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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4. 10. 08:51

윤여동설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도읍(서라벌)을 습격해 왔다.

   이때 왕(경애왕)이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놀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중략...................... 왕은 비첩 몇 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후백제군의) 군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제로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첩들을 난행하게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이 기록들을 읽고 포석정이 춤이나 추고 잔치나 베풀며 노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고, 신라의 멸망을 재촉한 대표적인 장소였다고 하며, 한반도 경주 남산에 있는 포석정이 바로 그 장소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신라(新羅)는 한반도에 없었다.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주(慶州)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고, 후백제의 도읍 완산(전주)은 하북성 당산시(唐山市)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진짜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이었고, 왕성인 금성(金城), 월성(月城) 등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 따라서 신라 말 혼란기에 군웅들이 할거하던 곳도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이었고, 후삼국의 위치도 바로 그 부근이었다.

   그러므로 후백제의 견훤은 위 그림처럼 하북성 당산(옛 완산, 전주)을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향하여 지리산 북쪽의 탄현(炭峴)을 넘고, 지금의 진황도, 산해관, 수중, 흥성, 호로도 등 옛 임나, 가야지역을 지나 옛 달구벌이었던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금성진(金星鎭) 부근의 달구벌(達句伐)과 고울부(高鬱府)를 통과하여 서라벌로 향했던 것이고, 서라벌 남쪽 남산(南山)에 위치했던 포석정(鮑石亭)에서 경애왕을 잡아 자살하게 만들고, 부하들로 하여금 비빈들을 난행하게 하고, 김부(경순왕)를 권지국사(權知國事)로 임명하고 돌아갔다.

 

[한반도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전) 후백제 견훤왕릉이라 하는 곳인데, 이 무덤은 대륙에서 살다 죽은 견훤왕릉일 수 없고, 반도백제 무광왕 후예의 무덤일 것이다] 

 

☆ 한반도 경주는 왕망의 신(新)나라에 적극 협조했던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후한(後漢) 광무제에게 쫓겨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 왕국의 도읍이었다. 지금 한반도 경주에 남아 있는 왕릉들과 문화유적들은 흉노족 왕국의 왕릉들이고, 그들이 남겨 놓은 문화의 흔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