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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 2016. 10. 7. 21:31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삼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과의 수많은 접촉기록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B.C.17) 조를 보면,

  봄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에 연접되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리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13(B.C.6) 조를 보면,

  여름5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서 국경을 침공하기 때문에 평안한 날이 적으니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 겠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온조왕은 이때 실제로 말갈과 낙랑의 침공을 피하여 도읍을 위례성에서 남한성(하남위례성이라고도 한다)으로 옮겼고, 백제는 역사 내내 이 말갈의 침공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6대 지마이사금 14(A.D.125) 조를 보면,

  "봄정월 말갈이 대거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와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 하였다.

  가을7월 또 말갈이 대령책을 습격하고 니하를 넘었다.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하니 백제가 장군 5명을 보내 도우니 적병이 소문을 듣고 물러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말갈이 실제 신라 북부국경을 침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말갈이 도대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온조왕 때 백제를 수시로 침공하여 도읍을 옮겨야 할 정도였으며, 어떻게 신라 초기에 말갈이 신라의 북부국경을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말갈은 연해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는  내몽골 시라무렌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일부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옥저와 예(동예), 맥과 섞여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로 이 말갈이 백제와 신라를 수시로 침공했던 말갈일 것이고, 이 말갈(속말말갈)이 고구려 멸망 후 발해(대진국)를 세웠고, 후일 다시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웠는데, 이는 사서의 기록에 따라 그 위치를 찾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갈은 연해주에 없었고, 삼국 역시 한반도에 없었으며, 삼국사기는 한반도에서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북경 부근의 대륙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을 한반도로 가져와 그 현장을 한반도에 억지로 꿰맞추려는 엉터리 반도식민사관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