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 조를 보면,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 서쪽으로는 요수(遼水), 북쪽(필자주:사실은 서북쪽이다)으로는 옛 거란(契丹), 동쪽(필자주:사실은 동북쪽이다)으로는 대금(금나라)과 접해 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요해는 지금의 발해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며, 거란은 지금의 내몽골 상도 부근에, 금나라는 대흥안령 동쪽 파림좌기, 파림우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는 지금의 요하서쪽 요녕성으로부터 하북성 진황도, 당산, 승덕시, 장가구 일부, 북경 일부, 천진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다.
저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지 못하여 고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지금의 나주(羅州)와 광주도(廣州道)가 이에 해당된다.
☆ 신라는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금주(錦州)를 중심으로 천년왕국을 이루었고, 백제는 지금의 난하와 도산을 중심으로 존속했던 나라였으며, 고구려는 그 북쪽에 위치한 나라였다.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나주도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광주도는 진황도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고려는 우리 송나라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에서 육로로 요수를 건너 동쪽으로 고려까지 가는데 3,790리이다. 바닷길로는 하북, 경동, 회남, 양절, 광남, 복건 등이 있는데 모두 왕래가 가능하다.
지금 세워진 나라는 등주(登州), 래주(萊州), 빈주(濱州), 체주(棣州)와 정확하게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원풍연간(1078-1085) 이래 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정해(定海)에서 먼 바다로 길을 잡아 북쪽으로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되어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 등주, 래주, 빈주, 체주는 지금의 산동반도 발해변에 위치한 도시들이다. 그런데 고려도경에는 고려가 요해(발해)의 북쪽에 있으며, 이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정확히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지금의 발해 북쪽 당산, 진황도, 호로도 부근에 고려가 위치했다는 말과 같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로는 2,000리, 남북으로는 1,500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쪽과 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 고려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동서가 2,000리라는 이상한 기록이 남겨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동서가 1,000리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대요(요나라)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후에 침범을 당하게 되자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견고하게 방어하였고, 아울러 압록수를 의지하여 요새로 삼았다.
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수는 그 강물빛이 오리의 머리색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요동에서 500리 떨어져 있는데, 국내성을 지나 다시 서쪽에서 흘러드는 염난수라는 강물과 합류한다. 두 물이 합류하여 서남쪽 안평(安平)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에서는 이 강이 가장 큰 강이다. 물결은 맑고 나루터에는 큰 배를 댈 수 있다. 고려에서는 이곳을 천혜의 요충지로 여기는데 폭이 300보에 이를 정도로 넓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안평은 지금의 북경 동남쪽 안평진을 말하는 것이며, 압록수는 지금의 북경 북쪽과 동쪽을 흐르는 백하, 밀운수고, 조백하로 이어지는 강을 말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안평진까지 바다였을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확실한데도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고려가 한반도 개성에 도읍하고 있던 나라였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도 고려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왜곡이고, 모르면서 주장하면 무식이다.
설마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그 정도로 무식할리는 없을 것이고,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되긴 한다]
※ 고려도경은 송나라 때 사람 서긍이 1123년에 국신사 일행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 송 휘종에게 바친 책으로서 원래는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어 고려도경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중간에 그림부분은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우리 고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때 서긍일행은 절강성 영파에서 출발하여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여 산동반도를 돌아 발해를 건너 고려의 도읍 개경까지 왔다가 같은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