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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 2012. 2. 4. 16:54

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송서 동이전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국은 본래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晉平郡) 진평현(晉平縣)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송서는 서기 420-479년까지 존속했던 유송 60년 간의 역사서로서 심약이 남제 무제의 명을 받아 488년에 완성하였다.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경략하였다는 내용을 최초로 기록하였다.

 

  양서 동이전 백제전을 보면,

  “그 나라는 본래 구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 265-419)나라 때에 구려(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遼西郡)과 진평군(晉平郡) 두 군의 땅을 점거하고 스스로 백제의 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남사 동이전 백제전에도 양사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양나라 때 각 나라 사신의 모습을 그린 양직공도 백제국사를 보면,

  “백제는 옛날에 왔던 마한의 지속이다. 진나라 말에 구려가 요동 낙랑을 경략하였고, 백제는 요서 진평현을 경략했다(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略有遼東樂浪 亦 有遼西晉平縣)”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서는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차지한 때를 진(晉)나라 때라고 하고,

  양직공도는 진(晉)나라 말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진(晉)나라는 서진(西晉) 52년(A.D.265-316)과 동진(東晋) 102년(A.D.317-419)간 존속했고,

  동진(東晉)은 멸망한 후 송나라, 양나라로 이어졌고, 송나라의 역사서인 송서에 백제 진평군 진평현이라는 기록이 최초로 기록되었고, 양서에는 백제 요서군과 진평군이라고 기록되었다.

  이를보면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차지한 때는 동진(東晋) 말기쯤으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앞서 316년에 서진이 전조(前趙)에게 멸망하자 사마예가 양자강 남쪽 건강(남경)에 도읍하고 동진을 새로 세우게 되고, 양자강 북쪽은 5호16국시기가 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다가, 북위가 그를 통합함으로써 5호16국시대가 끝나고 북쪽의 북위와 남쪽의 동진이 대치하는 위진남북조시대가 된다.

  그랬다가 420년에 동진이 멸망하고 유유의 송나라가 건국되는데, 백제는 동진이 멸망할 때까지 사신을 파견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동진의 뒤를 이은 유송, 유송의 뒤를 이은 양나라와도 역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백제는 북조의 나라들과는 달리 남조의 왕조들과는 변함없이 화친하였다.

 

  이를 보면 백제는 5호16국 시기 말기의 혼란스런 상황을 이용하여 요서군과 진평군 땅을 차지했다는 추정이 가능해 진다.

  매우 혼란했던 시기였으므로 당시 북조의 역사서에 그러한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고,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남조의 역사서에 기록되었던 것이라 생각되는데, 백제 근초고왕(재위: A.D.346-375), 근구수왕(재위: A.D.375-384), 침류왕(재위: A.D.384-385), 진사왕(재위: A.D.385-392), 아신왕(재위: A.D.392- 420) 때가 동진 말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백제 근초고왕은 371년에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죽이며 승리한 후 도읍을 남한성에서 한성(북한성)으로 옮긴 정복군주로서 당시 백제의 강역을 매우 넓게 넓힌 왕이었으므로 근초고왕이 고구려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자 그 여세를 몰아 강역을 넓힌 후 백제요서군과 백제진평군을 설치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진서(晉書) 권9 제기 제9 간문제(簡文帝) 함안(咸安) 2년(A.D.372) 조에, "六月 遣使拜百濟王餘句 爲鎭東將軍 領樂浪太守(6월 사신을 보내 백제왕 여구(근초고왕)에게 진동장군 영낙랑태수의 작위를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낙랑 땅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후 백제요서군과 백제진평군을 설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가 차지했던 백제요서군과 백제진평군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통전 권185 변방1 동이 상 백제 조를 보면,

  “진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과 진평군 두 군을 점거하였다[지금의 유성과 북평사이이다](晉時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 晉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서군과 진평군이라는 두 군을 언급하고 있고, 주에서 그 위치를 “당나라 때의 유성과 북평 사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연5군 중의 한 군이었던 요서군이 언급된다.

   연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중의 요서군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에 위치한 영정하 서쪽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비정되므로 진평군 역시 그 부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때 백제는 지금의 북경 남쪽부근으로부터 서쪽으로 영정하를 건너 그 부근지역을 빼앗아 그곳에 백제 요서군과 진평군을 설치했을 것이다.  

 

☆ 자치통감 권97 진기(晉紀)19 효종목황제상지상 영화2년(A.D.346) 조를보면,

“앞서 부여(夫餘)가 녹산(鹿山)에서 살았는데, 백제(百濟)가 침략하니, 부락이 쇠산해져 서쪽 연(燕)나라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서 방어할 설비도 갖추지 못했는데, 연(燕)왕 황(皝: 모용황)이 세자 준(모용준)을 보내 모용군, 모용각, 모여근 등 세 장군과 17,000 기병(騎兵)으로 부여를 습격하였다. 준(모용준)은 지시를 내리고 군사는 모두 각(모용각)이 맡아 공략하여 그 왕(부여왕) 현(玄)과 부락민 5만여명을 포로로 잡고 귀환하였다. 황(모용황)이 (부여왕) 현을 진군장군으로 삼고, (모용황이 자신의) 딸을 처로 삼게 했다(初 夫餘居于鹿山 為百濟所侵 部落衰散 西徙近燕 而不設備 燕王皝遣世子儁帥慕容軍慕容恪慕輿根三將軍萬七千騎襲夫餘 儁居中指授 軍事皆以任恪 遂拔夫餘 虜其王玄及部落五萬餘口而還 皝以玄為鎮軍將軍 妻以女)”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가 과연 부여까지 침공할 수 있었는지 논란이 많다. 그리하여 학자들 간에는 백제가 부여를 침공했던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부여를 침공했을 것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다.

 

   왜냐하면 당시 동진(東晉)의 도읍은 건강(현 남경)이었고, 북조 왕조들의 도읍은 대개 장안(서안)이나 낙양 부근이었고, 선비족인 연나라의 도읍은 대개 하북성 역현 부근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의 북경 방산구 부근을 백제 요서군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백제의 기본강역이 지금의  당산, 진황도 지역이었으므로, 중국 북쪽의 혼란기인 5호16국시기에 매우 가까이 위치했던 백제가 그 혼란기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 양서는 서기 502-557년까지 존속했던 양나라의 역사서로서 조사렴이 당 태종(재위: 629-636)의 명을 받아 완성하였다. 중국사서 중 최초로 신라에 관하여 기록하였고, 통전은 당나라의 두우가 801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기록이 정확기로 잘 알려진 사서이다.

 

  그리고 옛 사서들은 백제의 건국지를 한반도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동의 위치를 찾으면 그 동쪽 1천여리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를 찾을 수 있고, 백제를 찾으면 그 동쪽에서 신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신라를 찾으면 그 남쪽의 가야와 그 북쪽의 예(동예)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동예를 찾으면 그 북서쪽에서 동옥저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이 되는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요하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수의 동쪽을 말하는 것으로서 옛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지금의 북경 일원이 고대의 요동인 것이다.

  따라서 백제는 한반도에서 건국되고 멸망한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북경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나라였다.

  필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북경 동쪽  부근의 대륙백제가 곧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백제의 실체이다.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는 결코 한반도에서 건국되고 멸망한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북경 동쪽 부근에서 건국된 나라였고, 북위와 전쟁을 하여도 연전연승하던 나라였지만 결국은 당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마지막왕 의자왕은 장안으로 끌려가 죽었고, 낙양 북망산에 묻혔다.

  그렇게 백제는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 그 대륙의 백제 땅이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