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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의 일생 - 최초공개

윤여동 2010. 11. 12. 08:34

윤여동설 -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 그는 구수왕의 증손자였다 - 최초공개

  

 

 

 

  지금 역사드라마 “근초고왕”이 방영되고 있어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강역을 이루었다는 근초고왕에 대하여 세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부여구(후일의 근초고왕)가 젊은 시절 그 아버지인 비류왕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 나가 소금장사를 하면서 살다가 후일 백제의 13대 왕위에 올라 고구려 고국원왕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백제의 강역을 중국 요서까지로 넓히는 위대한 왕으로 설정되어 있다.

  근초고왕과 그 아버지 비류왕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드라마 내용의 어느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고, 어떤 내용은 픽션을 가미했구나 하는 것까지 구분하면서 본다면 재미는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백제 초기의 왕위계승도]

 

                                      시조 온조왕

                                                ↓                                

                                                자(실명 :온조왕보다 먼저 죽었다)

                                                ↓

                                       2대 다루왕

                                                ↓

                                                자(실명 : 다루왕보다 먼저 죽었다)

                                                ↓

                                       3대 기루왕

                                                ↓

                                                자(실명 : 기루왕보다 먼저 죽었다)

                                                ↓

                                       4대 개루왕

          (장자파)                                                              (차자파)

             ..........................................................I....................................................................      

            ↓                                                                          ↓

      5대 초고왕                                                                  구태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과 혼인하였다고 전해지는 인물.

                                          차자파의 시조로서 손자인 고이왕이

                                                    왕위에 오른 후

                                                  왕으로 추증된 듯함]

            ↓                                                                           ↓         

      6대 구수왕                                                                     자(실명)

            ↓                                                                           ↓

            자(실명 : 구수왕보다 일찍 죽었다)                          8대 고이왕

                                                                   [조카인 7대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왕위에 오름]

            .I.....................................

           ↓                     ↓                                                      ↓ 

           7대 사반왕         자(실명)                                       9대 책계왕

                                  ↓                                                      ↓

                       11대 비류왕                                      10대 분서왕        

                                  ↓                                                      ↓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무광왕

                                                                           (반도백제의 건국시조)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11대 비류왕 조에서,

  “비류왕(比流王)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의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사람을 사랑하며 또한 힘이 세었고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평민처럼 살았는데 좋은 평판이 널리 알려졌다.

  분서왕이 죽게 되고 비록 아들이 여럿 있었으나 모두 어렸기 때문에 왕으로 세울 수 없어 그가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비류왕이 왜 왕자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평민처럼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또 그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는 구수왕이 죽은 해가 서기 234년인데, 그 둘째 아들이라는 비류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서기 304년이므로 비류왕이 구수왕이 죽은 해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비류왕은 71세에 왕위에 올라 재위 41년인 344년에 죽었다는 말이되니 생몰연대를 살펴볼 때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아들이라는 기록은 오기임에 틀림없고,

 13대 근초고왕 조에는,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비류왕과 근초고왕이 부자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8대 고이왕 조에는,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죽고 그의 장자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할 수 없었으므로 초고왕의 동복동생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4대 초고왕이 왕위에 오른 때가 서기 166년인데, 그 동복동생이라는 8대 고이왕이 그로부터 67년 후인 234년에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은 신빙성이 없고, 또 사반왕 역시 구수왕의 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손자일 가능성이 많다.

 

☆ 삼국사기는 8대 고이왕이 초고왕의 동복동생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명확히 잘못된 기록으로서 고이왕은 5대 초고왕의 동복동생인 구태의 손자로서 사반왕과는 혈통이 달랐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대로라면 6대 구수왕이 죽은 때가 서기 234년이었으므로 그의 장자라는 7대 사반왕이 왕위에 오른 때도 역시 234년이었을 것인데, 8대 고이왕이 왕위에 오른 때도 같은 234년이니 사반왕은 잠깐 왕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바로 왕위에서 내려왔고, 8대 고이왕이 대신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구수왕이 나이가 들어 늙어 죽을 때 아주 어린 아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고,  각 왕들의 생몰연대를 따져보면 구수왕은 서기16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사반왕은 225년경 태어났을 것이며, 비류왕은 서기 26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므로, 사반왕은 구수왕의 손자일 것이며,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 아들일 수는 없고, 증손자쯤이라고 해야 연대가 맞게 되므로, 사반왕과 비류왕이 형제라는 기록 역시 오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반왕은 구수왕의 큰아들이 아니라 큰손자였고, 비류왕은 둘째 손자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구수왕이 죽었을 때인 서기 234년에 구수왕의 아들은 그 아버지 구수왕보다 먼저 죽었었고, 큰손자인 사반왕이 약 10세쯤이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반왕의 동생은 약 5세쯤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랬을 경우 구수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큰 손자인 사반왕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고, 이때 사반왕은 약 10세 정도로 나이가 어렸던 탓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숙부(7촌 재당숙부)인 고이왕에게 강제로 왕위를 빼앗겼다고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반왕은 왕위를 빼앗긴 후 고이왕을 중심으로 하는 반정세력들에 의해 유배를 당했다가 결국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조선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청령포에서 죽어야 했던 것처럼...................

  필자가 사반왕을 조선 단종에 비유하고, 고이왕을 세조에 비유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때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사반왕의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반왕의 동생(당시 약5세쯤) 역시 반정세력들에 의해 역시 잡혀 죽었거나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것인데, 간신히 죽음은 면하고 왕궁에서 쫓겨났다고 보면, 사반왕의 동생은 비록 왕족이기는 했지만 철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백제 왕족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잃고 평민처럼 일반백성 속에 섞여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반왕의 동생은 평민처럼 살면서 성장하여 혼인도 하였을 것이고, 또 아들을 낳았을 것인데, 이때 낳은 아들이 후일의 비류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비류왕이 다시 성장하여 혼인을 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이 근초고왕이었다고 보고, 각각의 생몰연대를 감안하여 왕위계승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이 된다.

  

                           6대 구수왕(재위 : A.D.214 - 234, 21년)

                     (추정생몰 : A.D.160 - 234)     

                                    ↓

                          구수왕의 아들 (구수왕 보다 일찍 죽었다)

            (추정생몰 : A.D.190 - 230, 약 40세정도)               

         ............................|........................

        ↓                                                 ↓

  7대 사반왕                                사반왕의 동생(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추정생몰 :A.D.225 - 234)      (추정생몰 : A.D.230 - 300)           

                                                            ↓

                                                 11대 비류왕(재위 : A.D.304 - 344, 41년)

                                            (추정생몰 : A.D.260 - 344)

                                                            ↓2자

                                          13대 근초고왕(재위 : A.D.346 - 375, 30년)

                                            (추정생몰 : A.D.300 - 375)

 

☆ 백제 8대 왕은 고이왕이고, 9대는 책계왕이며, 10대는 분서왕이고, 12대는 계왕으로서 차자파이다.

 

  생몰연대를 따져 그린 위 왕위계승도를 보면 전혀 무리한 부분이 없다.

  즉 구수왕은 약 75세 정도에 늙어 죽었다는 말이 되고, 구수왕의 아들은 아버지인 구수왕 보다 일찍 죽었다는 말이 되어 구수왕은 큰 손자인 사반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으나, 고이왕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되어 백제의 왕위는 고이왕의 아들 책계왕과 손자인 분서왕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사반왕의 동생은 평민처럼 살다가 약 70세 정도에 죽었고, 그 아들인 비류왕이 자라 분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가 약 85세 정도에 죽자, 그 뒤를 이어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이 왕위에 오르고, 다시 그 뒤를 이어 비류왕의 아들인 근초고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백제의 왕위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고 있어 정상적인 왕위계승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정리해 보면,

  백제 11대 비류왕은 6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구수왕의 둘째 손자의 아들 즉 구수왕의 증손자였던 것이고, 사반왕과 비류왕은 형제관계가 아니라 백부(큰아버지)와 조카 사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초고왕 역시 구수왕의 손자가 아니라 구수왕의 증손자의 아들 즉 구수왕의 고손자였던 것이다.

   

☆ 8대 고이왕, 9대 책계왕, 10대 분서왕, 12대 계왕은 4대 개루왕의 차자인 구태의 후예들로서 필자는 이들을 차자파라 부르고, 개루왕의 장자인 5대 초고왕의 후예들을 장자파라 부른다.

 

  사실이 이러했다면 삼국사기 기록 속의 혼란스런 백제왕위계승에 대하여 무리없이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즉 사반왕이 왕위에 오를 때 어렸다는 기록으로부터 비류왕에 대하여 “오랫동안 평민으로 살면서 좋은 평판이 널리 알려졌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아무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류왕의 아버지는 7대 사반왕의 동생이었지만 사반왕이 숙부(7촌 재당숙부)인 고이왕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게 되자 사반왕의 동생은 왕궁에서 내쫓겨 평민처럼 살았기 때문에 사반왕의 동생의 아들(비류왕) 역시 태어난 서기 260년경부터 왕위에 오른 304년까지 45년 동안이나 평민처럼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류왕은 성격이 관대하고, 자애로우며, 사람을 좋아했다고 했으므로 드라마에서처럼 둘째 아들인 근초고왕을 미워하고 왕궁에서 쫓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젊은 시절의 부여구(후일의 근초고왕)를 그 아버지인 비류왕이 왕궁에서 쫓아냈다는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작가가 임으로 설정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백제 초기의 왕위계승 기록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 이때 백제에서는 왕실이 장자파와 차자파로 갈리어 왕위 찬탈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차자파인 8대 고이왕이 장자파인 7대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아 그 아들인 9대 책계왕, 손자인 10대 분서왕까지 이어졌으나 장자파인 11대 비류왕이 그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른다.

  그러자 차자파인 분서왕의 아들 12대 계왕이 다시 비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고, 다시 비류왕의 아들인 13대 근초고왕이 다시 장자파로 왕위를 되돌려 그의 후손들로 왕위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백제왕위 계승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의 왕위 계승이 매우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고, 거기에 더해 삼국사기가 각 왕들과의 관계를 잘못 기록하는 바람에 생몰연대가 맞지 않아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백제 11대 비류왕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둘째 손자(이름을 알 수 없다)의 아들 즉 증손자였던 것이며, 비류왕의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 왕궁에서 쫓겨나 평민처럼 살다 늙어 죽었고, 그 아들인 비류왕이 304년에 이르러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 된다.

  즉 그 아버지가 왕궁에서 쫓겨난 234년으로부터 무려 70여년이 지난 304년에 이르러 백제의 왕이 되어 다시 왕궁으로 되돌아온 것이었고, 비류왕 자신 만을 본다면 태어난 이후 40여년간 계속하여 평민처럼 살았던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오랫동안 평민처럼 살았다는 기록이 남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류왕에게도 배다른 동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 비류왕 18년(A.D.321) 조의 “봄 정월 왕의 서제 우복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라는 기록이 바로 그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록인데, 비류왕 24년(A.D.327) 조를 보면,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성에 웅거하여 반역하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이를 토벌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이때 비류왕의 이복동생인 내신좌평 우복도 왕위를 꿈꾸며 북한성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는 비류왕이 건재했었던 것으로 보이나, 11대 비류왕은 결국 344년에 이르러서는 10대 분서왕의 장자인 12대 계왕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게 되고, 몇 년 뒤 비류왕의 둘째 아들인 근초고왕이 다시 계왕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올라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요서 진평현을 빼앗아 백제가 대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다.  (完)     

 

☆ 장자파인 13대 근초고왕은 왕위에 오르면서 차자파인 12대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과 또 20여년에 걸친 왕위찬탈전을 벌이게 되는데, 최종으로 근초고왕이 승리하게 되어 장자파인 근초고왕의 후손들은 백제(대륙백제)의 왕위를 잇게 되고, 패한 차자파인 무광왕은 한반도로 건너와 또 하나의 백제(반도백제)를 세워 왕위가 이어지게 되는데, 관세음응험기 기록 속에 나타나는 백제 무광왕이나 사서들에 나타나는 백제 모도왕 등이 바로 반도백제 무광왕의 후예들인데, 반도백제의 모도왕과 대륙백제의 개로왕이 두 백제의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문주왕을 지나 삼근왕 때 이르러 반도백제 모도왕이 삼근왕과 그 일파인 외척 해씨들을 제거함으로써 두 백제의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반도백제 모도왕이 둘째 손자인 모대를 대륙으로 보내 대륙백제의 왕위에 올리게 되는데, 이가 곧 동성왕이고, 이후 대륙백제의 왕위는 모두 무광왕의 후손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서기 668년 의자왕 때 대륙백제는 멸망하고 반도백제는 그 후에도 상당기간 존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의 자세한 왕위계승이나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 어딘가에는 이 반도백제의 역사기록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