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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13. 4. 29. 12:22

 

윤여동설 - 백제 백옥 산출지 섭라(涉羅)를 찾았다 - 최초공개

 

 

 

 

 

[백옥산지인 대석와진에 있는 옥을 다듬는 석신상 : 오른손잡이인 석신의 다리 위치가 반대로 조각되어 있어 어색하다. 저런 자세로는 돌을 다듬는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렵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A.D.504) 조를 보면,

 “여름 4월 위(북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더니 위(북위) 세종이 우리 사신 예실불을 동당에서 접견하였다.

  예실불이 세종의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황금은 부여(동부여)에서 산출되고, 백옥은 섭라에서 산출되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에게 빼앗겼고, 섭라는 백제에게 병합되었기 때문에 금과 옥이 왕부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적국 탓입니다’ 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북위의 도읍은 낙양이었다.

  한마디로 전에는 고구려가 북위에 황금과 백옥을 조공했었는데, 서기 504년경에 이르러서는 부여(동부여)를 물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황금을 조공할 수 없고, 섭라를 백제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백옥을 조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명인데, 이 기록은 위서 고구려전에도 거의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기록 속에 나타나는 황금산지 부여(동부여)와 백옥산지 섭라는 중국에서도 유명했던 것을 알 수 있고, 부여(동부여)와 섭라의 위치를 찾으면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와 강역을 대강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 부여전을 보면, “부여(동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에서 1천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 약수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남제서 고려국(고구려)전을 보면, “동이 고려국(고구려)은 서쪽으로 위나라와 경계가 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와 북위가 국경을 맞대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위서(북위서)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국은 그 선조가 부여로부터 나왔다. 그 나라는 북쪽에 고구려가 1천여리 거리에 있고, 소해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의 남쪽에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10년(A.D.488) 조와 남제서 백제국전을 보면, 488년과 490년에 북위와 백제가 큰 전쟁을 하였고 백제가 대승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따라서 이때 백제와 북위도 국경을 맞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와 북위가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았다면 두 나라가 큰 전쟁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위와 고구려, 백제는 실제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것일까?

  북위는 처음에 지금의 내몽골자치구의 성도인 호화호특 남쪽 화림격이 부근의 성락(盛樂)에서 386년에 건국되어 398년에 도읍을 평성(平城 : 지금의 산서성 대동부근)으로 옮겼고, 백제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직후인 493년에 남쪽의 낙양으로 천도했다가 550년에 멸망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백제는 그 남쪽인 지금의 하북성 당산, 진황도 부근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부여(동부여)는 고구려의 북쪽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으며, 물길은 부여(동부여)의 동쪽인 지금의 대흥안령에 위치했었다.

  따라서 황금이 산출되었다는 부여(동부여)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도 내몽골지역에서는 황금이 많이 산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도 유명했을 백옥이 산출되었다는 섭라(涉羅)라는 곳은 또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앞서 436년에 북연이 북위에게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때 고구려의 장수왕은 북연왕 풍홍의 망명을 받아들이면서 옛 북연 땅의 일부를 차지했던 듯하다.

  이때 북연의 도읍 용성(龍城: 화룡)은 지금의 북경시 방산구 유리하진 부근으로 비정되므로 이때 고구려는 탁주 부근까지 진출했을 것인데, 이때 백옥산지인 섭라를 수중에 넣었기 때문에 백옥을 북위에 조공품으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488년, 490년에 북위와 백제가 전쟁을 하여 백제가 대승을 하게 되자 백제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섭라 지역까지를 병합하여 버렸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북경 서남쪽 탁주시 대석와진(大石窩鎭)이 현재 중국에서도 유명한 백옥 산지인데, 섭라(涉羅)라는 곳은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기 504년에 백제 무령왕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탁주시 부근까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 역사 속 의문의 지명이었던 섭라를 찾게되어 백제가 차지했었다는 요서 진평군 진평현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당산,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던 대륙백제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