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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후한시대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의 진짜 위치(종합) - 최초공개

윤여동 2022. 4. 16. 07:52

윤여동설 후한시대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의 진짜 위치(종합) - 최초공개

 

 

1. 고대의 요동(遼東)과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의 진짜 위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 지역으로 밝혀졌다.

  후한서에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요동군(遼東郡)이다.[필자주 : 고대의 10리는 지금의 2.3km에 해당]

  그리고 사서들에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의 평양성(옛 왕검성)은 하북성 승덕시이고, 백제의 북한산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으로서 도읍 웅진은 진황도시 노룡, 사비는 당산시 난주(난현)로 나타난다.

  신라와 가야는 백제의 동쪽, 고구려의 동남쪽에 위치하였는데,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이고, 금관가야의 금관성은 요녕성 호로도시 흥성시(興城市)의 흥성고성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고조선(왕검조선)은 없었고, 삼한인 마한, 진한, 변한도 없었으며, 삼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도 없었고, 고려도 없었다. 이 모두는 지금의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의 요동은 명, 청 대에 이르러 지명이 이동된 것이다.

  고대 왜국 땅에 요동군을 배치했고, 옛 신라, 가야 땅을 요서군으로 만들었으며, 옛 고구려 서부지역에 상곡군을 배치했고,  옛 요동군 땅을 우북평군이라 했으며, 옛 백제 땅에 어양군을 배치했던 것이다.   

   

마한은 백제가 되었고, 변한은 가야가 되었으며, 진한은 신라가 되었다. 그리고 신라는 다시 고려로 이어졌다.

 

2.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 그리고 서진낙랑군(西晉樂浪郡)의 진짜 위치

 

 

  전한(前漢) 무제 때인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설치했던 한사군(漢四郡),

  낙랑군(樂浪郡, 치소는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진번군(眞番郡, 치소는 우수주였던 지금의 요녕성 능원),

  임둔군(臨屯郡, 치소는 명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통요의 고륜기),

  현토군(玄菟郡, 치소는 함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적봉의 옹우특기)이었다.

  그런데 진번군과 임둔군은 설치된 지 26년 후인 기원전 82년에 폐지되었고[필자주 : 진번군은 맥국이 되고, 임둔군은 동예가 되었다], 기원전 75년에 이르러서는 옥저 땅에 설치했던 현토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겨 설치하게 된다.[필자주 : 현토군이 옮겨가자 그 땅은 다시 북옥저, 남옥저, 동옥저로 거듭난다]

  그리고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의 치소는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자리에 설치했었는데, 그 후 전한, (), 후한 교체기에 최리의 낙랑국(樂浪國)으로 변모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구려 대무신왕이 서기 37년에 이르러 전한낙랑군을 쳐서 빼앗아 버리자, 후한의 광무제가 서기 44년 가을에 이르러 군사를 보내 옛 낙랑군 땅 전부를 탈환하려 시도했으나 고구려의 강력한 방어에 막혀 전부를 탈환하지는 못하고 옛 낙랑남부도위에 속했던 7개현만을 탈환하고는 그곳 살수(薩水) 이남지역에 다시 낙랑군을 부활시키게 되고, 치소를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하북성 흥륭현(興隆縣)에 두게 되는데, 필자는 이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이라 부른다.

  이 후한낙랑군은 고구려 미천왕이 서기 313년에 쳐서 우리의 역사 강역에서 축출되었는데, 당시 서진(西晉)에서는 이 낙랑군을 갈석산(碣石山, 현 하북성 보정시 낭아산) 근처로 교치(僑置) 시켜 이후에도 상당기간 존속하게 된다.

  그리고는 태강지리지에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나라가 쌓은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된다라는 기록을 삽입해 놓게 되어 역사연구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서진에서 낙랑(樂浪)이란 지명을 교치(僑置)했고, 그 후 태강지리지에 그러한 내용이 삽입되었음을 모르고, 낙랑군의 원래 위치가 갈석산 부근이었다고생각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3. 대방군(帶方郡)의 진짜 위치

 

  대방군(帶方郡)은 삼국지 한() 전에, "(후한) 환제와 영제 말기에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군·현의 많은 백성들이 한()으로 흘러 들어가자 건안(A.D.196219)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 장창 등을 보내 유민을 불러 모으고, 군대를 일으켜 한()과 예(, 동예)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점점 돌아왔고 그 후 왜()와 한()이 드디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설치연혁을 알 수 있다.

  대방군은 후한낙랑군의 대방현을 비롯한 일부 현을 분리시켜 설치했다.

  지금의 북경 동쪽 청 동릉이 위치하고 있는 준화시 부근이 그 치소였던 것으로 보이고, 그 대방의 동쪽 가까이에 백제(온조백제, 대륙백제)가 위치했었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이 대방군과 백제 사이의 접촉기록이 많이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도사관을 추종하는 역사학자들은 지금도 한반도 황해도에 대방군이 위치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 지금의 북경(北京) 일원을 말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전한낙랑군, 후한낙랑군이 실제 어디에 설치되었었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으며, 고대의 요수(遼水)가 북경 서쪽을 지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이고, 압록강이 북경 북쪽의 백하(白河)와 밀운수고이며, 살수(薩水)가 북경 동북쪽의 고북구를 지나는 조하(潮河)이고, 패수(浿水)가 난하(灤河) 임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듯 엉터리 같은 주장들을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4. 고대 왜국(倭國)의 진짜 위치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발해동쪽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국 사서들에 고대 왜국의 위치에 대하여,

  전한서(前漢書)에는 낙랑해 중,

  후한서(後漢書)에는 ()의 동남 대해 중,

  삼국지(三國志)에는 대방 동남 대해 중,

  진서(晉書)에는 대방 동남 대해 중,

  송서(宋書)에는 고구려 동남쪽 대해 중,

  남제서(南齊書)에는 고구려 동남쪽 대해 중,

  수서(隋書)에는 백제신라의 동남쪽,

  북사(北史)에는 백제신라의 동남쪽,

  구당서(舊唐書)에는 신라 동남쪽 대해 중,

  통전(通典)에는 대방 동남쪽 대해 중이라고 기록했던 것인데, 위 그림을 보면 옛 사서들이 아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역사학자들도 지금의 요동반도가 고대의 왜국이었음을 아는 이가 없고, 역사왜곡, 유물조작질을 일삼고 있으니 그 수준이란 것이 정말 별 볼일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고대 역사 역시 필자는 반도식민사관에 찌들어 있는 엉터리 같은 우리 강단사학자들에게 맡겨서는 백년 아니라 천년이 지나도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우리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먼저 우리 역사의 진실을 깨우쳐 알고 있으면, 그때부터 우리 역사의 해석이 조금씩 바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려면 한반도를 떠나 발해 북쪽 대륙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환국, 단국, 고조선(왕검조선)이 있었고, 삼한(마한,진한,변한)이 있었으며, 삼국(고구려,백제,신라)과 가야가 있었고, 고려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경주, 김해 일원에는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인 김성(金星) 일파가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왕국이 있었고, 전북 금마, 충남 부여와 공주는 대륙에서 백제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武廣王)이 근초고왕과의 20여년에 걸친 왕위다툼 끝에 결국 패하자 한반도 서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반도백제의 도읍이었으며,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후 그곳을 떠나 한반도 한양(현 서울)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그 때부터 한반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대대손손 살았던 대륙의 우리 옛 땅을 잃어버렸으나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필자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기본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이고, 우리 역사가 아주 잘못 해석되고 있다고, 말해줘도 믿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는 필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지경이 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필자는 왜 침침한 눈 비벼가며 옛 사서들을 뒤적이고 있는 것일까요? 엉터리로 역사연구를 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일까요? 필자가 정신이 잘못 되지 않는 한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요?

필자는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한민족이 잃어버린 대륙의 우리 옛 땅을 되찾을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우리의 옛 땅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고 해도 우리의 옛 땅을 되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필자는 지금 우리의 옛 땅이 발해 북쪽 대륙에 있었노라고, 그곳 발해 북쪽 대륙이 우리의 선조들이 대를 이어 살아왔고, 뼈가 묻힌 옛 땅이었노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