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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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초기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가 밝혀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초기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가 밝혀졌다 - 최초주장   [위 :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 :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 대명진토성] [위 : 고조선의 두 번째 도읍 왕검성(王儉城) :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은 아사달(阿斯達)이었다고 전해온다.   그 위치에 대하여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고조선(왕검조선)은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에서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평양 왕검성(王儉城)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백제의 경우에도 건국한 지 10여년 만에 첫 도읍 위례성(慰禮城)에서 남한성(南漢城)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

카테고리 없음 2024.04.06

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 그리고 엄정왕후(배소왕후)와 소덕왕후(점물왕후)의 관계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 그리고 엄정왕후(배소왕후)와 소덕왕후(점물왕후)의 관계를 밝힌다 - 최초주장 [신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신라 성덕대왕신종, 그러나 그가 시호처럼 정말로 성스럽고, 덕스러운 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 중 아직까지 그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33대 성덕왕 조에 나타나는 "성정왕후(成貞王后)"이다.  삼국유사 왕력 제33대 성덕왕 조를 보면, “이름은 흥광이요 본래 이름은 융기였다. 효소왕의 동생이다. 첫 비는 배소왕후로 시호는 엄정으로서 원대아간의 딸이고,다음 비는 점물왕후로 시호는 소덕으로서 순원각간의 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3.30

윤여동설 –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이 생명의 은인 고노자(高奴子)에게 식읍(食邑)으로 내려주었던 곡림(鵠林)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이 생명의 은인 고노자(高奴子)에게 식읍(食邑)으로 내려주었던 곡림(鵠林)을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4대 봉상왕 2년(A.D.293) 조를 보면, “가을8월 모용외(慕容廆)가 침공하여 왔다. 왕이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鵠林)까지 갔는데, 모용외가 왕이 도망친 것을 알고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어 왕이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이때 신성(新城) 성주인 북부소형 고노자(高奴子)가 기병 5백을 거느리고 와서 왕을 영접하고, 적군을 맞받아쳐 맹렬하게 치니 모용외의 군사가 패하여 물러갔다. 왕이 기뻐하여 고노자의 벼슬을 높여 대형(大兄)으로 삼고, 또한 곡림(鵠林)을 주어 그의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

카테고리 없음 2024.03.23

윤여동설 – 제왕운기(帝王韻紀)가 한반도 삼척(三陟)에서 쓰여지지 않았다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제왕운기(帝王韻紀)는 한반도 삼척(三陟)에서 쓰여지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위 : 제왕운기] 왕건의 고려(高麗)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상고사(上古史)와 고대사(古代史)는 발해(渤海) 북쪽 대륙역사이지 반도역사가 아니다. 고려(高麗)는 발해 북쪽에 위치했던 신라, 백제, 가야 그리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 세운 나라로서 도읍 개경(開京)은 한반도 황해도 개성이 아니라 발해 북쪽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관성만족자치현)이었다. 따라서 고려 사람인 이승휴(李承休)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했다는 삼척(三陟, 옛 실직)도 발해 북쪽 대륙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중국 사서들에는 요동(遼東) 동쪽 1천여 리에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가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에는 요..

카테고리 없음 2024.03.16

윤여동설 – 북진(北鎭)과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원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진(北鎭)과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원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북경이 옛날부터 수천년간 요동(遼東)이었고, 지금의 영정하(永定河)가 고대의 요수(遼水)였다.   그리고 이 고대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우리의 고구려와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신라의 남쪽에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북경이 바로 요(거란)나라의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였고, 금(여진)나라의 동경요양부였다.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거란, 여진이 모두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遼東半島)에 위치하고 있었다.  ☆ 지금..

카테고리 없음 2024.03.08

윤여동설 - 에덴동산은 아라라트산 서쪽

윤여동설 - 에덴동산은 아라라트산 서쪽  [위 : 튀르키예는 국토가 한마리의 소형상을 하고 있는 나라로서, 에덴동산은 바로 그 소의 배에 해당하는 곳이다. 서양판 십승지 우복동(十勝地 牛腹洞)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곳이 이스라엘 민족의 발상지이며, 고향이다. 성서에 에덴동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황야를 떠돌던 고난의 시기에 살기 좋았던 고향 땅에 대한 향수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위 : 아라라트산, 이스라엘 민족이 이 산의 서쪽에 위치했던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이 혹시 이 아라라트산의 대규모 화산 폭발로 인하여 지진과 화산재의 영향 등으로 당시 그곳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홍수로 농경지가 모두 수몰되어 그곳을 떠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며, 외..

카테고리 없음 2024.03.02

윤여동설 –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발상지 진짜 위치 찾기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발상지 진짜 위치 찾기 –최초주장    [망아지 머리 형상이 보이시나요?  좀 떨어져서 보세요. 그리고 필자가 망아지성(駒城, 용인의 옛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발해 북쪽, 진황도 도산남쪽 이곳에 진짜 망아지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반도사관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의미를 직역해 보면, 살았을 때는 진천에 사는게 좋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는게 좋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한반도 충북 진천(鎭川)과 경기도 용인(龍仁)에 대입시켜, 진천은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고, 용인에는 묘를 쓸 명당이 많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고려로부터 그 이전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 그리고 마한..

카테고리 없음 2024.02.29

윤여동설 - 고구려 명림답부(明臨答夫)의 묘 조성지 질산(質山)과 식읍 좌원(坐原)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명림답부(明臨答夫)의 묘 조성지 질산(質山)과 식읍 좌원(坐原)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2대 유리왕 조를 보면, “22년(A.D.3) 겨울10월 왕이 국내(國內)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2월 왕이 질산 북쪽(質山陰)에서 사냥하면서 닷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6대 태조대왕 조를 보면, “55년(A.D.107) 가을9월 왕이 질산 남쪽(質陽)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자주색 노루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8대 신대왕(新大王)조를 보면, “4년(A.D.168) 한(後漢)나라 현토군 태수 경림(耿臨)이 침입하여 우리 군사 수백 명을 죽였다.......... 8년(A.D.172)겨울11월 한(後漢)나라..

카테고리 없음 2024.02.24

윤여동설 – 고조선(古朝鮮)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탄생지는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능원(凌源) 부근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古朝鮮)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탄생지는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능원(凌源) 부근일 가능성 - 최초주장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 추정지(적봉시 영성현 대명진토성, 중국에서는 요(거란) 중경대정부터라 하고 있다. 좌표 : 동경119도08분49초 북위41도34분01초)]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 서쪽에 위치한 대명진토성(大明鎭土城)이었고,   두 번째 도읍 평양왕검성(平壤王儉城)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피서산장터였으며,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은 북경 동북쪽 무령산(霧靈山) 부근이었다.   그랬다가 고조선 47대 마지막 단군 고열가(高列加)때 권력이 약화되어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로 ..

카테고리 없음 2024.02.17

윤여동설 – 북연(北燕) 풍홍(馮弘)이 죽어 묻힌 고구려 북풍(北豐)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연(北燕) 풍홍(馮弘)이 죽어 묻힌 고구려 북풍(北豐)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북풍 부근의 산세] 북연(北燕)의 풍홍(馮弘)이 438년에 고구려로 망명해 오자 당시 고구려의 장수왕은 풍홍을 평곽(平郭)이라는 곳에 배치했다가 얼마 후 다시 북풍(北豐)으로 옮겨 배치했는데, 풍홍이 유송(유유의 송나라)으로의 망명을 다시 추진하자 장수들로 하여금 풍홍과 그 일족 10여 명을 모두 죽여버리도록 조치한다. 따라서 풍홍이 죽은 곳이 고구려의 북풍(北豐)이었으므로, 분명히 그곳에 묻혔을 것인데, 지금까지 북풍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따라서 아직까지도 북연 풍홍(馮弘)의 능은 발견되지 않았다. ☆ 당시 고구려에서 풍홍의 능을 격식에 맞게 대규모로 조성해 주었는지, 아니면 그 흔적을 없애버리기 ..

카테고리 없음 2024.02.03

한국전통문화 - 2024년 갑진년(甲辰年) 나의 운세(토정비결)는 과연 어떠할까?

한국전통문화 - 2024년 갑진년(甲辰年) 나의 운세(토정비결)는 과연 어떠할까? [2024년 갑진년 삼재띠는 쥐띠, 용띠, 원숭이띠인데, 지난 2022년도부터 2023년 그리고 2024년 올해까지 3년동안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날삼재라 하여 삼재가 끝나는 해입니다. 올 한해만 잘 넘기면 앞으로 9년간은 승승장구할 수 있게 됩니다. 힘내십시오] 2024년도 갑진년 토정비결 작괘 조견표 예) 음력 2024년 1월 1일생의 경우 : 상괘 7, 중괘 1, 하괘 3이므로 713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2.02

시사 – 꿈 속에서 이런 숫자를 보았습니다

시사 – 꿈 속에서 이런 숫자를 보았습니다    [nemosiya cafe capture]    잠깐 낮잠을 자다가 벚꽃 활짝 핀 봄날에 하늘에 새 떼들이 날아다니면서 매스게임(Massgame), 카드섹션(Card section) 하듯 여러 숫자를 만드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꿈을 꾸었습니다.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꿈속에서 본 새들이 만든 숫자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130                                                                                                                                        ..

카테고리 없음 2024.02.01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의 진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의 진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백제(온조백제, 대륙백제)의 “남한성(南漢城)”은 온조왕 재위 14년(B.C.5) 정월에 첫 도읍 위례성(慰禮城)으로부터 옮긴 두 번째 도읍으로서 13대 근초고왕이 371년에 북한산 아래 한성(漢城)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무려 375년간 백제(대륙백제)의 도읍이었고, 이 남한성 가까이에 축성된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쌓은 산성이었다. ☆ 고구려도 졸본에서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는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아 비상시에 대비하였고, 후일인 342년에 이르러서야 왕성인 국내성(國內城)을 쌓았었다. 이를 보면 이 당시의 왕들은 왕성을 별도로 쌓았던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는 백성들과 섞여 살다가 비상시에만 산성으로 들어가 ..

카테고리 없음 2024.01.27

윤여동설 – 발해국(渤海國)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와 거란(요) 동경 녹주압록군절도(淥州鴨淥軍節度)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渤海國)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와 거란(요) 동경 녹주압록군절도(淥州鴨淥軍節度)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이 확실 – 최초주장   [발해국 서경압록부와 거란의 녹주압록군절도 신주로 비정되는 지금의 고북수진. 이곳은 고조선의 도읍 백악산아사달로 비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신당서 발해전(渤海國傳)을 보면, 발해5경(渤海國五京)의 명칭과 위치 그리고 관할 주(州)에 대하여,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숙신의 옛 땅(肅愼故地)으로 상경(上京)을 삼고 용천부(龍泉府)라 하니,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 3주를 다스리고,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그 남쪽을 중경(中京)으로 삼고 현덕부(顯德府)라 하니,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

카테고리 없음 2024.01.20

시사 - 정유라가 경기 오산 안민석 국회의원 지역구에 출마?

시사 - 정유라가 경기 오산 안민석 국회의원 지역구에 출마?  [아시안게임 승마부문 금메달리스트 정유라] [안민석 국회의원(경기 오산선거구)] 누군가가 말했다. 정유라와 안민석이를 대결시켜보면 어떨까라고..........정유라가 경기 오산 안민석 국회의원 지역구에 출마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상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ㅋㅋ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까? 그리고 선거비용은 안민석이가 말한, 독일에 숨겨져 있다는 300조원 다 찾아다가 몽땅 선거비용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선거비용 300조원이라?300조원은,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쯤 되는 돈으로서,300만명에게 1억원씩 나누어 줄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다. 정유라는 이..

카테고리 없음 2024.01.18

윤여동설 - 원래의 부여와 북부여시조 천제 해모수, 졸본부여 시조 동명왕, 동부여 시조 해부루왕, 고구려 시조 추모왕(주몽왕), 백제시조 온조왕,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혈연관계도 - 최..

윤여동설 - 원래의 부여와 북부여시조 천제 해모수, 졸본부여 시조 동명왕, 동부여 시조 해부루왕, 고구려 시조 추모왕(주몽왕), 백제시조 온조왕,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혈연관계도 - 최초공개 [고조선 단군 왕검의 4자 부여에게 봉해졌던 부여성 :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부여성, 북부여성의 고루였던 지금의 적성고루]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사소상 : 동부여 해부루왕의 공주가 진한으로 와서 양산 나정에서 혁거세를 낳았고, 그가 자라 신라의 건국시조가 되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1.13

윤여동설 –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도읍 시기 천문관측지 첨성대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도읍 시기 천문관측지 첨성대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고구려 평양성 도읍 시기 첨성대터로 비정되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반벽산]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태조본] [천성열차분야지도 석각. 숙종복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   지금 전해지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에 제작된 돌에 새긴 천문도인데, 숙종 때 오류를 바로잡아 다시 복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에 석각천문도가 있었는데, 전쟁통에 잃어버렸고(필자주 : 당나라군이 패수 강물에 빠뜨려 버렸다고도 한다), 탁본만이 전해져 오던 것을 조선 초에 새로 새겨 만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 고적 조를 보면, “..

카테고리 없음 2024.01.05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부근 두곡이궁(豆谷離宮)과 두곡동원(豆谷東原) 유리왕릉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부근 두곡이궁(豆谷離宮)과 두곡동원(豆谷東原) 유리왕릉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22년(A.D.3)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국내(國內)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고구려 국내성(國內城) 자체는 한참 후대인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에 쌓았다고 했으므로 유리왕 당시에는 국내성이라는 성은 없었고, 다만 국내에 왕궁과 비상시를 대비한 산성인 위나암성만 있었다.   유리왕 29년(A.D.10) 조를 보면, “가을7월에 두곡(豆谷)에 이궁[離宮, 필자주 : 이궁(離宮)이란 본궁(本宮)과 멀리 떨어진 별장형태의 궁실을 말하는 듯하다]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유리왕 3..

카테고리 없음 2023.12.30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국내 동쪽 위나암산성]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21년(A.D.2) 조를 보면, “봄3월에 교제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왕이 장생 설지로 하여금 쫓아가게 하였더니, 국내(國內)의 위나암(尉那巖)에 이르러서 돼지를 붙잡아 국내 사람의 집에 가두어 기르도록 하고는,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기를, ”제가 돼지를 쫓아 국내(國內) 위나암(尉那巖)에 갔더니, 그곳의 산과 물이 깊고 험하며, 토양이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며, 또한 산짐승과 물고기 등 산물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왕께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신다면 백성들의 복리가 무궁할 뿐 아니라 또한 전쟁 걱정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9월 왕이 국내(國內)에..

카테고리 없음 2023.12.22

윤여동설 – 고구려와 백제(대륙백제)가 200년간 다투었던 쟁탈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백제(대륙백제)가 200년간 다투었던 쟁탈지 찾기 - 최초주장     고구려통전에 의하면,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B.C.37)에 북쪽의 부여(동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句麗)라 하고 고(高)로서 성을 삼았다”고 하였으며, 고기에는 이르기를 “주몽이 부여로부터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같은 곳인 듯하다.[필자주 : 주몽은 기원전 79년생으로서 22세 때인 기원전 58년 봄에 동부여로부터 졸본으로 도망쳐 와서 졸본부여 왕의 둘째 사위가 되었다가 그해 10월에 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성씨는 해(解)씨였다. 졸본은 풍광이 아주 좋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카테고리 없음 202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