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요동군 39

윤여동설 -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일원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일원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상곡군(上谷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필자 주 : 사실은 진나라 이전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최초로 설치했다) 왕망은 삭조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36,008호이고, 인구는 117,762명이다. 15개현인데 저양(沮陽), 천상(泉上), 반(潘), 군도(軍都), 거용(居庸), 구무(구무), 이여(夷輿), 녕(寧), 창평(昌平), 광녕(廣寧), 탁록(涿鹿), 저거(저居), 여(茹), 여기(女祁), 하락(下落)이다. 어양군(漁陽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왕망은 통로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68,802호이고, 인구는 264,116명이다. 12개현인데 어양(..

카테고리 없음 2019.10.05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장가구시 회안성진 : 규모 가로세로 각 약 1.5km 좌표 동경 114도28분01초 북위 40도27분48초] [위 : 무너진 현토성 성벽]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했던 한사군은 낙랑군(樂浪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 현토군(玄菟郡)이었다. 그 중 현토군(玄菟郡)은 처음에는 기원전 107년에 옥저 땅에 설치되었으나 기원전 75년에 이르러 그 위치를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 옮긴 현토군이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 낙양 동북 4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현토군으로서 바로 이 현토군이 고구려, 동부여와 수많은 접촉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때 새로 옮겨진 현토군은 지금의 중..

카테고리 없음 2019.05.07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 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주서 이역전 고려(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그 땅이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를 건너니 동서 2천리요,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과 이웃하여 남북이 1천여리였다. 도읍은 평양성(平壤城)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았다........그 외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는데 별도의 도읍지이다. 그리고 다시 요동과 현토 등 수십 개의 성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성으로서 장안성이라고도 부르고, 그 외에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부른다”라..

카테고리 없음 2016.11.13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탁록(涿鹿 :지금의 하북성 탁주)에 도읍하고 치우천왕(蚩尤天王)과 천하를 놓고 다투었고, 황제헌원의 손자(외손자라고도 한다)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는 대극성(大棘城 : 극성이라고도 한다)에 도읍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 우리는 이 대극성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전설 속 대극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遼東)은 영정하 동쪽인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요서(遼西)는 영정하의 서쪽 방산(房山)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서(晉書) 권108 재기 제8 모용외전을 보면, 전연(前燕)의 모용외(慕容廆)가 대극성이 전욱고양씨의 ..

카테고리 없음 2016.08.26

윤여동설 - 진한(辰韓)과 탁수(涿水)는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한(辰韓)과 탁수(涿水)는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辰韓) 조를 보면, 『후한서에 이르기를 “진한(辰韓)의 노인이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韓)으로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고 하는데, 마치 진나라 말과 비슷하다. 혹은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 열두 소국이 있는데, 각각 1만호로서 나라를 칭한다.” 또 최치원은 이르기를 “진한은 원래 연나라에서 피난해온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과 동네의 명칭을 사탁, 점탁 등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지 한(韓) 전을 보면,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삼종이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5.01.31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요동은 우리 고대 역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요동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요동(遼東)”은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내는 비밀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하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왔던 곳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명· 청시기에 지명을 옮겨 놓은 곳이지 고대의 요동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요하도 고대의 요수가 아니고, 요하하류는 고대의 요택이 아니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고대의 왜국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4.07.20

윤여동설 - 천문미기분야 “연(燕)”나라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천문미기분야 “연(燕)”나라의 위치 - 최초주장 天文二十八宿 “연경(燕京)”은 연(燕)나라의 도읍(京)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나라는 모든 역사서에 “천문미기분야(天文尾箕分野)”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천문도 28수(二十八宿) 중 “미(尾)” “기(箕)” 방향에 해당한다는 말로서 동북방향을 이르는 말이다. 연나라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야 하는 것은 연나라가 우리 고대 강역의 서쪽에 바로 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연나라의 위치를 정확히 찾으면 우리 역사 강역의 서쪽 경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연나라는 주 무왕이 소공(召公) 석(奭)을 연 땅에 봉하면서 시작되어, 전국시대 때는 전국칠웅으로 성장하기도 하였으나, 진시황이 연나라를 쳐서 없애고,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

카테고리 없음 2014.06.22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에는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의 위치가 잘못 그려져 있다. 왜냐하면 후한서에 어양군은 낙양동북2000리, 우북평군은 낙양동북 2300리,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고구려 조를 보면,  “건무 25년(A.D.49) 봄 구려가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약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祭肜 : 삼국사기에는 蔡彤(채동)으로 되어 있다]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밖으로 철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구려(고구려)가 후한을 침공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는 고..

카테고리 없음 2013.06.22

윤여동설 - 요(거란) 5경의 위치 찾기

윤여동설 - 요(거란) 5경의 위치 찾기 요(거란) 5경의 위치에 대한 기록 상경임황부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는 원래 한(漢)나라의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 땅(?)이다. [필자주 : 상경임황부가 요동군에 속한 현이었다는 것은 오기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나라 왕망은 북안평(北安平)이라 불렀다. .....................(중략)....................... 요 태조 신책 3년(A.D.918)에 그곳에 성을 쌓고 황도(皇都)라고 불렀다. 천현 13년(A.D.938)에 이름을 상경(上京)으로 바꾸었고 부를 임황(臨潢)이라 하였다. 중경대정부 중경대정부(中京大定府)는 우순 때 영주(營州)가 되었고(?), 하나라 때는 기주(..

카테고리 없음 2012.06.25

윤여동설 - 천년의 수수께끼 임유관(臨渝關)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수수께끼 임유관(臨渝關)을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온달열전을 보면, “.......이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遼東)을 침략하니 왕(평원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의 들판에서 맞받아 쳐 싸우는데, 온달이 선봉이 되어 용감히 싸워 적병 수십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긴 기세를 타 용감히 싸워 크게 이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평강상호태열제(평원왕)는 담력이 있고 말타고 활쏘는 것을 잘했으니 곧 주몽의 풍모가 있었다. 대덕으로 개원하고 정치를 잘하였다. 대덕18년 병신(A.D.576)에 제(평원왕)는 대장 온달을 보내 갈석산(碣石山), 배찰산(拜察山)을 토벌하고 추격하여 유림관(楡林關)에 이르러 북주를 크게 격파하니 유림진(..

카테고리 없음 2012.06.04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고대 강대국들의 위치와 그들이 어느 지역을 놓고 다투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후한서지리지 제23 군국5를 보면, 상당군, 태원군, 상군, 서하군, 오원군, 운중군, 정양군, 안문군, 삭방군은 병주(幷州)에 속한다고 하였고,[필자 주 : 병주는 낙양의 북쪽 방향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탁군, 광양군, 대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요동속국은 유주(幽州)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탁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1,800리(?)에 위치해 있었고, 광양군은 낙양동북 2,000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군은 낙양동북 2,500리, 상곡군 낙양동북 3,200리, 어양군 낙양동..

카테고리 없음 2011.08.19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는 셋이 있었는데, 북옥저와 남옥저 그리고 동옥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 옥저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했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속은 모두 남옥저와 같으며, 국경의 북쪽(필자주 ; 원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으로 읍루와 접..

카테고리 없음 2011.01.24

윤여동설 - 고구려 졸본, 국내성과 작위 속 요동군개국공의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졸본, 국내성과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 속 “요동군개국공”의 의미 - 최초주장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를 보면 한결같이 “요동군개국공”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북위에서 장수왕에게 보낸 작위는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고, 문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안장왕에게 보낸 작위는 “안동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안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 산기상시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북제에서 양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 시중 표기대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에는 대개 “..

카테고리 없음 2011.01.12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역사에서 “연(燕)”이라는 나라는 그 역사가 매우 깊고, 우리의 고대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그 중심 강역이 어디인지, 도읍 연경(燕京)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나라는 춘추시대에도 5패(五覇)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때에도 분명 “연(燕)”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고, 전국시대에는 7웅의 하나가 될 정도로 강대국이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요서군과 요동군 등 5군지역을 빼앗아 강역이 많이 넓어졌기 때문에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진(秦)나라가 대륙을 통일하게 되자 연나라는 진나라에 병합됨으로써 그 세력권내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어 한(漢), 위(魏), 서진(西晉)에..

카테고리 없음 2011.01.07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1번은 현재 중국 사람들이 지명을 이동시켜 만들어 놓은 탁록이고, 2번은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툰 진짜 탁록벌판이다] 원동중의 삼성기 신시역대기는 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을 치우천왕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치우천왕이 황제헌원과 탁록의 벌판에서 국운을 건 전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설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는 있다. 그러나 그 탁록벌판이라는 곳이 정확하게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대명일통지 순천부 조를 보면, 탁주(涿州)가 순천부 서남 140리에 있는데, 춘추전국 때는 연나라의 탁읍이었고, 진(秦)나라 때는 ..

카테고리 없음 2011.01.03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지금 중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漢)나라가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도움을 받아 건국된 나라였다고 하면 중국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전한서 권1상 고제기 제1상 4년(B.C.203) 조를 보면, “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 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貉在東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 라는 안사고의 주가 달려 있다. 이의 뜻은 “기원전 203년에 북맥과 연나라가 용감한 기병을 보내와 한나라를 도왔다"라는 뜻이고, “맥은 동북방에 있는 삼한의 지속으로 모두 맥류이다”라는 뜻이다. ☆ 중국 사람들은 주변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나누어 불렀..

카테고리 없음 2010.08.16

윤여동설 - 내몽골 파림좌기는 요(거란) 상경임황부가 아니라 발해의 상경용천부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내몽골 파림좌기는 요(거란) 상경임황부가 아니라 발해의 상경용천부이다 - 최초주장 (위 : 파림좌기의 발해 상경용천부 터로서 중국에서는 이곳을 요 상경임황부 터라고 하고 있는데 거짓말이다)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라는 의미는 요수(遼水)를 중심으로 그 동쪽과 서쪽이라는 의미일 것인데, 거란족이 도읍을 임황(상경임황부가 된다)에 정하고는 국호를 “요(遼)”라고 하게 된다. 국호를 새로 정할 때 아무 인연도 없고, 역사, 지리적 관계도 없이 아무렇게나 정했을 리는 만무하고 거란족과 “요(遼)”가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국호를 “요(遼)”라고 정했을 것인데, 사서들은 거란족이 "요택(遼澤)"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조선(이씨조선을 말함)의 경우에도 처음에 국호를 정할 때 ..

카테고리 없음 2010.08.02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의 오기이다]로부터 동남방[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 고 하였으며, ☆ 삼국사기 찬자들이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통전의 기록이란 통전 권186 변방2 동이하 고구려 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朱蒙棄夫餘 東南走渡普述水 至紇升骨城 遂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주몽이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서 성씨를 삼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1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