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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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1. 1. 24. 16:11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는 셋이 있었는데, 북옥저와 남옥저 그리고 동옥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 옥저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했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속은 모두 남옥저와 같으며, 국경의 북쪽(필자주 ; 원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으로 읍루와 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위치를 충분히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옥저의 위치를 찾으면 개마대산을 찾을 수 있고, 읍루, 부여, 예(동예), 위만조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또 초기 현토군의 위치를 밝힐 수 있고, 낙랑동부도위의 위치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이며, 용주, 호주, 발주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이며, 노주, 현주, 철주, 탕주, 영주, 홍주의 6개 주를 다스린다.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인데, 책성부라고도 한다. 경주, 염주, 목주, 하주의 4개 주를 다스린다.

  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이며, 옥주, 정주, 초주의 3개 주를 다스린다.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이며, 신주, 환주, 풍주, 정주의 4개 주를 다스린다..........용원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길이고, 남해는 신라길이다. 압록은 조공길이고, 장령은 영주길이며 부여는 거란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옥저의 옛 땅이 후세에 이르러 발해의 강역에 포함되었고, 발해의 남경남해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추모왕 10년(B.C.28) 조를 보면,    

  “겨울 11월 왕이 부위염을 보내 북옥저를 쳐서 없애고 그 지역을 고을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의 개국초기 북옥저가 소멸하게 되었고, 고구려의 강역이 상당히 넓어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고,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 기록이 있는데, 이때 관구검은 유주(幽州)를 출발하여 현토를 경유하여 진군하다가 고구려 방어군과 비류수 강가(沸流水上)와 양맥골짜기(梁貊之谷)에서 전투를 했고, 압록원을 지나 환도성에 도착하여 환도성을 함락 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자 도읍인 환도성을 함락 당한 동천왕은 죽령(竹嶺, 필자주 :죽령이 아니라 철령이어야 옳다 )을 넘어 남옥저(南沃沮)로 도망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남옥저의 위치를 알지 못하니 삼국사기 기록 속 지명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북사에는 이때의 상황을 정시5년(A.D.244), 정시6년(A.D.245) 때의 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 관구검이 장군 왕기로 하여금 동천왕을 뒤쫓게 하여 옥저를 지나 1천여리를 쫓아 숙신의 남쪽에 이르러 바위에 공적을 새기고 또 환도산에도 불내성이라 새기고 돌아왔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동천왕이 옥저를 지나서도 1천여리를 더 쫓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때 동천왕은 남옥저에서 다시 북옥저까지 도망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의 기록을 한반도에 비정하여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고대의 요동, 현토가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구려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신라가 어디를 중심으로 하여 어떻게 강역을 넓혀 갔고, 고대의 왜국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살았다는 중국 사서들의 기록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고, 대방군이 한반도 황해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헛소리만 해대고 있는 것이다.

  대륙 지금의 북경 부근과 하북성에 위치하고 있던 요동군과 현토군(초기현토군이었던 옥저에서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긴 곳), 그리고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고구려 평양성과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위치하고 있었던 신라 서라벌(금성)의 위치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옥저와 예의 위치 역시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고구려 동천왕이 넘었던 고개가 지금의 어디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필자가 옥저의 위치와 그 주변국의 대강의 위치를 밝혀내 공개하는 것이니 부디 이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우리 역사의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져 대륙의 우리 옛 땅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