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의 진짜 금성(金城)터, 만월성(滿月城)터, 월성(月城)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위 : 남쪽과 북쪽에서 바라본 서라벌(只今 遼寧省 錦州市)의 지형]
[금성 추정지(해발 20m쯤에 위치)와 그 동쪽 1리의 알천]
금성(金城) : 경주부 동쪽4리
혁거세거서간 21년(B.C.37) 경성(京城)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성이 경주부의 동쪽 4리에 위치했고, 혁거세 때 흙으로 성을 쌓았으며, 둘레가 2,407척이라 하였다.
[금성과 월성(반월성)의 중간에 위치했던 만월성 추정지, 해발 19m쯤에 위치]
만월성(滿月城) : 월성 북쪽
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위치했고,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4,945척이라 하였다.
[월성(반월성) 추정지, 해발 18m쯤에 위치]
월성(月城) : 경주부 동남쪽5리
5대 파사이사금 22년(A.D.101) 봄2월에 성을 쌓고 이름을 월성(月城)이라 하였다. 가을7월에 왕이 월성으로 옮겨 살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월성이 경주부의 동남쪽 5리에 위치했고, 그 형태가 반달 같아서 월성(필자주 : 반월성이라고도 한다)이라 했고,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3,023척이라 하였다.
낭산(狼山) : 경주부 동쪽9리 진산(鎭山)
선도산(仙桃山, 서악, 서술산) : 경주부 서쪽7리
금오산(金鼇山, 남산) : 경주부 남쪽6리
남산성(南山城) : 월성 남쪽[남산성은 월성의 남쪽에 위치했고,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7,544척이라 하였다]
첨성대(瞻星臺) : 경주부 동쪽3리[천문관측지]
양산나정(楊山蘿井) : 경주부 동쪽7리[혁거세거서간 탄생지]
흥륜사(興輪寺) : 경주부 남쪽2리
시림(始林) : 경주부 남쪽4리[김알지 발견지]
포석정(鮑石亭) : 경주부 남쪽7리
동천(東川, 알천) : 경주부 동쪽5리
서천(西川) : 경주부 서쪽5리
문천(蚊川) : 경주부 남쪽5리
굴연천(堀淵川) : 경주부 북쪽20리
[청색 유적지와 하천은 여러분들께서 위치를 직접 찾아 비정해 보세요]
[한반도 경주시내 지형도인데, 위 지명들을 대입해 비교해 보시면,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이 아니라고 하는 필자의 주장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주부 동쪽 5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한반도 경주에는 낭산이 동남쪽에 위치해 있고, 금성 서쪽 1리에 위치하고 있었을 첨성대가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록과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엉터리로 비정해 놓았기 때문이지요.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서라벌이 아니라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한반도 동남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왕국의 도읍으로서 지금 한반도 경주에 있는 커다란 고총들은 흉노족왕국의 왕들이 죽어 묻힌 곳이지 신라왕릉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