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2024/10 4

윤여동설 –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이 고조선(古朝鮮)의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이 고조선(古朝鮮)의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이었다 - 최초주장    [사마대장성여유구라는 관광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고색창연하고 풍광이 수려한 고북수진(古北水鎭). 바로 이곳이 고조선의 세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이었고, 고구려의 고국이었으며, 발해의 서경압록부였고, 거란의 녹주압록군절도였으며, 정안국의 도읍이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의 현장은 영원히 미로를 헤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위 : 사마대장성, 금산령장성이 지나고 있으며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고색창연한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이 우리 고조선(古朝鮮)의 세..

카테고리 없음 2024.10.26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에 백제 건국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구태(仇台)”는 8대 고이왕의 할아버지였고,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의 6대조였다 – 최초 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에 백제 건국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구태(仇台)”는 8대 고이왕의 할아버지였고,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의 6대조였다 – 최초 주장      삼국사기 잡지 제1 제사 조를 보면, “책부원구에 이르기를 ‘백제는 연중 네 철의 중간 달마다 왕이 하늘과 5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그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서울에 세우고 해마다 네 차례씩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라고 중국 사서의 기록을 인용했으나 찜찜했던지 주를 달아 “해동고기에 의하면 혹은 시조 동명왕(東明王, 필자주 : 동명왕은 주몽이 아니라 사실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를 말하는 것이다)이라 하였고 혹은 시조 우태(優台)라 하였는데, 북사와 수서에는 모두 동명의 후손 구태(仇台)가 대방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고, 여기에는 ..

카테고리 없음 2024.10.19

윤여동설 – 명청(明淸) 시기 5군(요동군,요서군,상곡군,우북평군,어양군)의 지명이동으로 발해 북쪽 우리 고대사, 상고사의 대륙지명들이 모두 사라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명청(明淸) 시기 5군(요동군,요서군,상곡군,우북평군,어양군)의 지명이동으로 발해 북쪽 우리 고대사, 상고사의 대륙지명들이 모두 사라졌다 – 최초주장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 중 일부 군의 명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고구려 5대 모본왕 2년(A.D.49) 조에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 : 후한)나라의 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제융이라고도 한다)이 은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을 했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이 기록의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었다. 왜냐하면, 당시 한반도 북쪽 압록강 부근에 도읍하고 있었다고 인식되어 있던 고구려가 어떻게 지금의..

카테고리 없음 2024.10.12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그리고 서진낙랑군(西晉樂浪郡)의 위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그리고 서진낙랑군(西晉樂浪郡)의 위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위 : 옛 갈석산(碣石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낭아산(狼牙山) 풍경]    전한(前漢) 무제 때인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설치했던 원래의 한사군(漢四郡)은,   낙랑군(樂浪郡, 치소는 고조선(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진번군(眞番郡, 치소는 우수주였던 지금의 요녕성 능원),  임둔군(臨屯郡, 치소는 명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통요의 고륜기),  현토군(玄菟郡, 치소는 함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적봉의 옹우특기)이었다.   그런데 진번군과 임둔군은 설치된 지 26년 후인 기원전 82년..

카테고리 없음 202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