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2024/07 5

윤여동설 – 경주 “대릉원(大陵苑)” 현판 글씨 “대릉원(大陵園)”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윤여동시사 – 경주 “대릉원(大陵苑)” 현판 글씨 “대릉원(大陵園)”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경주 대릉원 현판]     지금 경주 대릉원에는 “大陵苑(대릉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박정희 대통령 글씨라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가 잘못 써진게 아닌가 싶다.   혹시 “大陵園(대릉원)”으로 써야 했는데, “大陵苑(대릉원)”으로 썼고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이다 보니 당시 아무도 잘못썼다고 지적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지금까지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왕과 왕비의 무덤을 나타내는 능(陵)과 왕족들의 무덤을 나타내는 원(園)의 한자는 원래 이렇고, 그리하여 “陵園(능원)”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보아도, 신라 혁거세거서간을 사릉(..

카테고리 없음 2024.07.30

윤여동설 – 신라 혁거세거서간의 첫 왕비는 알영(閼英)이 아니었다 알영은 두번째 왕비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혁거세거서간의 첫 왕비는 알영(閼英)이 아니었다 알영은 두번째 왕비였다 – 최초주장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천후성모 사소상]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은 기원전 69년에 서라벌(徐羅伐)의 동쪽알천양산촌 부근의 양산 나정(蘿井)에서 태어나 13세 때인 기원전 57년에 이르러 신라의 첫 왕위에 올랐다가 서기 4년에 73세의 나이로 죽어 탄생지 나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릉(蛇陵)에 묻혔다.  ☆ 사릉원(蛇陵園)은 알천양산촌과 담암사(담엄사라고도 한다) 사이에 위치했고, 혁거세거서간을 비롯한 신라 박씨왕들의 왕릉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혁거세거서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혁거세거서간의 왕비로 기록되고 있는 알영(閼英)이 사실은 혁거세거서간의 첫번째 왕비가 아..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남한성(南漢城), 한성(漢城) 도읍시기 백제왕릉들은 모두 남한성 동쪽 구성(駒城, 용인의 옛이름)에 조성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온조백제) 남한성(南漢城), 한성(漢城) 도읍시기 백제왕릉들은 모두 남한성 동쪽 구성(駒城, 용인의 옛이름)에 조성했을 가능성 – 최초주장  [대륙백제(온조백제) 왕위계승도] 장                           시조 온조왕(첫도읍 위례성, 남한성으로 도읍이전) 자                                       ↓ 계                                      자(실명 :온조왕보다 먼저 죽었다)승                                       ↓기                               2대 다루왕                                           ↓     ..

카테고리 없음 2024.07.20

윤여동설 – 백제(온조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온조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이유 – 최초주장      백제(온조백제, 대륙백제)의 후기 도읍 웅진(熊津)은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한성(漢城)을 함락당하고, 개로왕(근개루왕이라고도 부른다)이 잡혀 죽는 비상시국인 475년에 문주왕이 급히 옮겼던 도읍이었다.  그런데 백제는 이 웅진에서 동성왕, 무령왕 대를 거치면서 고구려에 빼앗겼던 땅을 거의 회복함으로써 다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렇다면 이때 백제는 굳이 도읍을 옮길 이유가 없었을 것인데, 무령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성왕은 538년에 이르러 웅진(熊津)에서 더 남쪽에 위치한 사비(泗沘)로 다시 도읍을 옮기고, 국호도 남부여(南扶餘)라 했다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새로운 ..

카테고리 없음 2024.07.13

윤여동설 –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난평현의 관할구역]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26년(A.D.438) 조를 보면, “봄3월 초에 연(燕, 북연)나라 왕 풍홍(馮弘)이 요동(遼東)에 도착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위로하여 말하기를,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들판에서 묵으니 노고가 많소”하니 풍홍이 호칭을 문제삼아 화를 내었다. 왕이 풍홍을 평곽(平郭)에 있게 하였다가 얼마 후 다시 북풍(北豐)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동(遼東), 평곽(平郭), 북풍(北豐)이 언급되는데 우리는 지금 평곽(平郭)이 어디인지, 북풍(北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 고대의 10리는 약2.3km였는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

카테고리 없음 20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