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에는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의 위치가 잘못 그려져 있다. 왜냐하면 후한서에 어양군은 낙양동북2000리, 우북평군은 낙양동북 2300리,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고구려 조를 보면,
“건무 25년(A.D.49) 봄 구려가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약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祭肜 : 삼국사기에는 蔡彤(채동)으로 되어 있다]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밖으로 철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구려(고구려)가 후한을 침공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는 고구려 5대 모본왕 2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록에 나타나는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이라는 지명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태원은 지금 산서성의 성도이다.
우리의 역사상식대로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고구려가 그 멀리 떨어진 산서성 태원까지 가서 약탈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때 고구려는 어디까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때 고구려는 최소한 지금의 산서성 대동, 북경 부근까지는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낙랑군은 낙양동북 5,000리,
현토군은 낙양동북 4,000리,
요동군은 낙양동북 3,600리,
요서군은 낙양동북 3,300리,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
우북평군은 낙양동북 2,300리,
어양군은 낙양동북 2,000리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