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백제 64

윤여동설 - 백제 동성왕의 탐라정벌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동성왕의 탐라정벌로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 2년(A.D.476) 조를 보면,   “여름4월 탐라국(耽羅國)에서 토산물을 헌상하매 왕이 기뻐서 그 사자에게 은솔 벼슬을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성왕 20년(A.D.498) 조를 보면,   “8월 왕이 탐라(耽羅)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치려고 무진주(武珍州)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탐라는 곧 탐모라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동성왕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탐라를 정벌하기 위해 무진주까지 출전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왕은 반도백제 모도왕의 둘째 손자로서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한 후 그 할아버지 모도왕의 명을 받고 한반도에서 발..

카테고리 없음 2014.10.19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성이었던 주류성과 임존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성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조를 보면, “무왕의 조카 복신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중 도침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 웅거하며 반하였다. 옛 왕의 아들로서 왜국에 볼모로 갔던 부여풍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으니 서북부에서 모두 호응하매 군사를 이끌고 사비 도성에 있는 유인원을 포위하였다. 당나라에서 조서를 내려 유인궤로서 검교대방주자사를 삼아 왕문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군사를 적당하게 발동시켜 유인원을 구원하게 하니........(중략).........인궤가 군사를 엄숙하게 통제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여 오므로 ..

카테고리 없음 2014.10.04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요동은 우리 고대 역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요동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요동(遼東)”은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내는 비밀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하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왔던 곳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명· 청시기에 지명을 옮겨 놓은 곳이지 고대의 요동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요하도 고대의 요수가 아니고, 요하하류는 고대의 요택이 아니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고대의 왜국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4.07.20

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백옥산지인 대석와진에 있는 옥을 다듬는 석신상 : 오른손잡이인 석신의 다리 위치가 반대로 조각되어 있어 어색하다. 저런 자세로는 돌을 다듬는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렵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A.D.504) 조를 보면, “여름 4월 위(북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더니 위(북위) 세종이 우리 사신 예실불을 동당에서 접견하였다. 예실불이 세종의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황금은 부여(동부여)에서 산출되고, 백옥은 섭라에서 산출되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에게 빼앗겼고, 섭라는 백제에게 병합되었기 때문에 금과 옥이 왕부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적국 탓입니다’ 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북위의 도읍은 낙양이었다. 한마디..

카테고리 없음 2013.04.29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비류왕과 온조왕은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이 많다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비류왕과 온조왕은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이 쌍둥이 형제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확인되지 않은 또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비류요, 차자는 온조이다[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 월군여인에게 장가들어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일설에는 시조 비류왕은 그 아버지가 우태이니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요, 어머니는 소서노이니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로서 처음 우태에게 시집가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비류요, 차자는 온조이다. 우태가 죽은 뒤 (소서노가) 졸본에 홀로 살..

카테고리 없음 2012.07.01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남제서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 동성왕이 남제에 사신을 보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의 관작을 요청한 표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488년에 일어난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490년에 남제에 보낸 표문에는, 면중왕 저근을 도장군 도한왕으로, 건위장군 팔중후 여고를 영삭장군 아착왕으로, 건위장군 여력을 용양장군 매로왕으로, 광무장군 여고를 건위장군 불사후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장사 고달을 용양장군 대방태수로,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사마 양무를 건위장군 광릉태수로, 행선위장군 겸참군 회매를 광무장군 청하태수로 임명해달라고 하자 그를 승인하고, 동성왕에게도 그 할아버지 모도왕이 받았던 작위와 같은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

카테고리 없음 2012.02.11

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송서 동이전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국은 본래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晉平郡) 진평현(晉平縣)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송서는 서기 420-479년까지 존속했던 유송 60년 간의 역사서로서 심약이 남제 무제의 명을 받아 488년에 완성하였다.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경략하였다는 내용을 최초로 기록하였다. 양서 동이전 백제전을 보면, “그 나라는 본래 구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 265-419)나라 때에 구려(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遼西郡)..

카테고리 없음 2012.02.04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8년(B.C.1) 조를 보면, “11월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까지 갔다가 큰 눈을 만나 돌아오고 말았다” 라고 하면서 우리 삼국역사서에 우두산성(우수산성)이 등장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춘천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맥국인데 신라의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牛首州 : 首는 頭로도 쓴다)로 만들고 군주를 두었다. 문무왕 13년에는 수약주(水若州 : 오근내라고도 하고 수차약이라고도 한다)라고 불렀고, 경덕왕이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에 춘주(春州)로 만들었고..............조선 태종 13년에 지..

카테고리 없음 2011.12.10

윤여동설 - 공주 의당면 수촌리고분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족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공주 의당면 수촌리고분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족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백제 “무광왕(武廣王)”은 아직까지 비밀 속의 왕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백제의 왕 중에 무광왕이라는 왕은 존재하지 않고, 백제의 도읍 중에 지모밀지라는 곳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기록은 정사에는 단 한 줄도 나타나지 않고 오직 관세음응험기의 기록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百濟武廣王遷都枳慕密地新營精舍(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이 절을 지었다)” 라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관세음응험기라는 기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백제 역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무광왕이라는 왕이 누구를 말..

카테고리 없음 2011.11.04

윤여동설 -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의 일생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 그는 구수왕의 증손자였다 - 최초공개       지금 역사드라마 “근초고왕”이 방영되고 있어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강역을 이루었다는 근초고왕에 대하여 세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부여구(후일의 근초고왕)가 젊은 시절 그 아버지인 비류왕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 나가 소금장사를 하면서 살다가 후일 백제의 13대 왕위에 올라 고구려 고국원왕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백제의 강역을 중국 요서까지로 넓히는 위대한 왕으로 설정되어 있다.   근초고왕과 그 아버지 비류왕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드라마 내용의 어느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고, 어떤 내용은 픽션을 가미했구나 하는 것까지 구분하면서 본다면 재미는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카테고리 없음 2010.11.12

윤여동설 - 백제의 탄현(炭峴)과 황산(黃山)을 찾았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탄현(炭峴)과 황산(黃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당나라군과 신라군이 이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군 계백(階伯)으로 하여금 결사대 5천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으로 나가서 신라군과 싸우도록 했는데, 네 번 싸워서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 결국은 패하고 계백이 죽음을 당했다” 위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A.D.660) 조의 황산벌 전투에 관한 기록으로서 이때 신라군은 5만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백제가 멸망한지 1,3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전쟁기록 속에 나타나는 탄현과 황산을 정확히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탄현과 황산을 찾는다고 뛰어들게 되어 각각..

카테고리 없음 2010.11.01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있었다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성(漢城)”을 “백제의 5백년 도읍지”라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역사적 진실인 것일까? 백제의 온조왕은 기원전 18년에 위례성(하남위례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했다가 기원전 5년에 도읍을 한수의 남쪽(필자주 : 한수의 하류로 옮겼다고 했어야 정확한 표현이었다) 남한성으로 옮기게 된다. ☆ 백제 건국설화를 보면, 온조왕은 미추홀로 가서 나라를 세웠던 형인 비류왕이 죽자 그 신하들과 백성들을 십제에 귀속시키고 미추홀의 백성들이 즐겁게 따랐다 하여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고 전하는데, 아마 비류왕과 온조왕은 쌍둥이 형제였던 듯 하다. 이때 온조왕이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는 그가 전해인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10.10.25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武廣王)과 모도왕(牟都王)은 어디에서 왕위에 올랐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武廣王)과 모도왕(牟都王)은 반도백제의 왕들이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왕들은 대륙백제의 왕들이었다 - 최초주장      백제 역사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비밀들이 많이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가 한반도에서 건국되었다고 인식한다.   그리고는 첫 도읍 위례성이 천안 직산이다 아니다 풍납토성이다 하면서 한반도에서 백제의 초기 도읍지를 찾고 있고,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를 충남 부여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는 대륙백제로서 한반도에서 건국된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서 건국된 나라였다.   그리고 관세음응험기에는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 절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남제..

카테고리 없음 2010.09.13

윤여동설논쟁 - 이성계는 고려 왕씨들을 정말로 바다에 빠뜨려 죽였을까?

윤여동설논쟁 - 이성계는 고려 왕씨들을 정말로 바다에 빠뜨려 죽였을까? 대동기문을 보면, “왕씨는 고려 태조의 자손이다. 우리 태조(이성계)가 즉위한 후에 왕씨들이 난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그들을 모두 한 섬 속에 가서 살도록 유인하자 여러 왕씨들은 다투어 배에 먼저 올랐다. 배가 중간쯤 이르렀을 때 헤엄 잘 치는 사람을 시켜서 물속에 숨어들게 하여 그 배 밑바닥을 뚫어 물이 스며들게 하여 모두 빠져 죽게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간에 전해지기를 이후 왕씨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왕(王)자를 변형시켜 옥(玉), 전(全), 전(田)씨 등으로 성씨를 바꾸었다는 말도 있어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옛날에 한 왕조가 멸망하고 새 왕조가 서게 되면 전왕조의 ..

카테고리 없음 2009.08.31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우리의 옛 역사는 환인시대, 환웅시대를 지나며 홍산문화(요하문명)를 꽃피웠고, 고조선에 이르러 청동기문화를, 다시 한과 위만조선, 부여시대에 이르러 철기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부여는 다시 고구려가 되고, 고구려는 한사군 중 임둔군, 낙랑군, 구현토군(낙랑동부도위)과 요동군, 대방군을 흡수함으로써 대제국이 되었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발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발해는 다시 요·금·원·청·중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만조선은 다시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사군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고, 한은 다시 삼한(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마한에서 백제가,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다가 통일신라가 되고, 통일신라가 ..

카테고리 없음 2009.05.14

윤여동설 - 부여의 황금, 섭라의 백옥 보물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부여의 황금, 섭라의 백옥 보물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A.D.504) 조를 보면,  "여름 4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더니 위나라 세종이 우리 사신 예실불을 동당에서 접견했는데, 예실불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누대에 걸쳐 온 정성을 다하여 토산물을 보내는 조공을 빠뜨리지 않았으나 다만 황금(黃金)은 부여에서 나오고, 가(珂: 백옥)는 섭라에서 나오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에게 빼앗겼고, 섭라는 백제가 병합해버렸으므로 금과 옥이 왕의 창고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도적 때문입니다'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위서 고구려전에도,   "정시(A.D.504-507) 중에 세종이 동당에서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을 인견하니 예실불이 나아가 말하..

카테고리 없음 2008.12.24

윤여동설 - 대륙고려와 반도조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륙고려와 반도조선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대륙의 하북성이 중심이었고, 이성계의 조선은 한반도가 중심이었다.    윤여동설에 의한 환인환국, 환웅단국으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 발해, 고려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라는 것이다.    환인환국의 중심강역은 하북성과 내몽골 적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로도산(七老圖山) 부근이고, 환웅단국의 중심강역은 칠로도산 동쪽 노로아호산(努魯兒虎山) 부근이며,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서 이때 고조선의 최대강역은 서쪽으로는 황하 북부 오르도스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요하까지, 남쪽으로는 발해와 황하하류를 지나 산동반도까지, 북쪽으로는..

카테고리 없음 2008.12.22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우리 고대사가 실제 이루어진 곳이 어디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 고대 역사의 현장에 관한 한 아직 정설이 없고 가설만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가설이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이라 정의할 수 있으므로 우리 고대사가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은 아직 정확히 찾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고대사의 현장이 과연 어디인가라는 질문에는 현격하게 다른 상반된 두 주장이 존재한다. 첫째는 한반도를 우리 역사의 중심지로 보고 해석하는 한반도중심설이 있고, 둘째는 발해 서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 지역을 우리 고대사의 중심 강역으로 보는 난하중심설(윤여동설)이 있다. 한반..

카테고리 없음 2008.12.19

윤여동설 - 한반도 역사의 진실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고대역사가 전개되었을까? - 최초주장       필자는 지금까지 고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 지역이라 하였고, 한반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바로 도읍을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서 비로소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로부터 그 이전 한반도에는 어떠한 역사가 펼쳐졌던 것일까?   한반도에도 구석기 유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소량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랜 옛날의 일이라 언급하지 않겠고, 고조선시대쯤부터는 많은 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

카테고리 없음 2008.10.24

역사논쟁 -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순 엉터리 거짓말

박창범은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박창범은 이 시대 최고로 멋진 책이름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의 저자이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는 삼국의 일식 기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 즉 일식최적관측지가 어디인가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고조선시대의 천문현상을 분석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찾아보려 하다가 그것이 기록의 부정확성으로 여의치 않자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삼국사기 속의 일식기록 관측지가 정말로 한반도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 박창범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한반도에 위치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가 한반도로 나타날 것..

카테고리 없음 200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