간에 위치했던 만월성 추정지, 해발 19m쯤에 위치] 만월성(滿月城) : 월성 북쪽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위치했고,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4,945척이라 하였다. [월성(반월성) 추정지, 해발..

카테고리 없음 2024.06.22

윤여동설 – 신라 51대 진성여왕릉(眞聖女王陵) 조성지 황산(黃山)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51대 진성여왕릉(眞聖女王陵) 조성지 황산(黃山)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가야의 강역에 대하여, “동쪽은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창해(滄海), 서북쪽은 지리산(地理山), 동북쪽은 가야산(伽耶山),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방향이 약간 비틀려 기록되어 있지만, 가야의 최대 강역이 동쪽은 황산강까지, 서쪽은 지리산까지, 남쪽은 바다에 닿았고, 북쪽은 가야산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51대 진성여왕 2년(A.D.888) 조를 보면, “왕이 그전부터 각간 위홍(魏弘)과 통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항상 궁중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명하여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향가를 수집, 편찬하게..

카테고리 없음 2024.06.16

윤여동설 – 한반도 경상도 낙동강 동쪽은 흉노족 투후(秺侯)계열 왕국이었고, 낙동강 서쪽은 흉노족 성도후(成都侯)계열 왕국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상도 낙동강 동쪽은 흉노족 투후(秺侯)계열 왕국이었고, 낙동강 서쪽은 흉노족 성도후(成都侯)계열 왕국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위 : 한반도 경주출토 太祖星漢(태조성한) 명문 비편] [위 : 한반도 경주 금관총 출토 금관] [위 : 흉노족왕국 태조성한왕릉(太祖星漢王陵)으로 비정되는 한반도 경주 봉황대 고분] [위 : 한반도 경주 고분 서역인 무인상]   투후 김성(金星)과 성도후 김탕(金湯) 때 이르러 왕망(王莽)의 신(新, A.D.8-23)나라가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에 의해 멸망하고 후한(後漢)이 세워지자, 왕망과 친인척간으로서 신(新)나라에 적극 협조했던 흉노족들은 멸족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 왕망(王莽)의 어머니와 김당(金當)의 어머니는 자매 사이로서 왕..

카테고리 없음 2024.06.08

윤여동설 – 경주 금척리고분군(金尺里古墳群)을 발굴한다고?

윤여동설 – 경주 금척리고분군(金尺里古墳群)을 발굴한다고?        경주 금척리고분군(慶州 金尺里古墳群, 경주시 서쪽 건천읍 금척리 소재)을 발굴한단다.   아마 우리 신라의 왕릉 또는 신라 왕족이나 귀족, 호족의 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물이 출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를 확인하기 위해 발굴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필자는 경주 금척리고분군 발굴 소식을 접하면서 맨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초등학교 때 불렀던 감자꽃이라는 동요였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필자가 보기에는 그곳 경주의 금척리고분군은 발굴해 보나 마나 흉노족 계열의 무덤으로서 북방유목민족 문화유물이 발굴될 것이 뻔하기 ..

카테고리 없음 2024.06.04

윤여동설 –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이 확실 - 최초주장   [위 : 북경 동북쪽 사마대장성과 고북수진(古北水鎭) 전경]  [위 : 옛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이었고, 발해국의 서경압록부였으며, 거란(요) 녹주압록군절도였던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 풍광]  [위 : 고북수진 북쪽을 지나는 사마대장성]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그 위치를 잃어버린 곳 중의 하나가 바로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이었다.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이란 고구려의 고향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이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으면, 고구려의 최초 발원지를 찾을 수 있고, 또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에 ..

카테고리 없음 2024.06.01

윤여동설 – 통일신라 때 웅천주도독(熊川州都督, 熊州) 김헌창의 난은 지금의 발해 북쪽 진황도 노룡현(盧龍縣)에서 일어났던 사건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통일신라 때 웅천주도독(熊川州都督, 熊州) 김헌창의 난은 지금의 발해 북쪽 진황도 노룡현(盧龍縣)에서 일어났던 사건 - 최초주장  [위 : 웅천주(웅주, 웅진)는 지금의 발해 북쪽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盧龍縣)](세력범위는 청색글씨) [위 : 진황도 노룡현의 노룡고성(盧龍古城)(옛 백제 웅진성)] [위 : 영평부성도(옛 백제 웅진성(熊津城) 그림] [김헌창은 바로 이 웅진성(현 노룡고성)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필자주 : 위 노룡고성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 보면 서문, 서북문쪽 성안에 백제왕궁과 관아가 위치했었던 듯 하다] [위 ; 노룡고성(옛 웅진성) 서문] [위 : 노룡고성(옛 웅진성) 남문] [위 : 노룡고성(옛 웅진성) 내에 지어진 지금의 법화사 천불전]   삼국사기 신..

카테고리 없음 2024.05.25

윤여동설 - 해동(海東)과 동국(東國)이 원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해동(海東)과 동국(東國)이 원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위 : 東國地圖(동국지도), 한반도를 그린 것이 확실한 조선시대 지도인데 명칭을 조선지도(朝鮮地圖)라 하지 않고 동국지도(東國地圖)라 했다. 이는 한반도의 원래 명칭이 동국(東國)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조선말까지 대마도(對馬島)는 우리 땅이었다]  우리는 지금 “해동(海東)”과 “동국(東國)”을 모두 한반도(韓半島)의 별칭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이 둘이 원래는 각각 서로 다른 곳을 지칭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에서 왕건의 고려(高麗)로부터 그 이전 우리 상고사(上古史)와 고대사(古代史)의 현장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이었음이 밝혀졌고, 한반도(韓半島)는 왕망의 신..

카테고리 없음 2024.05.17

윤여동설 – 해동통보(海東通寶)는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고려의 엽전이고, 동국통보(東國通寶)는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半島百濟) 즉 동국(東國)의 엽전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해동통보(海東通寶)는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고려의 엽전이고, 동국통보(東國通寶)는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半島百濟) 즉 동국(東國)의 엽전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동국(東國)”은 무광왕(武廣王)이 4세기 중반 한반도에 세운 백제(반도백제)의 별칭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백제는 건국된 지 100여년 후인 5세기 중엽에 이르면 이미 강국이 되어 있었는데, 이 시기에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대륙백제(온조백제)는 매우 쇠약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반도백제 모도왕(牟都王) 때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하게 되고, 손자인 동성왕(東城王, 필자주 : 동성왕이 동국에서 왔음을 표시한 시호는 아닐까?)을 대륙으로 보내 왕위에 오르게 한다.[필자주 : 동성왕이 모도왕의 손자였음은 중국 사서들에 ..

카테고리 없음 2024.05.11

윤여동설 – 고구려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墓)은 죽어 어디에 묻혔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운산(雲山)의 구봉산(九峰山)에 조성된 고구려 연개소문묘(淵蓋蘇文墓) 찾기 - 최초공개   [발해 북쪽에 고구려,백제,신라를 표시한 거란국지의 거란지리지도]   [위 : 중국 경극 속 고구려 연개소문 모습] [위 : 막리지비도대전(莫利支飛刀對箭) : 당태종, 연개소문, 설인귀]  이맥(李陌)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를 보면, “책성에 태조무열제의 기공비가 있고, 동압록의 황성에 광개토경대훈적비가 있다. 안주 청천강변 위에 을지문덕의 석상이 있고, 오소리강(烏蘇里江) 밖에 연개소문의 송덕비가 있다. 평양 모란봉 중간 기슭에 동천제의 조천석이 있고, 삭주 거문산 서쪽 기슭에 을파소의 묘가 있으며, 운산의 구봉산에 연개소문의 묘가 있다. (柵城有太祖武烈帝紀功碑 東鴨綠之皇城有..

카테고리 없음 2024.05.04

윤여동설 – 서라벌 남산 사량부(沙梁部)에 조성된 진짜 신라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서라벌 남산 사량부(沙梁部)에 조성된 진짜 신라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을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에 대하여, “이름은 승만이요, 진평왕의 동복동생 국반(국분이라고도 한다)갈문왕의 딸이며, 어머니는 박씨 월명부인이다. 외모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다. 키가 7척(161cm, 고대의 1척은 약23cm)이었고, 팔을 내리면 무릎아래까지 닿았다.” “재위8년(A.D.654) 봄3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덕(眞德, 필자주 : 참되게 덕으로써 정치를 하였다는 좋은 의미)이라 하고, 사량부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녀가 죽어 신라 서라벌 남산 사량부(沙梁部)에 묻혔음을 알게 한다. ☆ 중국 서안 당 태종의 능인 소릉도에도 신라진덕묘(新羅眞德墓)..

카테고리 없음 2024.04.28

윤여동설 – 고구려 동천왕이 밀우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과 유옥구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압록(鴨淥) 두눌하원(杜訥河原)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고구려 동천왕이 밀우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과 유옥구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압록(鴨淥) 두눌하원(杜訥河原)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가을8월 위(魏, 曹魏)나라에서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玄菟)로 나와 침입하였다. 왕이 보, 기병 2만명을 거느리고 비류수(沸流水) 강가에서 맞받아쳐 그를 쳐부수고 적군 3천여명의 머리를 베었다.   다시 군사를 인솔하고 양맥의 골짜기(梁貊之谷)에서 싸워 또 적군을 쳐부수어 3천여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왕이 모든 장수들에게 ”위나라의 대병이 도리어 우리의 소병만도 못하며, 관구검이 비록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에..

카테고리 없음 2024.04.20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초기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가 밝혀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초기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가 밝혀졌다 - 최초주장   [위 :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 :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 대명진토성] [위 : 고조선의 두 번째 도읍 왕검성(王儉城) :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은 아사달(阿斯達)이었다고 전해온다.   그 위치에 대하여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고조선(왕검조선)은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평양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백제의 경우에도 건국한 지 10여년 만에 첫 도읍 위례성(慰禮城)에서 남한성(南漢城)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

카테고리 없음 2024.04.06

윤여동설 - 신라 성덕왕 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 그리고 엄정왕후(배소왕후)와 소덕왕후(점물왕후)의 관계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성덕왕 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 그리고 엄정왕후(배소왕후)와 소덕왕후(점물왕후)의 관계를 밝힌다 - 최초주장 [신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신라 성덕대왕신종, 그러나 그가 시호처럼 정말로 성스럽고, 덕스러운 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 중 아직까지 그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33대 성덕왕 조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이다. 삼국유사 왕력 제33대 성덕왕 조를 보면, “이름은 흥광이요 본래 이름은 융기였다. 효소왕의 동생이다. 첫 비는 배소왕후로 시호는 엄정으로서 원대아간의 딸이고,다음 비는 점물왕후로 시호는 소덕으로서 순원각간의 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성덕왕의 첫 왕..

카테고리 없음 2024.03.30

윤여동설 –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이 생명의 은인 고노자(高奴子)에게 식읍(食邑)으로 내려주었던 곡림(鵠林)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이 생명의 은인 고노자(高奴子)에게 식읍(食邑)으로 내려주었던 곡림(鵠林)을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4대 봉상왕 2년(A.D.293) 조를 보면, “가을8월 모용외(慕容廆)가 침공하여 왔다. 왕이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鵠林)까지 갔는데, 모용외가 왕이 도망친 것을 알고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어 왕이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이때 신성(新城) 성주인 북부소형 고노자(高奴子)가 기병 5백을 거느리고 와서 왕을 영접하고, 적군을 맞받아쳐 맹렬하게 치니 모용외의 군사가 패하여 물러갔다. 왕이 기뻐하여 고노자의 벼슬을 높여 대형(大兄)으로 삼고, 또한 곡림(鵠林)을 주어 그의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

카테고리 없음 2024.03.23

윤여동설 – 제왕운기(帝王韻紀)가 한반도 삼척(三陟)에서 쓰여지지 않았다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제왕운기(帝王韻紀)는 한반도 삼척(三陟)에서 쓰여지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위 : 제왕운기] 왕건의 고려(高麗)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상고사(上古史)와 고대사(古代史)는 발해(渤海) 북쪽 대륙역사이지 반도역사가 아니다. 고려(高麗)는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신라, 백제, 가야 그리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 세운 나라로서 도읍 개경(開京)은 한반도 황해도 개성이 아니라 발해 북쪽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관성만족자치현)이었다. 따라서 고려 사람인 이승휴(李承休)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했다는 삼척(三陟, 옛 실직)도 발해 북쪽 대륙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중국 사서들에는 요동(遼東) 동쪽 1천여 리에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가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에는 요..

카테고리 없음 2024.03.16

윤여동설 – 북진(北鎭)과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원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진(北鎭)과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원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북경이 옛날부터 수천년간 요동(遼東)이었고, 지금의 영정하(永定河)가 고대의 요수(遼水)였다.   그리고 이 고대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우리의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신라의 남쪽에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북경이 바로 요(거란)나라의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였고, 금(여진)나라의 동경요양부였다.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거란, 여진이 모두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遼東半島)에 위치하고 있었다.  ☆ 지금..

카테고리 없음 2024.03.08

윤여동설 - 에덴동산은 아라라트산 서쪽

윤여동설 - 에덴동산은 아라라트산 서쪽 [위 : 튀르키예는 국토가 한마리의 소형상을 하고 있는 나라로서, 에덴동산은 바로 그 소의 배에 해당하는 곳이다. 서양판 십승지 우복동(十勝地 牛腹洞)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곳이 이스라엘 민족의 발상지이며, 고향이다. 성서에 에덴동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황야를 떠돌던 고난의 시기에 고향 땅에 대한 향수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위 : 아라라트산, 이스라엘 민족이 이 산의 서쪽에 위치했던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이 혹시 이 아라라트산의 대규모 화산 폭발로 인하여 지진과 화산재의 영향 등으로 당시 그곳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는 외적의 침공을 받아 그 땅을 빼앗기고 그곳에서 쫓겨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

카테고리 없음 2024.03.02

윤여동설 –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발상지 진짜 위치 찾기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발상지 진짜 위치 찾기 –최초주장    [망아지 머리 형상이 보이시나요?  좀 떨어져서 보세요. 그리고 필자가 망아지성(駒城, 용인의 옛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발해 북쪽, 진황도 도산남쪽 이곳에 진짜 망아지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반도사관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의미를 직역해 보면, 살았을 때는 진천에 사는게 좋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는게 좋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한반도 충북 진천(鎭川)과 경기도 용인(龍仁)에 대입시켜, 진천은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고, 용인에는 묘를 쓸 명당이 많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고려로부터 그 이전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 그리고 마한..

카테고리 없음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