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 2019. 6. 28. 17:21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고구려 천리장성

 

  구당서 고구려전 정관5(A.D.631) 조를 보면, "건무(영류왕의 이름)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A.D.631) 조를 보면, "2월 왕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동북쪽은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바다()까지 닿았는데 무려 16년 만에 준공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 내몽골 오란찰포 서남쪽 대해(岱海) 부근의 장성흔적 : 고구려 천리장성의 서남쪽 끝 부분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천리장성은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로부터 서남쪽으로 오란찰포시 서남쪽에 위치한 대해(岱海) 부근까지 쌓아 1천여 리에 이르렀을 것인데, 영양왕 말기 수나라와의 고수전쟁이 끝나자 거란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616년부터 장성을 쌓기 시작하여 영류왕 14년인 631년에 이르러 완공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천리장성

 

 

  고려사를 보면, 덕종2년인 서기 1033년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를 보면,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필자주 : 사실은 동북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덕(寧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淸塞), 평로(平虜), 영원(盈遠), 정융(定戎), 맹주(孟州), 삭주(朔州) 13주를 거치고 요덕(耀德), 정변(靜邊), 화주(和州)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닿으니 길이가 1천여 리에 뻗치고, 돌로 성을 쌓았으며,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려에서도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과 비슷한 규모로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천리장성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밀운수고 부근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난평을 지나고 승덕시 북쪽을 지나 칠로도산을 넘어 내몽골 객라심기를 지나고 또 적봉 남쪽을 지나 노합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강변을 따라 성을 쌓아 1천여 리에 이르렀을 것인데, 이 장성은 1018년 거란 소손녕의 고려침공 이후 10여년간 장성을 쌓아 1033년에 이르러 완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어디에 쌓았는지 밝힌 이가 없었고,

  고려가 천리장성을 어디에 쌓았는지 찾은 이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 고대역사의 현장은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부근 대륙이었는데, 지금까지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의 착각으로 그 대륙의 역사 기록을 한반도로 가져와 한반도에서 그 대륙역사의 현장을 찾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그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 한반도 압록강 북쪽이 아니라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동부여는 지금의 북경 북쪽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고,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은 하북성 승덕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평양성)에 도읍하고 있던 고구려는 서쪽의 거란이 점점 강성해지자 그 침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던 것이고,

  지금의 하북성 관성현(개경)에 도읍하고 있던 고려는 서북쪽의 거란과 북쪽 여진의 침공을 동시에 방어하기 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던 것이다.

  고려는 위 그림처럼 옛 고구려 천리장성으로부터 고려 천리장성까지의 드넓은 땅을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에게 빼앗겼다가, 되찾기를 반복했던 것이고, 고려 말에 이르러서야 그 잃어버린 땅의 절반정도를 회복했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고대역사는 대륙역사였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었다.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우리 고대역사를 연구할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우리의 모든 역사를 한반도에 비정하여 해석하려는 사람은 역사학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가짜역사가 정설이라는 탈을 쓰고 진짜 행세를 하였으나, 머지 않은 미래에 그 가면이 벗겨지게 될 것이고, 민낯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거짓으로 모든 사람을 한 순간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가짜가 영원히 진짜 행세를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