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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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의 취미생활 – 돼지저금통에서 동전 보물 찾기

윤여동의 취미생활 – 돼지저금통에서 동전 보물 찾기    요즈음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희귀한 우리나라 동전들이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필자도 거추장스러운 호주머니 속 동전들을 모아 놓은 우리 집 돼지저금통 속에도 혹시 그러한 희귀한 동전들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되어 저금통을 쏟아 동전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글쎄 진짜로 아래와 같은 횡재를 했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빨리 돼지저금통을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필자처럼 보물을 찾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돼지저금통에서 찾은 보물들]  [1983년도에 발행된 1원짜리 동전 1개가 나왔는데, 이때 1원짜리의 원래 디자인을 약간 바꾸어 발행했다고 한다] [1966년도에 발행된 최초의 1원짜리 동전]  [..

카테고리 없음 2024.09.28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진짜 관미성(關彌城)은 북경 동쪽, 발해 북쪽 난하(灤河)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진짜 관미성(關彌城)은 북경 동쪽, 발해 북쪽 난하(灤河)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공개 [난공불락의 요새 진짜 백제(온조백제, 대륙백제) 관미성(關彌城)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하북성 당산시 천서현 난하(灤河 : 옛 패수) 강변에 위치했었다. 발해 북쪽 그곳 대륙에는 우리의 환인 환국으로부터 환웅의 단국 그리고 왕검조선과 마한, 진한, 변한이 위치하고 있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도 있었다. 발해 북쪽 대륙은 우리 선조들이 수천년간 왕조를 바꾸어 가며, 대를 이어 살았던 우리의 옛 땅이다]  [백제(대륙백제) 관미성은 갑비고차, 혈구(대륙강화)였던 발해 북쪽 하북성 당산시 천서현 왕가탄(王家灘)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백제(대륙백제)..

카테고리 없음 2024.09.21

윤여동설 – 북경(北京) 동쪽, 발해(渤海) 북쪽에 위치했던 온조백제(대륙백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경(北京) 동쪽, 발해(渤海) 북쪽에 위치했던 온조백제(대륙백제) - 최초공개  [중국 사서들에는 백제(百濟, 온조백제)는 고구려(高句麗)와 함께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중국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온조백제(대륙백제)는 지금의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 진황도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그 북쪽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했었다.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자리는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 낙랑군의 치소,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고려의 서경(西京)이었던 곳이고, 하북성 도산(都山) 남쪽 진황도시 노룡현이 백제 웅진성(熊津城), 당산시 난현이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성(泗沘城)이었던 곳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9.14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은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 아니고, 그곳의 고분벽화는 고구려고분벽화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은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 아니고, 그곳의 고분벽화는 고구려고분벽화가 아니다 - 최초주장     지금 반도식민사관론자들은 한반도 북쪽 압록강변에 위치한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을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라 주장하며, 고구려 졸본(卒本), 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관련 사서의 기록들을 모두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 일대에 대입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요수(遼水)인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동쪽 북경(北京) 일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고대사의 진실이었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鴨綠江)은 북경 북쪽 백하(白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지금의 ..

카테고리 없음 2024.09.07

윤여동설 –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관산성 실제 위치 확대사진 : 출입구가 마치 대롱처럼 길다고 하여 관산성(管山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좌표는 동경119도12분53초 북위41도13분07초이다]    백제와 신라가 온 국력을 기울여 피터지게 다투었고, 결국 신라가 차지함으로써 신라가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던 관산성(管山城)은 옛 우수주(우두주, 춘주, 춘천)였던 지금의 중국 요녕성 능원(凌源) 서쪽 대서산(大西山)의 옛 성터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15년(A.D.554)조에는, “백제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쳤다. 군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이를 맞아 싸우다가 불리하여 신주..

카테고리 없음 2024.08.31

윤여동설 -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 32대 효소왕(孝昭王)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 32대 효소왕(孝昭王)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신라 32대 효소왕과 33대 성덕왕은 모두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로서 효소왕이 장자였고, 성덕왕이 차자였다. 장자인 효소왕은 687년생이고, 차자인 성덕왕은 그보다 2-3년 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효소왕이 702년 7월에 1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왕비인 성정왕후(成貞王后)가 첫 임신 중에 있었고 후손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다음 왕위는 효소왕의 바로 아래 동생인 성덕왕이 올랐다.   아마 이때 성덕왕과 형수였던 죽은 효소왕의 왕비 성정왕후 사이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효소왕의 유복자를 놓고 어떤 밀약 같은 것이 있었던듯 하지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

카테고리 없음 2024.08.24

윤여동설 – 신라 31대 진짜 신문왕릉(神文王陵)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31대 진짜 신문왕릉(神文王陵)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주장   [한반도 경주의 가짜 신라 신문왕릉.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서라벌이 아니라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 태조 성한왕(星漢王) 김성(金星)이 세운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경주의 대형고분들은 흉노족왕국의 왕릉들이지 신라 왕릉이 아니다.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    한반도 경주에 있다고 하는 신라 신문왕릉(神文王陵)은 가짜이다. 왜냐하면 신라 신문왕은 한반도 경주에서 살다 죽은 왕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신라의 서라벌(徐羅伐, 필자주 : 遼寧省 錦州市)에서 살다 죽어 그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은 죽어 지금의 어디에 묻혔을까?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카테고리 없음 2024.08.17

윤여동설 – 신기한 인연이 있는 한반도 도시와 중국 도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기한 인연이 있는 한반도 도시와 중국 도시 – 최초주장    아래 도시들은 정말 신기한 인연이 있는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은 고려로부터 그 이전에는 지금 중국에 있는 도시들이, 조선시대부터는 한반도의 도시들이 고대 지명의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사실 한반도의 경상북도 경주(慶州)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다. 신라는 바로 그곳 요녕성 금주시에서 건국되어 천년 역사를 이어오다가 금주시에서 멸망했다.   그런데 경주(慶州)라는 지명은 한반도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朝鮮) 태조 이성계가 발해(渤海) 북쪽 대륙에서 태조 왕건의 고려(高麗)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후 한반도로 도읍을 옮기고 지명..

카테고리 없음 2024.08.10

윤여동설 – 양양 낙산사 의상대 현판 글씨가 이상하다

윤여동시사 – 양양 낙산사 의상대 현판 글씨가 이상하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  무심코 지나쳤던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 현판.그런데 자세히 보니 義湘臺(의상대)가 아니라 "羲湘臺(희상대)"라 쓰여 있다. 지금까지 당연히 의상대라고 쓰여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희상대라 쓰여 있었던 것이다.그곳이 원래 의상대사(義湘大師)와 관련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의상대라고 한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법호가 원래 희상대사(羲湘大師)였나? 아니면 義(의)와 羲(희)를 헷갈려 잘못 쓴 것인가?                 [희상대]                [의상대]

카테고리 없음 2024.08.06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黃城), 장안성(長安城)은 고구려의 도읍이 아니라 도읍인 평양에 있던 왕궁(王宮)의 이름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黃城), 장안성(長安城)은 고구려의 도읍이 아니라 도읍인 평양에 있던 왕궁(王宮)의 이름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1년(A.D.247)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환도성(丸都城)은 병란을 겪어 다시 도읍하기 불가하다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들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평양이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인데, 혹은 왕검이 도읍한 곳이기 때문에 왕검성(王儉城)이라고도 한다.[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儉之都王儉城 : 필자가 누락글자 2자 추가]”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환도성으로부터 옛 왕검성이었던 평양성으로 완전히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 이때 고구려..

카테고리 없음 2024.08.03

윤여동설 – 경주 “대릉원(大陵苑)” 현판 글씨 “대릉원(大陵園)”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윤여동시사 – 경주 “대릉원(大陵苑)” 현판 글씨 “대릉원(大陵園)”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경주 대릉원 현판]     지금 경주 대릉원에는 “大陵苑(대릉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박정희 대통령 글씨라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가 잘못 써진게 아닌가 싶다.   혹시 “大陵園(대릉원)”으로 써야 했는데, “大陵苑(대릉원)”으로 썼고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이다 보니 당시 아무도 잘못썼다고 지적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지금까지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왕과 왕비의 무덤을 나타내는 능(陵)과 왕족들의 무덤을 나타내는 원(園)의 한자는 원래 이렇고, 그리하여 “陵園(능원)”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보아도, 신라 혁거세거서간을 사릉(..

카테고리 없음 2024.07.30

윤여동설 – 신라 혁거세거서간의 첫 왕비는 알영(閼英)이 아니었다 알영은 두번째 왕비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혁거세거서간의 첫 왕비는 알영(閼英)이 아니었다 알영은 두번째 왕비였다 – 최초주장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천후성모 사소상]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은 기원전 69년에 서라벌(徐羅伐)의 동쪽알천양산촌 부근의 양산 나정(蘿井)에서 태어나 13세 때인 기원전 57년에 이르러 신라의 첫 왕위에 올랐다가 서기 4년에 73세의 나이로 죽어 탄생지 나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릉(蛇陵)에 묻혔다.  ☆ 사릉원(蛇陵園)은 알천양산촌과 담암사(담엄사라고도 한다) 사이에 위치했고, 혁거세거서간을 비롯한 신라 박씨왕들의 왕릉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혁거세거서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혁거세거서간의 왕비로 기록되고 있는 알영(閼英)이 사실은 혁거세거서간의 첫번째 왕비가 아..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남한성(南漢城), 한성(漢城) 도읍시기 백제왕릉들은 모두 남한성 동쪽 구성(駒城, 용인의 옛이름)에 조성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남한성(南漢城), 한성(漢城) 도읍시기 백제왕릉들은 모두 남한성 동쪽 구성(駒城, 용인의 옛이름)에 조성했을 가능성 – 최초주장  [대륙백제(온조백제) 왕위계승도] 장                           시조 온조왕(첫도읍 위례성, 남한성으로 도읍이전) 자                                       ↓ 계                                      자(실명 :온조왕보다 먼저 죽었다)승                                       ↓기                               2대 다루왕                                           ↓     ..

카테고리 없음 2024.07.20

윤여동설 – 백제(온조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온조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이유 – 최초주장      백제(온조백제, 대륙백제)의 후기 도읍 웅진(熊津)은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한성(漢城)을 함락당하고, 개로왕(근개루왕이라고도 부른다)이 잡혀 죽는 비상시국인 475년에 문주왕이 급히 옮겼던 도읍이었다.  그런데 백제는 이 웅진에서 동성왕, 무령왕 대를 거치면서 고구려에 빼앗겼던 땅을 거의 회복함으로써 다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렇다면 이때 백제는 굳이 도읍을 옮길 이유가 없었을 것인데, 무령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성왕은 538년에 이르러 웅진(熊津)에서 더 남쪽에 위치한 사비(泗沘)로 다시 도읍을 옮기고, 국호도 남부여(南扶餘)라 했다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새로운 ..

카테고리 없음 2024.07.13

윤여동설 –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난평현의 관할구역]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26년(A.D.438) 조를 보면, “봄3월 초에 연(燕, 북연)나라 왕 풍홍(馮弘)이 요동(遼東)에 도착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위로하여 말하기를,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들판에서 묵으니 노고가 많소”하니 풍홍이 호칭을 문제삼아 화를 내었다. 왕이 풍홍을 평곽(平郭)에 있게 하였다가 얼마 후 다시 북풍(北豐)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동(遼東), 평곽(平郭), 북풍(北豐)이 언급되는데 우리는 지금 평곽(平郭)이 어디인지, 북풍(北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 고대의 10리는 약2.3km였는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

카테고리 없음 2024.07.06

윤여동설 – 고구려 민중원에 조성된 민중왕릉(閔中王陵)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古崖居) 부근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많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민중원에 조성된 민중왕릉(閔中王陵)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古崖居) 부근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많다 – 최초주장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민중왕 4년(A.D.47) 조를 보면,   “여름4월 왕이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을 하였다.  가을7월 또 (민중원에서) 사냥을 하다가 석굴을 보고는 측근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여기에 장사지낼 것이며, 따로이 능묘를 만들지 말라” 하였다.   5년(A.D.48) 왕이 죽었다.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왕의 유언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민중왕(閔中王)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 4대 민중왕릉은 민중원(閔中原)이라는 곳의 석굴에 장사지냈음을 알게 한다. ☆ 고구려 왕릉조..

카테고리 없음 2024.06.29

윤여동시사 – 동해안유전펀드를 조성하여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유전 시추 비용을 충당하자

시사 – 동해안유전펀드를 조성하여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유전 시추 비용을 충당하자 [포항 불의 정원 : 포항 앞바다에 석유와 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하는데, 마침 포항에서 가스가 솟아올라 불이 붙어 수년째 불타고 있으니 우연 만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 동해안 영일만 앞바다에 원유와 가스가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단다.  포항 불의정원에도 가스가 수년째 불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양의 많고 적음은 차치하고 부근에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그렇다면 영일만 앞바다 심해를 어떻게든 파 봐야 할텐데 그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 시추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섯 군데는 파 봐야 한다는데, 한군데 파 보는데 1,000억원이 넘게 든단다.   무슨..

카테고리 없음 2024.06.23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의 진짜 금성(金城)터, 만월성(滿月城)터, 월성(月城)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의 진짜 금성(金城)터, 만월성(滿月城)터, 월성(月城)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위 : 남쪽과 북쪽에서 바라본 서라벌(只今 遼寧省 錦州市)의 지형]  [금성 추정지(해발 20m쯤에 위치)와 그 동쪽 1리의 알천] 금성(金城) : 경주부 동쪽4리혁거세거서간 21년(B.C.37) 경성(京城)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성이 경주부의 동쪽 4리에 위치했고, 혁거세 때 흙으로 성을 쌓았으며, 둘레가 2,407척이라 하였다. [금성과 월성(반월성)의 중간에 위치했던 만월성 추정지, 해발 19m쯤에 위치] 만월성(滿月城) : 월성 북쪽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위치했고,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4,945척이라 하였다. [월성(반월성) 추정지, 해발..

카테고리 없음 2024.06.22

윤여동설 – 신라 51대 진성여왕릉(眞聖女王陵) 조성지 황산(黃山)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51대 진성여왕릉(眞聖女王陵) 조성지 황산(黃山)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가야의 강역에 대하여, “동쪽은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창해(滄海), 서북쪽은 지리산(地理山), 동북쪽은 가야산(伽耶山),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방향이 약간 비틀려 기록되어 있지만, 가야의 최대 강역이 동쪽은 황산강까지, 서쪽은 지리산까지, 남쪽은 바다에 닿았고, 북쪽은 가야산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51대 진성여왕 2년(A.D.888) 조를 보면, “왕이 그전부터 각간 위홍(魏弘)과 통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항상 궁중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명하여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향가를 수집, 편찬하게..

카테고리 없음 2024.06.16

윤여동설 – 한반도 경상도 낙동강 동쪽은 흉노족 투후(秺侯)계열 왕국이었고, 낙동강 서쪽은 흉노족 성도후(成都侯)계열 왕국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상도 낙동강 동쪽은 흉노족 투후(秺侯)계열 왕국이었고, 낙동강 서쪽은 흉노족 성도후(成都侯)계열 왕국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위 : 한반도 경주출토 太祖星漢(태조성한) 명문 비편] [위 : 한반도 경주 금관총 출토 금관] [위 : 흉노족왕국 태조성한왕릉(太祖星漢王陵)으로 비정되는 한반도 경주 봉황대 고분] [위 : 한반도 경주 고분 서역인 무인상]   투후 김성(金星)과 성도후 김탕(金湯) 때 이르러 왕망(王莽)의 신(新, A.D.8-23)나라가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에 의해 멸망하고 후한(後漢)이 세워지자, 왕망과 친인척간으로서 신(新)나라에 적극 협조했던 흉노족들은 멸족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 왕망(王莽)의 어머니와 김당(金當)의 어머니는 자매 사이로서 왕..

카테고리 없음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