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영정하요수설 34

윤여동설 – 후한시대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의 진짜 위치(종합)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한시대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의 진짜 위치(종합) - 최초공개  1. 고대의 요동(遼東)과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의 진짜 위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 지역으로 밝혀졌다.  후한서에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요동군(遼東郡)이다.[필자주 : 고대의 10리는 지금의 2.3km에 해당]   그리고 사서들에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의 평양성(옛 왕검성)은 하북성 승덕시이고, 백제의 북한산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으로서 도읍 웅진은 진황도시 노룡, 사비는 당산시 난주(난현)로 나타난다.  신라와 가야는 백제의 동쪽, 고구려..

카테고리 없음 2022.04.16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고려까지의 천문관측지는 발해 북쪽이 확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고려까지의 천문관측지는 발해 북쪽이 확실 - 최초공개 [필자가 밝힌 고대의 요동과 발해 북쪽 고조선(왕검조선)과 삼한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고려의 중심강역] [박창범이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밝힌 백제의 일식 최적관측지의 중심지가 지금의 발해 북쪽 지역인데, 윤여동설에 따르면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중심 강역이 바로 이 지역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천문관측 기록] 온조왕 6년(B.C.13) 가을7월 그믐날 신미에 일식이 있었다. 다루왕 7년(A.D.34) 여름4월 동방에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 46년(A.D.73) 여름5월 그믐날 무오에 일식이 있었다. 기루왕 9년(A.D.85) 여름4월 을사에 객..

카테고리 없음 2021.10.24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낙양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 일원]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승덕시(평양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리쯤 된다]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당산시 건창영진(남한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여리쯤 된다] [위 :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중국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후한서에는 요동(遼東)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다고 중국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는..

카테고리 없음 2021.05.15

윤여동설 – 우리의 대륙고대사 진실(眞實)찾기의 지름길 영정하요수설(永定河遼水說)과 북경요동설(北京遼東說)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의 대륙고대사 진실(眞實)찾기의 지름길 영정하요수설(永定河遼水說)과 북경요동설(北京遼東說) - 최초주장 고대의 요동(遼東)은 낙양 동북3,600리에 위치한다고 하였고, 요수(遼水)를 건너면 바로 그 동쪽이 요동(遼東)이었다. ☆ 고대의 10리는 지금처럼 4km가 아니라 2.3km였다고 한다. 따라서 고대의 1,000리는 230km가 된다. 그런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도로 거리가 약800km쯤 된다. 환산해보면 약 3,500리쯤 된다. 지금의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는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해 있었다고 수 많은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고, 서진(西晉) 말기에 고구려는 요동(遼東 : 요수 동쪽)을 차지했었고, 백제는 요서..

카테고리 없음 2021.05.08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漢)나라 건소2년(B.C.37, 필자주 : 사실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간 때는 기원전 58년이었다)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는 이르기를, “주몽이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거의 같은 곳인 듯하다. 한서지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은 낙양에서 3,600리 떨어져 있고..

카테고리 없음 2021.02.27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질산(質山), 좌원(坐原) 그리고 현토군(玄菟郡), 요동군(遼東郡)의 위치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질산(質山), 좌원(坐原) 그리고 현토군(玄菟郡), 요동군(遼東郡)의 위치    [고구려 질산과 좌원 추정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회래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조를 보면,    “22년(A.D.3) 겨울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12월 왕이 질산북쪽(質山陰)에서 사냥하면서 닷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6대 태조대왕 조를 보면,    “55년(A.D.107) 가을9월 왕이 질산남쪽(質陽)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자주색 노루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8대 신대왕(新大王) 조를 보면,    “4년(A.D.168) 한(後漢)나라 현토군 태수 경림(耿臨)이 침입하여 우리..

카테고리 없음 2020.02.22

윤여동설 - 맥족(貊族)은 환국(환인국), 단국(환웅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종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맥족(貊族)은 환국(환인국), 단국(환웅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종족 - 최초주장 “맥(貊)”이란 중국 동북방에 살던 종족의 명칭인데, 삼국유사 기이 제1 마한 조를 보면, “명주(溟州)는 옛날에는 예국(穢國:濊國)이었다.......... 또 춘주(春州)는 옛 우수주(牛首州)로서 옛날에는 맥국(貊國)이었다. 또 혹은 지금의 삭주(朔州)가 바로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平壤城)이 맥국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위 글에 언급된 명주(溟州)는 한반도 강원도의 강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춘주(春州)나 삭주(朔州) 역시 한반도 강원도의 춘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평양성(平壤城)도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위 지도를 보시라. 위 글 ..

카테고리 없음 2018.05.19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전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 제6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眞番郡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신찬이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서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고 통현은 15현이고, 진번군의 치소는 삽현(霅縣)으로서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고, 통현이 15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라고 임둔군과 진번군의 위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진번군(眞番郡 필자주 : 사실은 番의 음이 普安反이라 하였으니 진반군이라 읽어야 옳다)의 위치에 대한 정설이 아직까지도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역사학자들조차 진번군의 위치를 정확..

카테고리 없음 2017.10.15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전을 보면, 6대 태조대왕 90년(A.D.142) 가을9월 환도(丸都)에 지진이 있었다. 10대 산상왕 2년(A.D.198)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13년(A.D.209) 겨울10월 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冬十月 王移都於丸都) 11대 동천왕 20년(A.D.246) 가을8월 위나라에서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로 나와 침입하였다......... 겨울 10월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함락시켜 주민들을 도륙하고, 곧 장군 왕기를 시켜 왕을 추격하므로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필자 주 : 단단대령 또는 절령[자비령]의 오기인 듯)에 이르니 군사들은 분산되어 흩어지고.........

카테고리 없음 2017.09.11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임나(任那)가 있었다 없었다,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아니다 대마도에 있었다, 아니다 큐우슈우에 있었다 등등 임나에 대하여 논란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필자는 임나(任那)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를 찾기에 앞서 먼저 고대 왜국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우리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가 과연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나는 가야의 일원이었고, 백제와 가까이 접하고 있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임나의 종발성을 공격한 기록이 호태왕비문에 전하기 때문이다. [필자주 :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도 강수 스스로 자신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 하였고, 진경대사탑비문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17.08.12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 진나라 때 설치했는데,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다스리는 현은 18현이다. 양평(襄平) : 목사관이 있고, 왕망이 창평(昌平)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전한서 기록 속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의 위치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양평(襄平)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고조선 땅 1천여리를 빼앗은 후 조양(造陽)에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이를 연장성이라 한다]을 쌓고 그곳에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이를 연5군이라 한다]을 설치했다는 곳이고, 후..

카테고리 없음 2017.03.05

윤여동설 -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고대의 요동군(요 동경요양부, 금 동경요양부)은 지금의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고,   고려의 도읍 개경(송악)은 지금의 하북성 관성(寬城)만족자치현이었으며,   후백제의 도읍 전주(완산)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唐山)이었다. ☆ 전주이씨(완산이씨)들의 원래 고향(본관)은 한반도의 전북 전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이었다.    고조선은 한반도에 없었고,  삼한인 마한, 진한, 변한도 한반도에 없었으며,   삼국사기 기록 속 고구려, 백제(대륙백제), 신라, 가야 역시 한반도에 없었다.  따라서 후삼국인 고려, 후백제, 후기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았고,   발해북쪽 지금의..

카테고리 없음 2016.11.23

윤여동설 - 북경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경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모든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요동(遼東)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요하가 옛 요수였고, 그 동쪽이 요동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옛 사서에 요수와 요동이 언급되면 응당 요하와 그 동쪽지역을 염두에 둔다. 옛날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택을 고생하며 건넜다는 기록을 보면 요하 하류의 저습지를 떠올리고, 요동성 전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요양지역을 떠 올리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 고려 때까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부근을 말하는 것이었고,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옛날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공할 때 육군을 이끈 순체가 출발한 요동은 ..

카테고리 없음 2016.08.08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 조를 보면,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 서쪽으로는 요수(遼水), 북쪽(필자주:사실은 서북쪽이다)으로는 옛 거란(契丹), 동쪽(필자주:사실은 동북쪽이다)으로는 대금(금나라)과 접해 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요해는 지금의 발해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며, 거란은 지금의 내몽골 상도 부근에, 금나라는 대흥안령 동쪽 파림좌기, 파림우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는 지금의 요하서쪽 요녕성으로부터 하북성 진황도, 당산, 승덕시, 장가구 일부, 북경 일부,..

카테고리 없음 2016.07.17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에 쌓았던 토산(흙산)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에 쌓았던 토산(흙산)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서기 645년 당 태종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의 일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조의 기록을 보면, “.........강하왕 도종이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안시성)의 동남쪽 모퉁이에 토산(흙산)을 쌓고 안시성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성 안에서도 성을 더욱 높여 방어를 굳게 하고 군사들이 교대하면서 하루에 6,7회씩 싸웠다. 당나라 군사의 돌격차와 기계포의 돌이 성벽을 허물었으나 성안에서 그때마다 목책을 세워서 부서진 곳을 막았다. 도종이 발을 다쳤는데 당 태종이 몸소 침을 놓아 주었다. 밤낮을 쉬지않고 토산(흙산)을 쌓아 무릇 60일이 걸렸으며 품이 50만이나 들었다. 토산(흙산) 꼭대기가 성..

카테고리 없음 2016.01.10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중국 동북삼성 역사학자들이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옛날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산해경에서 말하는 불함산 등 우리 고대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래의 태백산은 지금 칠로도산 산맥의 최고봉인 대광정자산(2,067m)을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인데,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어떻게 고대부터 중국 땅일 수 있었다는 말일까? 지금의 북경 서쪽 영정하(필자주 : 이 강이 바로 고대의 요수였다)로부터 동북쪽으로 요하까지는 원래 우리의 고조선, 삼한, 삼국, 고려 땅이었고, 한반도는 고려를 이어 건국된 조선이 대륙의 개경으로부터 한반도의 한양(현 서울)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역사의 중심이 되었..

카테고리 없음 2015.04.05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요동은 우리 고대 역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요동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요동(遼東)”은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내는 비밀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하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왔던 곳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명· 청시기에 지명을 옮겨 놓은 곳이지 고대의 요동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요하도 고대의 요수가 아니고, 요하하류는 고대의 요택이 아니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고대의 왜국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4.07.20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시의 좌12군 우12군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시의 좌12군 우12군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 기록을 보면, 611년 여름 4월 “(수) 양제의 행차가 탁군의 임삭궁에 이르니 사방의 군사들이 모두 탁군(涿郡)으로 모여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수 양제의 군사출발지가 탁군이었음을 알게 하고, 612년 봄 정월 임오일(초2일)에 수 양제가 내린 조서를 보면, “고구려의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미욱하고 공손하지 못하여 발해와 갈석사이(勃碣之間 =渤碣之間))에 모여들어 요와 예의 지경(遼獩之境=遼濊之境)을 자주 침범하여 왔다” “거란의 무리들과 합세하여 바다 수비병들을 죽였으며, 말갈의 습속을 본받아 요서(遼西)를 침략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탁군, 발해와 갈석, 요, 거란, 요서 등의 지명이 언..

카테고리 없음 2014.03.30

윤여동설 - 우북평군 백랑현(白狼縣)에서 발원하는 백랑수(白狼水)와 요수(遼水) 상류의 백랑수(白浪水)는 서로 다른 강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북평군 백랑현(白狼縣)에서 발원하는 백랑수(白狼水)와 요수(遼水) 상류의 백랑수(白浪水)는 서로 다른 강이다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우북평군(右北平郡) 백랑현 조를 보면, “白狼 莽曰伏狄 師古曰 有白狼山故以名縣(백랑현을 왕망은 복적이라 하였다. 안사고는 백랑산이 있어 현의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북평군 백랑현에 백랑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우북평군이 어디를 말하는지 정확히 밝힌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우북평군 백랑현의 위치도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드디어 우북평군의 정확한 위치를 찾은 듯한데, 우북평군은 지금의 하북성 성도인 석가장시 북쪽부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과 전..

카테고리 없음 2013.03.31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남제서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 동성왕이 남제에 사신을 보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의 관작을 요청한 표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488년에 일어난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490년에 남제에 보낸 표문에는, 면중왕 저근을 도장군 도한왕으로, 건위장군 팔중후 여고를 영삭장군 아착왕으로, 건위장군 여력을 용양장군 매로왕으로, 광무장군 여고를 건위장군 불사후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장사 고달을 용양장군 대방태수로,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사마 양무를 건위장군 광릉태수로, 행선위장군 겸참군 회매를 광무장군 청하태수로 임명해달라고 하자 그를 승인하고, 동성왕에게도 그 할아버지 모도왕이 받았던 작위와 같은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

카테고리 없음 201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