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2024/08 6

윤여동설 –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관산성 실제 위치 확대사진 : 출입구가 마치 대롱처럼 길다고 하여 관산성(管山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좌표는 동경119도12분53초 북위41도13분07초이다]    백제와 신라가 온 국력을 기울여 피터지게 다투었고, 결국 신라가 차지함으로써 신라가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던 관산성(管山城)은 옛 우수주(우두주, 춘주, 춘천)였던 지금의 중국 요녕성 능원(凌源) 서쪽 대서산(大西山)의 옛 성터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15년(A.D.554)조에는, “백제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쳤다. 군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이를 맞아 싸우다가 불리하여 신주..

카테고리 없음 2024.08.31

윤여동설 -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 32대 효소왕(孝昭王)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 32대 효소왕(孝昭王)과 33대 성덕왕(聖德王)의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신라 32대 효소왕과 33대 성덕왕은 모두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들로서 효소왕이 장자였고, 성덕왕이 차자였다. 장자인 효소왕은 687년생이고, 차자인 성덕왕은 그보다 2-3년 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효소왕이 702년 7월에 1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왕비인 성정왕후(成貞王后)가 첫 임신 중에 있었고 후손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다음 왕위는 효소왕의 바로 아래 동생인 성덕왕이 올랐다.   아마 이때 성덕왕과 형수였던 죽은 효소왕의 왕비 성정왕후 사이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효소왕의 유복자를 놓고 어떤 밀약 같은 것이 있었던듯 하지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

카테고리 없음 2024.08.24

윤여동설 – 신라 31대 진짜 신문왕릉(神文王陵)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31대 진짜 신문왕릉(神文王陵) 조성지를 찾았다 – 최초주장   [한반도 경주의 가짜 신라 신문왕릉.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서라벌이 아니라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 태조 성한왕(星漢王) 김성(金星)이 세운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경주의 대형고분들은 흉노족왕국의 왕릉들이지 신라 왕릉이 아니다.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    한반도 경주에 있다고 하는 신라 신문왕릉(神文王陵)은 가짜이다. 왜냐하면 신라 신문왕은 한반도 경주에서 살다 죽은 왕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신라의 서라벌(徐羅伐, 필자주 : 遼寧省 錦州市)에서 살다 죽어 그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은 죽어 지금의 어디에 묻혔을까?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카테고리 없음 2024.08.17

윤여동설 – 신기한 인연이 있는 한반도 도시와 중국 도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기한 인연이 있는 한반도 도시와 중국 도시 – 최초주장    아래 도시들은 정말 신기한 인연이 있는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은 고려로부터 그 이전에는 지금 중국에 있는 도시들이, 조선시대부터는 한반도의 도시들이 고대 지명의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사실 한반도의 경상북도 경주(慶州)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다. 신라는 바로 그곳 요녕성 금주시에서 건국되어 천년 역사를 이어오다가 금주시에서 멸망했다.   그런데 경주(慶州)라는 지명은 한반도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朝鮮) 태조 이성계가 발해(渤海) 북쪽 대륙에서 태조 왕건의 고려(高麗)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후 한반도로 도읍을 옮기고 지명..

카테고리 없음 2024.08.10

윤여동설 – 양양 낙산사 의상대 현판 글씨가 이상하다

윤여동시사 – 양양 낙산사 의상대 현판 글씨가 이상하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  무심코 지나쳤던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 현판.그런데 자세히 보니 義湘臺(의상대)가 아니라 "羲湘臺(희상대)"라 쓰여 있다. 지금까지 당연히 의상대라고 쓰여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희상대라 쓰여 있었던 것이다.그곳이 원래 의상대사(義湘大師)와 관련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의상대라고 한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법호가 원래 희상대사(羲湘大師)였나? 아니면 義(의)와 羲(희)를 헷갈려 잘못 쓴 것인가?                 [희상대]                [의상대]

카테고리 없음 2024.08.06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黃城), 장안성(長安城)은 고구려의 도읍이 아니라 도읍인 평양에 있던 왕궁(王宮)의 이름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黃城), 장안성(長安城)은 고구려의 도읍이 아니라 도읍인 평양에 있던 왕궁(王宮)의 이름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1년(A.D.247)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환도성(丸都城)은 병란을 겪어 다시 도읍하기 불가하다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들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평양이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인데, 혹은 왕검이 도읍한 곳이기 때문에 왕검성(王儉城)이라고도 한다.[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儉之都王儉城 : 필자가 누락글자 2자 추가]”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환도성으로부터 옛 왕검성이었던 평양성으로 완전히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 이때 고구려..

카테고리 없음 2024.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