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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맥족(貊族)은 환국(환인국), 단국(환웅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종족 - 최초주장

윤여동 2018. 5. 19. 06:33

윤여동설 - 맥족(貊族)은 환국(환인국), 단국(환웅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종족 - 최초주장

 

 

  “()”이란 중국 동북방에 살던 종족의 명칭인데, 삼국유사 기이 제1 마한 조를 보면, “명주(溟州)는 옛날에는 예국(穢國:濊國)이었다.......... 또 춘주(春州)는 옛 우수주(牛首州)로서 옛날에는 맥국(貊國)이었다. 또 혹은 지금의 삭주(朔州)가 바로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平壤城)이 맥국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위 글에 언급된 명주(溟州)는 한반도 강원도의 강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춘주(春州)나 삭주(朔州) 역시 한반도 강원도의 춘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평양성(平壤城)도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위 지도를 보시라.

위 글 내용 중에 삭주(춘주)를 맥국이라고도 하고, 평양성(왕검성)을 맥국이라고도 했다는 것은 고조선을 세운 중심종족이 맥족이었고, 첫도읍 아사달에서 왕검성(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자 맥족의 일부는 당연히 왕검성 부근으로 옮겨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기록이 남겨졌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삭주(춘주) 부근도 맥이고, 왕검성 부근도 맥이었던 것입니다. 다 옳은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2 삭주(朔州) 조를 보면, “삭주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동남쪽과 예(濊 : 동예)의 서쪽이 옛날 맥()의 지역이다하였으니 아마 지금 신라의 북쪽 삭주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맥()이 우리의 선조임에는 틀림없을 것인데, 찾고 보니 이 맥족(貊族)이 바로 우리 환국, 환웅국, 고조선, 고구려의 중심종족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고대 중국 기록들에 나타나는 ()”은 고조선,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 같다.

 

삼국유사 마한 조를 보면, “삼국사에 이르기를 명주(溟州)는 옛날에는 예국(穢國:濊國)이었다. 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얻어서 바쳤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잡지 명주(溟州) 조를 보면, “명주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하슬라라고도 한다)인데, 후일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부 경계에 있는 명주는 대개 예()의 옛 땅이다하였으니 이전 사서의 기록에 부여(扶餘: 동부여)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시대 맥()과 예()의 위치를 비교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위 글을 보면 삼국사기 찬자들은 예()가 원래 부여(동부여)의 옛 땅에서 살다가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명주 부근으로 옮겨와 다시 예(동예)를 재건한 것을 몰랐던 듯 부여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라는 바보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일부 역사학자 중에는 숙신족(肅愼族)이나 예족(濊族)이 우리 한민족의 중심종족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필자는 맥족(貊族)”이 우리 고조선, 고구려의 중심종족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숙신족은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등으로 변화되었으므로 여진족의 선조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예족은 원래 동부여의 옛 땅인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살았으나 동부여 세력에 밀려 개마대산(현 대흥안령) 동쪽 지금의 내몽골 고륜기 부근 즉 명주(하슬라) 부근으로 옮겨가 살았기 때문에 변방부족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들을 우리 한민족의 중심종족, 중심선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맥족(貊族)의 원래 중심지가 옛 환국과 환웅국의 중심지인 지금의 영성, 능원, 건평, 객라심좌익, 적봉, 옹우특기 등과 겹치고, 또 고조선의 단군왕검 역시 맥족의 땅이었을 왕검성(평양성)에 도읍을 세운 것으로 보아 역시 맥족이었을 가능성이 많고, 고구려 역시 구려 땅과 옛 고조선 땅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그 중심종족이 맥족일 것이다.

 

지금 능원 우하량에서는 우리의 환국(환인국), 단국(환웅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유적으로 생각되는 대규모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 환인, 환웅국의 왕으로 추정되는 옥으로 온 몸을 치장한 인골도 출토되었고, 흙으로 만든 여신두상과 곰의 발모양도 발굴되었으며, 옥으로 만든 옥웅룡도 출토되었습니다.

  예족이 호랑이를 신성시 했던 것처럼 맥족은 곰을 신성시 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환웅설화에 나타나는 웅녀설화는 예족처녀와 맥족처녀가 환웅천왕의 왕비선발대회에서 경합을 벌여 결국 맥족처녀가 왕비로 간택되는 과정이 설화형식으로 전해진 것으로서 우하량에서 발굴된 여신두상은 바로 환웅설화 속 웅녀의 얼굴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 : 우하량 출토 인골 : 온 몸을 옥으로 치장한 것으로 보아 고귀한 신분이었을 것이다]

 

                                               [위 : 우하량 출토 여신두상 : 환웅설화 속 웅녀의 얼굴모습일 것이다]

 

                                    [위 : 우하량 출토 곰발모양 조각 :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맥족이라는 증거품이다]

 

 

                                                  [위 : 우하량 출토 옥웅룡 : 우하량 부근에 살던 맥족의 상징물이다]

 

  그런데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우고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자 일부 맥족(貊族)들은 원래 살던 그곳을 떠나 서쪽으로 왕검성(후일의 평양성), 요동, 요수 부근으로 확산되어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 조를 보면, “구려(句驪)는 일명 맥()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를 추정해 볼 수 있게 하는데, 후일에 이르러 이 요수(遼水) 부근에 위치한 구려의 소수맥들이 고구려의 중심 5부족 중 계루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원래는 북부여족이 세운 나라인 고구려가 후일 맥족의 나라와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대요수(大遼水)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고, 소요수(小遼水)는 연경현을 지나 관청수고로 흘러들어가는 규수하(嬀水河)를 말하는 것인데, 삼국지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는 본래 다섯부족이 있는데,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원래 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지금은 계루부에서 대신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시조인 주몽으로부터 5대 모본왕까지는 해모수의 북부여족이고, 6대 태조대왕부터 그 이후는 구려의 맥족이라는 말로서 구려 출신인 6대 태조대왕이 고구려의 왕위에 오르면서 황부(계루부)가 되었다는 기록이고, 고구려의 국내성(지금의 영녕고성)은 바로 이곳 구려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맥족(貊族)들은 맥궁(貊弓)이라는 아주 좋은 활도 만들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는데, 예족(濊族)들이 만든 낙랑단궁(樂浪檀弓)과 함께 그 시대 최고의 활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7(A.D.40) 조를 보면, “가을9월 화려(華麗), 불내(不耐) 두 현 사람들이 공모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신라의) 북쪽 국경을 침범하였으나 맥국(貊國)의 거수가 군사로서 곡하(曲河 : 현 대릉하로 비정된다)의 서쪽에서 요격하였으므로 패하게 되었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貊國)과 우호를 맺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19(A.D.42) 조를 보면, “가을8월 맥국(貊國)의 거수가 사냥을 하여 잡은 짐승을 바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예국(濊國)은 신라의 북쪽에 위치했었고, 맥국(貊國) 역시 신라(新羅)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삼국지 예전을 보면, “단단대령의 동쪽은 낙랑에 속했으며, 단단대령의 동쪽 7개현은 낙랑동부도위가 통치하는데, 그 백성이 모두 예인(濊人)이다. 뒤에 낙랑동부도위를 폐지하고 거수로서 현후를 삼았다. 지금의 불내예(不耐濊)는 모두 그 종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화려와 불내는 예의 일부일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책계왕 13(A.D.298) 조를 보면, "가을9월 한(: 서진)이 맥()과 함께 침공해 오니 왕이 나가서 막다가 적병에게 해를 당하고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서진과 맥이 백제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백제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도산(都山 : 백제의 북한산으로 비정되는 산이다)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을 차지했던 나라였고, 금주시가 곧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로 비정되는 곳인데, 맥국(貊國)은 이 신라, 백제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댔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위 지도와 같이 원래의 ()”은 지금의 영성, 능원건평 일원에 위치했던 나라로서 우리 환국, 환웅국, 고조선의 중심종족이었던 것이 확실시 되므로 적봉, 능원 부근에서 발견된 홍산문화(紅山文化)는 바로 이 맥족(貊族)들이 남겨 놓은 문화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맥족(貊族)에 대하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인데, 필자는 이 맥족(貊族)의 비밀을 완벽하게 밝히는 날 우리의 고조선, 환웅국, 환인국의 실체도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