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백제 64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A.D.512) 조를 보면, 『여름6월 우산국(于山國)이 귀순하고 해마다 토산물로써 세공을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于山國)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 둘레가 1백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何瑟羅) 군주(軍主)가 되었는데, 우산인(于山人)들이 미련하고 사나우므로 위력으로서 복종시키기는 어려우니 계교로서 항복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나무로 사자 모양을 만들어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다달아 거짓말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놓아 짓밟아 죽이겠다..

카테고리 없음 2023.05.07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3월 당나라 고종이 명을 내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방면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륙군 1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고 왕(신라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을 칙명으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군사로서 성원하도록 하였다. 여름5월26일에 왕이 김유신, 김진주, 김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래주(萊州, 필자주 : 산동반도 래주)로부터 출발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 필자주 : 서북쪽으로 갔다가 동북쪽으로 향했다고 해야 옳은 ..

카테고리 없음 2022.01.29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도읍(서라벌)을 습격해 왔다. 이때 왕(경애왕)이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놀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중략...................... 왕은 비첩 몇 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후백제군의) 군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제로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

카테고리 없음 2021.04.10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흉노족들이 남겨 놓은 경주 석굴암을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만든 작품으로 이해한다]  [흉노족들이 세운 절인데,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세운 불국사라 한다]  [흉노족 왕의 시신을 육탈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인데, 이를 천문을 관측하던 신라의 첨성대라 한다]    [흉노인들이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며 놀던 곳을 우리는 지금 신라인들이 시를 읊으며 놀던 포석정이라 한다]   [흉노족왕릉에 세워진 능비를 지금 우리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능비라 한다]        [흉노족왕들이 쓰던 왕관을 지금 우리는 신라의 왕들이 쓰던 왕관이라 한다]    사실 한반도에 환국(桓國)은 없었고, 환웅의 단국과 신시(神市)도 없었으며,..

카테고리 없음 2020.01.01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고구려 천리장성 구당서 고구려전 정관5년(A.D.631) 조를 보면, "건무(영류왕의 이름)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년(A.D.631)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동북쪽은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바다(해)까지 닿았는데 무려 16년 만에 준공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 내몽골 오란찰포 서남쪽 대해(岱海) 부근의 장성흔적 : 고구려 천리장성의 서남쪽 끝 부분으..

카테고리 없음 2019.06.28

윤여동설 - 한국 역사학계는 왜 “첨로(檐魯)”를 담로라 하고, “현토군(玄菟郡)”을 현도군이라 하는 겨?

윤여동설 - 한국 역사학계는 왜 “첨로(檐魯)”를 담로라 하고, “현토군(玄菟郡)”을 현도군이라 하는 겨? [양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백제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또 진(晉)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었다는 사실, 백제에 22첨로가 있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양직공도 백제국사] 우리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틀린 줄 알았으면 고치면 되는 것인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백제에 22담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원전인 양서(梁書) 권54 열전 제48 제이 백제전을 보면,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라고 쓰여 있고, 양직..

카테고리 없음 2018.02.03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거란지리지도에 표기되어 있는“고려백제신라계(高麗百濟新羅界)"의 진짜 의미     위 거란지리지도를 보고 재야 역사연구자들은 우리의 대륙사를 밝혀줄 왜곡되지 않은 보물같은 지도라고 반색하는 반면 강단사학자들은 말도 안되는 잘못 그려진 엉터리 지도라 폄훼한다.   그런데 진실은 하나 뿐일 것이다.  재야 역사연구자들이 틀렸거나 강단사학자들이 틀렸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옳다는 말이 되는데,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실제 지금의 북경(필자 주 :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고, 요나라, 금나라 때의 동경요양부였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고, 그리하여 그곳에 “고려백제신라계..

카테고리 없음 2017.11.23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전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 제6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眞番郡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신찬이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서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고 통현은 15현이고, 진번군의 치소는 삽현(霅縣)으로서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고, 통현이 15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라고 임둔군과 진번군의 위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진번군(眞番郡 필자주 : 사실은 番의 음이 普安反이라 하였으니 진반군이라 읽어야 옳다)의 위치에 대한 정설이 아직까지도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역사학자들조차 진번군의 위치를 정확..

카테고리 없음 2017.10.15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 천리장성 : 고려 덕종 2년인 서기 1033년에 거란과 여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필자주 : 사실은 동북쪽방향임)으로 바다까지 천리장성 축성.   고려사절요 덕종 경강대왕 2년(계유년, 서기 1033년) 8월 조를 보면, “평장사 류소에게 명하여 북쪽 경계에 관방을 새로 설치하게 하였는데,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 경계인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쌓기 시작하여(起自西海濱古國內城界鴨綠江入海處) 동쪽으로 위원, 흥화, 정주, 영해, 영덕, 영삭, 운주, 안수, 청새, 평로, 영원, 정융, 맹주, 삭주 등 13성을 거쳐 요덕, 정변, 화주 등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길이가..

카테고리 없음 2017.09.29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전을 보면, 6대 태조대왕 90년(A.D.142) 가을9월 환도(丸都)에 지진이 있었다. 10대 산상왕 2년(A.D.198)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13년(A.D.209) 겨울10월 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冬十月 王移都於丸都) 11대 동천왕 20년(A.D.246) 가을8월 위나라에서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로 나와 침입하였다......... 겨울 10월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함락시켜 주민들을 도륙하고, 곧 장군 왕기를 시켜 왕을 추격하므로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필자 주 : 단단대령 또는 절령[자비령]의 오기인 듯)에 이르니 군사들은 분산되어 흩어지고.........

카테고리 없음 2017.09.11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임나(任那)가 있었다 없었다,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아니다 대마도에 있었다, 아니다 큐우슈우에 있었다 등등 임나에 대하여 논란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필자는 임나(任那)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를 찾기에 앞서 먼저 고대 왜국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우리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가 과연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나는 가야의 일원이었고, 백제와 가까이 접하고 있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임나의 종발성을 공격한 기록이 호태왕비문에 전하기 때문이다. [필자주 :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도 강수 스스로 자신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 하였고, 진경대사탑비문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17.08.12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하여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패수)가에 군사를 숨겨 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갑자기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한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으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중국 사서인 송서와 남사 그리고 양직공도 백제국사에는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고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이때 옮긴 도읍이 바로 한성(漢城)이었..

카테고리 없음 2017.05.27

윤여동설 - 백제 개로왕이 사성 동쪽으로부터 숭산 북쪽까지 쌓은 제방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개로왕이 사성 동쪽으로부터 숭산 북쪽까지 쌓은 제방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백제 개로왕 21년(A.D.475) 조를 보면, 개로왕이 “강(한수)을 따라 제방을 쌓아서 사성 동쪽으로부터 숭산 북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그때 쌓은 제방의 흔적을 찾은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개로왕이 쌓은 제방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도산 남쪽에서 찾아야 했는데, 한반도 서울 부근의 한강에서 개로왕이 쌓은 제방의 흔적을 찾고 있었으니 찾아질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7.05.07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원사를 보면,  "세조 지원 4년(A.D.1267) 정월 백제가 그 신하 양호를 보내 내조하여 비단을 차등있게 하사했다(世祖至元四年正月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백제는 서기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나라가 멸망했고, 견훤의 후백제 역시 936년에 소멸했다.   그런데 백제는 그 후에도 어디선가 명맥을 유지하면서 1267년에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자 원 세조인 쿠빌라이 칸이 비단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사가 없는 사실을 기록했을 리도 없을 것인데, 백제가 멸망한지 600년도 더 지난 1267년까지 백제가..

카테고리 없음 2017.01.21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삼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과의 수많은 접촉기록인데,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에 연접되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리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또 13년(B.C.6) 조를 보면,   여름5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낙랑이 ..

카테고리 없음 2016.10.07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 조를 보면,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 서쪽으로는 요수(遼水), 북쪽(필자주:사실은 서북쪽이다)으로는 옛 거란(契丹), 동쪽(필자주:사실은 동북쪽이다)으로는 대금(금나라)과 접해 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요해는 지금의 발해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며, 거란은 지금의 내몽골 상도 부근에, 금나라는 대흥안령 동쪽 파림좌기, 파림우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는 지금의 요하서쪽 요녕성으로부터 하북성 진황도, 당산, 승덕시, 장가구 일부, 북경 일부,..

카테고리 없음 2016.07.17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가 정말 대방고지(帶方故地)였고, 건국시조는 구태(仇台)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가 정말 대방고지(帶方故地)였고, 건국시조는 구태(仇台)였을까? - 최초주장    주서 백제전을 보면,   “백제는 그 선조가 대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로소 대방 땅에 나라를 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수서 백제전에는,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漢)나라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북사 백제전에도,   “동명의 후손에 구태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구태에..

카테고리 없음 2015.09.19

윤여동설 - 풍납토성은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풍납토성은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이 아니다 - 최초주장 [백제 11대 비류왕의 아들인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은 대륙백제의 왕위를 놓고 20여년간 왕위다툼을 하게 되는데, 최종으로 근초고왕이 승리하여 대륙백제의 13대 왕위에 올랐고, 패한 무광왕은 한반도로 도망쳐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이를 필자는 반도백제라 부른다)를 세운다. 그랬다가 반도백제의 모도왕 때 이르러 대륙백제의 개로왕(근개루왕이라고도 한다)이 두 백제의 통합을 제안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한 후 반도백제 모도왕의 둘째 손자인 모대가 대륙으로 건너가 대륙백제의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동성왕이고, 그 뒤를 이어 동성왕의 이복동생인 무령왕이 대륙으로 건너가 백가의 난을 진압하고 대..

카테고리 없음 2015.07.15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 때 설치했고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영현은 18현이다” 라고 기록하고 나서 18개 영현을 나열했는데, 그를 보면 “양평현, 신창현, 무려현, 망평현, 방현, 후성현, 요대현, 요양현, 험독현, 거취현, 고현현, 안시현, 무차현, 평곽현, 서안평현, 문현, 번한현, 답씨현”이다. 그런데 고구려 미천왕은, 재위 12년인 311년에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고, 재위 14년인 313년에는 낙랑군(후한낙랑군)을 침공하였으며, 재위 15년인 314년에는 대방군을 침공하고, 재위 16년인 315년에는 현토군을 침공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

카테고리 없음 201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