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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2. 27. 10:17

윤여동설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B.C.37, 필자주 : 사실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간 때는 기원전 58년이었다)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는 이르기를, “주몽이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거의 같은 곳인 듯하다.

   한서지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은 낙양에서 3,600리 떨어져 있고, 속현에 무려(無慮)가 있은 즉 주례 북진 의무려산(醫巫閭山)인데, 대요(大遼 : 요나라)에서 그 아래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현토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4천리 떨어져 있고, 소속된 현이 셋인데 고구려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으므로 소위 주몽이 도읍으로 정한 곳이라고 하는 흘승골성과 졸본이라는 곳은 대개 한나라 현토군의 경계로서 대요국 동경(東京 : 동경요양부)의 서쪽[필자주 : 북쪽이다]인 듯하니 한서지의 소위 현토군의 속현 고구려가 이것일 것이다.

   옛날 대요(大遼 : 요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을 때에 요나라 임금이 연경(燕京 : 요 남경석진부))에 있었는데, 우리(고려)의 입조 사신들이 (요) 동경을 통과하고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 만에 의주(醫州)에 당도하여 연경, 계주로 향하였기 때문에 한서지의 기록이 옳음을 알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거란) 남경석진부의 위치와 의무려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이승휴의 빈왕록(賓王錄)을 보면, 원나라 때까지도 고려의 사신들이 연경에 갈 때는 요나라 때와 같은 길을 따라 갔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필자가 밝혀본 바에 의하면, 고대의 요동(동경요양부)은 지금의 중국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현토군은 하북성 장가구시 회안성진 부근이며, 고구려의 첫도읍 졸본은 북경 북쪽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 부근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압록강은 북경 북쪽으로부터 동쪽을 지나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 지금의 백하, 밀운수고, 조백하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말하는 것이며, 요수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고, 고려의 개경은 지금의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이었으며, 연경(燕京)은 하북성 보정시 역현(易縣) 부근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려의 사신들이 연경(燕京)을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하북성 관성현(개경)을 출발하여 서남쪽으로 향하여 난하(패수)를 건너야 하고, 또 밀운수고(압록강) 부근을 건너 지금의 북경(고대의 요동)에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영정하(요수)를 건너 요서에 진입한 후 하루, 이틀 정도를 걸어가면 의무려산(醫巫閭山)에 도착하고, 더 나아가면 연경, 계주에 도착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도보로 갈 때 빨리 걸으면 하루에 1백리 정도씩 걸을 수 있다고 하므로 의무려산(醫巫閭山)은 요수(遼水)로부터 약 1, 2백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은 지금의 북경시 방산에 위치해 있는 상방산(上方山)이다. 지금의 상방산이 옛 의무려산이었을 것이다.

 

 

[옛 의무려산으로 비정되는 상방산]

 

[상방산 도솔사]

 

그런데 지금 의무려산(醫巫閭山)이라는 이름의 산은 북경의 서남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요녕성 북진시(北鎭市)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북진 의무려산 서남문]

 

  그리고 고대의 갈석산(碣石山)도 지금의 북경 서남쪽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데, 북경 동쪽인 하북성 진황도 창려현에 있고, 계주(薊州) 역시 북경 동쪽 우교수고 부근에 있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땅은 고려 때까지 우리의 옛 역사 강역이었음이 분명하므로 필자가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한반도로 옮겨온 이후 명, 청대 언젠가 5(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의 지명으로 그곳을 모두 덮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지금 북경 부근으로부터 요동반도까지의 옛 지명들은 전부 원래의 위치에서 이동된 가짜 지명인 것이다.

 

☆ 고대의 갈석산은 하북성 보정시 서북쪽에 위치한 지금의 낭아산(狼牙山)으로 비정된다.

 

 

[옛 갈석산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낭아산(오용사도애처 부근). 필자주 : 옛 사람들은 산의 형태가 마치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생긴 산이라는 의미로 갈석산(碣石山)이라 이름 붙였을 것인데, 지금은 이리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하여 낭아산(狼牙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그 이름이 바뀌어 옛 갈석산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당 태종이 갈석산에 올라 읊었다는 춘일관해 시]

 

  [창려 갈석산 표지석 신악갈석, 하북성 진황도 창려현의 갈석산은 가짜로서 옛 갈석산이 아니라 지리산이었다]

 

[신악갈석, 관해승지 구제등임..........천고의 수수께끼 어찌 풀리 라고 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