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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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명청(明淸) 시기 5군(요동군,요서군,상곡군,우북평군,어양군)의 지명이동으로 발해 북쪽 우리 고대사, 상고사의 대륙지명들이 모두 사라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4. 10. 12. 14:46

윤여동설 명청(明淸) 시기 5(요동군,요서군,상곡군,우북평군,어양군)의 지명이동으로 발해 북쪽 우리 고대사, 상고사의 대륙지명들이 모두 사라졌다 최초주장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 중 일부 군의 명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고구려 5대 모본왕 2(A.D.49) 조에 "봄에 장수를 보내 한(: 후한)나라의 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제융이라고도 한다)이 은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을 했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이 기록의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었다. 왜냐하면, 당시 한반도 북쪽 압록강 부근에 도읍하고 있었다고 인식되어 있던 고구려가 어떻게 지금의 산서성 태원(太原)까지 침공할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어양군은 2,000,

  우북평군 2,300,

  상곡군은 3,200,

  요서군은 3,300,

  요동군은 3,600,

  현토군은 4,000,

  낙랑군은 5,00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많은 사서들에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고구려와 백제가 함께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고대 요동군(遼東郡)의 위치를 정확히 찾으면, 우리의 고구려와 백제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대의 10리는 지금의 약2.3km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져 있었다는 요동군(遼東郡)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 낙양 동북쪽 3,600리를 환산하면(3,600× 0.23km = 828km) 828km로 환산되는데,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828km는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곧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되고, 고대의 요수(遼水)는 영정하(永定河)라는 말과 같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우리의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북경(北京)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고, 또한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위치했었고, 고구려의 동남쪽에 신라가 위치했었으며, 신라의 남쪽에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고, 신라의 북쪽에는 예(동예)와 맥이 국경을 맞대고 위치했었으니, 그렇다면 결국 이 모두는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상식처럼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대륙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발해의 동쪽, 한반도의 북쪽을 요동(遼東)이라 하고, 그곳의 반도를 요동반도(遼東半島)라고 한다.

  고대에는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이 요동(遼東)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을 요동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이고,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필자가 우리 역사를 연구해본 결과 5(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과 낙랑군, 현토군의 지명들이 명, 청대에 이르러 이동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앞서 왕건의 고려(高麗)가 멸망하고 이성계의 조선(朝鮮)이 건국된 후 조선 태조 이성계가 발해 북쪽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옮겨가자, 명청(明淸) 시기에 5군 즉 요동군(遼東郡), 요서군(遼西郡), 상곡군(上谷郡), 우북평군(右北平郡), 어양군(漁陽郡)을 동북쪽으로 수천리 이동시켜,

  옛 왜국(倭國) 땅에 요동군(遼東郡)을 배치했고,

  옛 신라(新羅) 땅에 요서군(遼西郡)을,

  옛 백제(百濟) 땅에 우북평군(右北平郡)을,

  옛 대방(帶方) 땅에 어양군(漁陽郡)을,

  옛 현토(玄菟) 땅에 상곡군(上谷郡)을 배치했고,

  옛 발해국(渤海國) 땅에 거란(契丹)을,

  옛 왜국(倭國) 북쪽에 부여(扶餘)를,

  옛 모인국(毛人國) 땅에 발해국(渤海國)을 배치했으며,

  한반도(韓半島)에 낙랑군(樂浪郡)과 조선(朝鮮)을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발해 북쪽 우리의 대륙고대사와 대륙상고사의 지명들 모두를 지금의 한반도 내 또는 압록강 부근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우리의 대륙 고대사와 상고사의 강역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대륙 옛 지명들도 모두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우리의 발해 북쪽 대륙역사 강역을 찾아 나섰고, 지명들도 찾아내고 있는 것인데,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朝鮮縣),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로 밝혀졌고,   

 

백제의 웅진(熊津)은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사비(泗沘)는 하북성 당산시 난현으로 밝혀졌으며,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金官城)은 요녕성 호로도시 흥성시로 밝혀졌고,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은 하북성 승덕시 관성만족자치현(寬城滿族自治縣)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고대의 태백산(太白山) 백두산(白頭山), 장백산(長白山)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2,067m)으로 밝혀졌고, 백제의 북한산(北漢山)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 금관가야의 가야산은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대홍라산(大虹螺山), 구지봉은 지금의 흥성 수산(首山), 지리산은 지금의 진황도 창려의 갈석산(碣石山)으로 밝혀졌다.

 

  또한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북경 서쪽 영정하(永定河), 압록강(鴨綠江, 鴨淥江)은 북경 북쪽과 동쪽을 흐르는 지금의 백하(白河)와 밀운수고(密雲水庫), 조백하(潮白河)로 이어지는 강을 말하는 것이며, 살수(薩水)는 지금의 조하(潮河), 패수(浿水)는 지금의 난하(灤河) , 상류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필자가 지금의 북경 부근이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었음을 빨리 인식했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었던 지명들이다.

  우리 대륙역사 강역을 올바르게 찾아낼 수 있는 지름길은 바로 지금의 북경 부근이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연구하시는 역사연구자 여러분들께서도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을 지금의 북경에 맞추시고, 사서의 기록들을 해석해보시면, 필자의 주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