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요(거란) 5경의 위치 찾기
요(거란) 5경의 위치에 대한 기록
상경임황부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는 원래 한(漢)나라의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 땅(?)이다.
[필자주 : 상경임황부가 요동군에 속한 현이었다는 것은 오기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나라 왕망은 북안평(北安平)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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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태조 신책 3년(A.D.918)에 그곳에 성을 쌓고 황도(皇都)라고 불렀다.
천현 13년(A.D.938)에 이름을 상경(上京)으로 바꾸었고 부를 임황(臨潢)이라 하였다.
중경대정부
중경대정부(中京大定府)는 우순 때 영주(營州)가 되었고(?), 하나라 때는 기주(冀州)에 속했으며, 주나라 때는 유주(幽州)의 일부분이었으며, 진(秦)나라가 천하를 군으로 만들 때 요서(遼西郡)(?)가 되었다.
한나라 때는 신안평현(新安平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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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24년(A.D.1006)에 오장원까지 진출하였는데, 옛 해왕 아장의 땅(故奚王牙帳地)이었다.
25년(A.D.1007)에 성을 쌓고 한호로 채우고 중경(中京)이라 부르고 부를 대정(大定)이라 하였다.
남경석진부
남경석진부(南京析津府)는 원래 기주(冀州)의 땅이다.
고양씨는 유릉(幽陵)이라 하였고, 도당씨는 유도(幽都)라고 하였으며, 우순씨는 나누어 유주(幽州)를 만들었다.
상나라는 유주를 기주에 합하였고, 주나라는 병주(幷州)를 나누어 유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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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무왕은 태보 소공석을 연(燕)에 봉하였다.
진나라는 그 땅으로 어양, 상곡, 우북평, 요서, 요동 5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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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으로부터 후진에 이르러 후진 고조(석경당)가 요나라의 지원과 공이 있었으므로 그 대가로 유주 등 16개 주를 바쳤다.
요 태종은 이를 승격시켜 남경(南京)을 만들었는데, 또한 연경(燕京)이라고도 불렀다.
동경요양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는 본래 조선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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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말기에 공손도가 점거했던 곳으로서 아들 공손강, 손자 공손연으로 전해졌는데, (공손연은) 자칭 연왕(燕王)이라 하였고, 연호를 소한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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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책 4년(A.D.919) 요양 옛 성을 수리하고 발해와 한나라 사람으로 동평군(東平郡)을 만들고 방어주로 삼았다.
천현3년(A.D.928)에 동단국 백성을 옮겨 살게 하고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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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 13년(A.D.938)에 남경을 동경으로 고치고 부를 요양(遼陽)이라 하였다.
서경대동부
서경대동부(西京大同府)는 도당씨(요임금)의 기주지역이다.
우(순임금)는 나누어 병주(幷州)라 하였고, 하나라는 되돌려 기주에 속하게 하였다.
주나라 때의 직방에서는 정북을 병주라 하였다.
전국시대에는 조(趙)나라에 속했고, 무령왕이 처음으로 운중군(雲中郡)을 설치하였다.
진나라는 대왕국(대왕국)에 속하게 했다가 후에 평성현(平城縣)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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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의 고조가 후당을 대신하는데 거란의 지원과 공이 있었으므로 산전(山前)과 대북(代北)을 나누어 뇌물로 주었다.
대동(大同)이 내속하였으므로 서경(西京)을 건설하였다.
요(거란) 5경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