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고대역사가 전개되었을까? - 최초주장
필자는 지금까지 고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 지역이라 하였고, 한반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바로 도읍을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서 비로소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로부터 그 이전 한반도에는 어떠한 역사가 펼쳐졌던 것일까?
한반도에도 구석기 유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소량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랜 옛날의 일이라 언급하지 않겠고, 고조선시대쯤부터는 많은 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반도 남쪽에서도 요하문명, 홍산문화권에서 주로 많이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과 동일한 형태의 비파형 동검이 가끔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옛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어 최소한 발해 북쪽 난하 부근의 고조선과 한반도가 어떠한 형태로든 교류는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한반도가 고조선에 정치적으로 복속된 나라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고, 고조선과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 사이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각각의 정치집단을 이루며 필요에 따라 사신을 파견한다든가 교역을 함으로써 상호간에 필요한 물건을 습득하는 단계였을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전의 한반도에 나타나는 고대의 유적, 유물들은 우리가 아직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고유 문명의 흔적일 것이다.
그러다가 전한을 멸망시키고 건국되었던 왕망의 신나라가 광무제에 의해 축출당하자 이때 신나라에 적극협조했던 흉노족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도망쳐 다시 나라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 남쪽에서 흉노족 고유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때 한반도에서 외침을 모르고 순박하게 농사짓고 살던 한반도의 농경 민족은 기마 유목민족인 흉노족의 말발굽아래 정복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 흉노족의 침공이 한반도 문명의 급속한 변화를 촉발시켰고, 뒤를 이은 백제의 한반도 진출로 고인돌문명, 옹관묘문명 등 한반도의 고유문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한반도 역사에 미씽링크가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4세기 중엽에 이르러 발해 북쪽 대륙백제(온조백제)에서 근초고왕과 무광왕과의 왕위찬탈전에서 패한 계왕의 아들 무광왕이 한반도의 지모밀지로 도망쳐 와서 다시 반도백제를 세우게 된다.
그렇게 하여 한반도 동남부에 흉노족이 세운 나라, 서부지역에 반도백제 등의 흔적들이 남겨지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이를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 신라, 가야의 흔적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반도백제는 한반도의 땅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의 일본열도로도 진출하여 열도백제도 개척했던 듯 하다.
지금 일본열도에 남아 있는 많은 백제의 흔적들이 바로 그러한 가정을 가능케 하는 것들이다.
☆ 지금의 일본은 우리의 옛 땅이지 고대의 왜국이 아니다.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다가 이성계의 이씨조선이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 올 때 일본 역시 지금의 일본열도로 옮겨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서기 660년에 대륙백제가 멸망하자 그 땅은 대륙신라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 대륙신라 역시 멸망하고 고려 땅이 된다.
그런데 사실 백제에 관한 기록은 13세기 중엽까지 원사에 나타난다.
따라서 13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백제는 대륙이 아닌 한반도 또는 일본열도에 존재했던 백제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를 이어 일어난 조선은 대륙에 존재했던 고려를 멸망시키고 개국된 나라였는데, 그 역사의 중심이 발해 북쪽 대륙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한반도로 바뀌는 것이다.
☆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도 삼국이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려도 대륙에 위치했었음을 인식하고는 그 뒤를 이은 조선도 대륙에서 오백년 왕조를 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서울에는 지금 조선시대의 왕궁이 있고, 도읍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도 있고, 왕릉들도 있고, 조선시대 살았던 백성들의 후손들이 지금 한반도에서 족보를 기록해가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당장 이 글을 읽는 분들의 10대조, 5대조 할아버지의 무덤이 한반도에 있어 해마다 세일사를 지내고 있을테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만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역사는 대륙이 중심이었으므로, 고려왕들의 능이 한반도에 조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며 각 가문에서도 고려시대 인물의 묘가 한반도에 있다고 하는 것은 대개 가묘이거나 엉뚱한 사람의 묘이다.
☆ 개성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동상을 북한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상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매우 경악스럽다. 대륙의 개경에서 죽어 그 부근에 묻혔을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은 하북성 관성(관성만족자치현)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한반도의 개성부근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대륙의 개경(하북성 승덕시 관성만족자치현)에서 죽어 그 부근에 묻혔을 고려왕들의 능이 한반도 개성 부근에 조성되었을 리는 없고, 발해 북쪽 대륙에서 죽은 각 가문의 고려시대 인물들의 묘도 한반도에 조성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능과 묘는 모두 발해 북쪽 대륙에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각 가문에서 고려시대 인물의 묘가 대개 실전 되었다고 하거나 실전 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다시 찾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고, 한반도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역사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 왕릉들은 서울 부근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부르는 동구릉과 서오릉, 서삼릉 등이 그 증거들이다.
☆ 각 가문마다 고려시대 인물의 묘는 대개 지금까지도 실전 되어 있거나 실전 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다시 찾아 비석도 새로 세우고 봉분도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대개 그 묘지부근의 땅을 자기들 소유로 만들기 위하여 억지로 꾸며 조성한 것들이지 실제 그 묘가 고려시대 인물의 묘는 아닌 것이다.
이는 조선이 고려의 도읍이었던 대륙의 개경(필자주 : 현 하북성 관성만족자치현)에서 건국된 후 바로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그 왕릉들이 한반도에 조성되었던 것이고, 그 후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게 대륙의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대륙에 우리의 옛 땅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반도로 도읍을 옮겨옴으로써 대륙의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이성계를 탓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조선이 대륙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알 수 없고, 한민족 자체가 이미 소멸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작지만 안전한 한반도에서 그 역사를 이어왔고, 세계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머지 않은 훗날 잃어버린 대륙의 우리 옛 땅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니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 두어야 하고, 우리 옛 땅의 위치를 파악해 두어야 하며, 힘을 비축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