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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5. 15. 20:18

윤여동설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낙양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 일원]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승덕시(평양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리쯤 된다]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당산시 건창영진(백제 남한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여리쯤 된다]

 

[위 :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중국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후한서에는 요동(遼東)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다고 중국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는 백제의 북쪽에, 백제는 신라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신라의 남쪽에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곧 요동(遼東) 동북쪽, 동쪽 1천여리에 고구려(필자주 : 평양성을 말한다)와 백제(필자주 : 남한성을 말한다)가 위치하고 있었고, 그 백제의 동쪽에 신라와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

   고대의 10리는 지금처럼 4km가 아니라 약2.3km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 하남성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북경까지의 고속도로 거리가 약 800km쯤 되어 약 3,478리로 환산되는데, 옛날 도로의 굴곡지수를 감안하면 3,500-3,600리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지금 중국의 도읍인 북경(北京) 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었다는 말이고, 북경에서 동북쪽, 동쪽 방향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며, 신라와 가야도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의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피서산장)는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230km쯤 떨어져 있어 고대의 거리 단위로 약 1,000여리쯤이 되니 이곳이 바로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인 것이고,

  하북성 당산시 천안시 건창영진(建昌營鎭)은 북경에서 동쪽으로 240km쯤 떨어져 있어 고대의 거리 단위로 1,040리쯤 떨어져 있으니 그곳이 바로 백제의 남한성(南漢城)으로 비정되며,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다.

 

[위 : 고북구(살수)에서 북경(요동)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570여리가 된다]

 

[위 : 밀운수고(압록강)에서 북경(요동)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450리가 된다]

 

   그리고 612년 고구려 영양왕 때 수나라군의 고구려 침공기록을 보면, 수나라군은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遼東)에 도착한 후 압록수(압록강)를 건너고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平壤城)까지 왔었는데, 철수할 때 수나라군이 살수(薩水)를 절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공격을 하자 수나라군의 대오가 무너지게 되어 절반쯤의 군사들이 그곳 살수에서 죽었고, 남은 군사들은 450리를 11(一日一夜)에 도망쳐 갔다고 한다.[필자주 : 원문에는 살수에서 압록강까지 450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압록강에서 요동까지의 거리일 것이다]

   11(一日一夜) 동안 100km를 계속 달려 도망쳤다는 말이 되니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시간 당 4-5km24시간을 계속 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고구려군은 대오가 무너져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수나라군을 뒤 쫓으며 잡아 죽이게 되어 수나라군 305천명 중 겨우 2,700명만이 살아남아 요동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이때 수나라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수나라가 철저하게 패배했던 전쟁이었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고,

  고구려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를 말하는 것이며,

   패수는 지금의 난하 중, 상류를 말하는 것이므로 수나라군 약 절반이 몰살했던 살수대첩(薩水大捷)의 현장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통행로가 오직 하나 뿐인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일 수밖에 없고,

  고대의 압록강은 지금의 밀운수고(백하)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고려 때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도 바로 이곳 고북구 부근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상고사(上古史)와 삼한,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시대까지의 고대사(古代史)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가설들이 계속하여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필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지금 중국의 도읍인 북경(北京) 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었음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 고려의 서경(西京)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피서산장) 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고대 우리의 옛 땅이었던 요동성(遼東城)에 도읍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모르고 있는 것이고,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鴨綠江)은 지금의 밀운수고(백하)이며,

   살수(薩水)는 지금 고북구를 지나는 조하(潮河)이고,

   패수(浿水)는 하북성 승덕시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는 난하(灤河) , 중류 임을 인식해야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역사 강역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필자의 주장에 따라 옛 사서의 기록들을 해석해 보라.

   필자가 왜 지금의 북경일원이 고대의 요동(遼東)이었다고 하는지,

   왜 하북성 승덕시(피서산장)를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 전한낙랑군의 치소,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이라고 하는지,

   진황도 도산(都山)을 백제의 북한산(北漢山)이라고 하는지, 난하(灤河) 하류를 백제의 백강(白江)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의 현장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 북경 동북쪽, 동쪽의 대륙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우리의 고구려, 백제(대륙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 동예와 맥, 옥저가 한반도에 없었음도 확실한 것이다.

   한반도에는 익산 금마(金馬)에 도읍했던 무광왕(武廣王)의 반도백제와 경주에 도읍했던 투후 김성(金星)이 세운 흉노족왕국이 있었다.

 

투후 김성(金星)은 왕망의 신() 나라가 후한(後漢)의 광무제에 의해 멸망하자 대륙을 떠나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도망쳐 와서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흉노족왕국을 세워 태조 성한왕(星漢王)이 된 인물이고, 무광왕(武廣王)은 대륙백제에서 근초고왕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최종으로 패하자 365년경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익산 금마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반도백제)를 세운 인물이다. 이 반도백제는 동성왕, 무령왕의 할아버지인 모도왕(牟都王) 때 대륙백제를 흡수 통합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흉노족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들을 천년왕조 신라가 남겨 놓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고,

   무광왕(武廣王)의 반도백제가 남겨 놓은 문화유산들을 온조왕의 대륙백제가 남겨 놓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이여!

   잃어버린 우리의 옛 땅이 대륙에서 신음하며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의 옛 강역이 허물어져 가고 있고, 우리 대륙역사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오호 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