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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4. 7. 6. 12:04

윤여동설 고구려의 진짜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터를 찾았다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난평현의 관할구역]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26(A.D.438) 조를 보면, “3월 초에 연(, 북연)나라 왕 풍홍(馮弘)이 요동(遼東)에 도착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위로하여 말하기를,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들판에서 묵으니 노고가 많소하니 풍홍이 호칭을 문제삼아 화를 내었다. 왕이 풍홍을 평곽(平郭)에 있게 하였다가 얼마 후 다시 북풍(北豐)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동(遼東), 평곽(平郭), 북풍(北豐)이 언급되는데 우리는 지금 평곽(平郭)이 어디인지, 북풍(北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 고대의 10리는 약2.3km였는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도로 거리는 약 810-835km이다. 환산해 보면, 약 3,600리가 된다. 북경 부근이 고대의 요동군이라는 필자의 주장이 옳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원(翰苑) 고구려편을 보면 “고구려기에 이르기를, 평곽성(平郭城)은 지금의 건안성(建安城)이다. 고구려(평양성)의 서쪽에 있는데 본래는 한(漢) 나라의 평곽현이다(高句麗記曰 平郭城 今建安城 在國西 本漢平郭縣也)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의 건안성이 곧 옛 평곽성, 평곽현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원래 평곽현에 평곽성(平郭城)이 있었는데, 후대에 이르러 그 성의 이름이 건안성(建安城)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난 보장왕 4(A.D.645)에 이르러 당 태종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안시성(安市城, 옛 환도성)이 좀처럼 함락되지 않자 상황이 난처해지는데, 이때의 작전회의에서 오골성(烏骨城)과 건안성(建安城)이 언급된다. 이때 장수들이 안시성(安市城)을 건너 뛰어 오골성(烏骨城, 필자주 : 위치불명)으로 에둘러 가서 함락시킨 후 전진하여 평양성(平壤城)을 빼앗는 것으로 작전 변경을 건의하자 당 태종도 솔깃하게 되는데, 이때 장손무기가 홀로 말하기를, “지금 건안(建安)과 신성(新城)의 적들이 아직 1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만일 오골(烏骨, 오골성)로 에둘러 간다면 고구려 군사들이 반드시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이니, 먼저 안시(安市)를 깨뜨리고 건안(建安)을 취하는 것이 옳습니다하니 황제가 곧 중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의 전쟁 기록 전문을 검토해 보면, 기록 속에서 각 성들의 위치를 대강 유추해 볼 수 있다.

 

자치통감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이 전쟁 초기에 영주도독(營州都督) 장검이 호병(胡兵)들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요수(遼水)를 건너 건안성(建安城)으로 달려와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수천명을 죽였다[營州都督張儉將胡兵為前鋒進渡遼水趨建安城破高麗兵斬首數千級(자치통감), 營州都督張儉將胡兵為前鋒進渡遼水趨建安城破我兵殺數千人(삼국사기)]”는 기록이 있으나 필자는 이는 건안성(建安城)이 아니라 다른 성을 잘못 기록한 오기(誤記)로 보고 있다. 이유는 이 전쟁에서 사실 당나라군은 안시성에서 평양성으로 가는 길목인 살수 동쪽에 위치했던 건안성(建安城, 한원에는 한나라 때의 평곽성이라 하였다)은 커녕 압록강도 건너지 못하고 철군했기 때문이고, 또한 당 태종과 이세적의 대화 내용 중, “내가 들으니 안시(安市)는 성이 험하고, 군사가 강하며, 그 성주가 자질이 용맹하여 막리지(필자주 : 연개소문을 말한다)의 난에도 성을 지켜 항복하지 않았고, 막리지가 공격했으나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을 그에게 주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건안(建安)은 군사가 약하고, 군량이 적으니 만약 그들이 생각지도 않을 때에 치게 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먼저 건안을 쳐야 하는 바 건안이 항복한다면 안시는 우리의 뱃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병법에서 말하는 공격하지 말아야 할 성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일까 한다.” 하였다. 그러자 이세적이 답하기를, “건안(建安)은 북쪽이 있고[필자주 : 원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가 확실하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 안시(安市)는 남쪽에 있는데[필자주 : 원문은 북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기가 확실하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 우리의 군량은 모두 (안시의 남쪽인) 요동(遼東)에 있습니다.[필자주 : 요동은 안시성의 서남쪽에 위치했다. 즉 요동성의 동북쪽에 안시성이, 그 안시성의 동북쪽에 건안성이, 그 건안성의 동북쪽에 고구려 평양성이 위치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조선시대에 삼국사기를 다시 판각할 때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는 남, 북을 바꾸어 판각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는 그러한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제 안시(安市)를 넘어(건너 뛰어) 건안(建安)을 치다가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끊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했다는 기록 역시 안시성과 건안성은 모두 요동에서 평양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성으로서 안시성과 건안성의 위치가 바뀌어 잘못 기록되어 있다고 판단되어 필자가 바로 잡았는데, 기록 속에서 안시성(安市城)을 건너 뛰어 건안성(建安城)을 치고 평양성(平壤城)을 향하여 진격한다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장손무기나 이세적의 생각이 같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고구려 건안성(옛 평곽성)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성일까?

그런데 필자는 지금 역사학자들이 고대 요동(遼東)의 위치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대륙 상고사와 고대사의 역사 강역을 제대로 찾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금의 북경(北京) 지역을 말하는 것임에도,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을 요동(遼東)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 빨리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야 우리의 대륙 옛 강역이었던 진짜 요동, 진짜 졸본, 진짜 국내성, 진짜 환도성과 안시성, 진짜 평곽과 건안성, 진짜 왕검성과 평양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 필자주 : 옛 고구려의 도읍 환도성이었다)은 고대 요동군의 동북쪽 가까이에 위치했던 성으로서 지금의 북경 동북쪽 회유현 발해진 일원으로 비정되고, 국내성은 연경현 영녕진으로 밝혀졌고, 졸본은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이었으며, 고구려 서쪽 변경의 요충인 신성(新城)은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현에 있는 선화고성으로 비정된다. 그리고 옛 고조선의 왕검성이었고, 낙랑군의 치소였으며,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은 피서산장이 있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承德市)로 밝혀졌다. 그리고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압록강(鴨淥江)은 백하(白河)로서 일반적으로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을 말하고, 살수(薩水)는 지금의 고북구(古北口)를 지나는 조하(潮河), 패수(浿水)는 난하(灤河)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때 당 태종은 당시 요동(遼東)이었던 지금의 북경(北京)에서 하북성 승덕시(承德市)에 위치한 당시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平壤城)을 향하여 진군하려 했었기 때문에 그 중간에 위치해 있던 안시성(安市城, 필자주 : 옛 환도성이다)과 건안성(建安城, 필자주 : 옛 평곽성이다) 등을 함락시키며 진군하려 했었으나, 안시성(安市城)에서 막혀 압록강(鴨淥江)도 건너보지 못하고 군사를 되돌려야만 했고,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으로 돌아간 후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고 유언하고 죽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구려 건안성(建安城, 옛 평곽성), 고대의 요동(遼東)이었던 지금의 북경에서 안시성(옛 환도성)이었던 회유현 발해진을 지나 옛 압록강이었던 지금의 밀운수고를 건너 동북쪽으로 향하여 옛 평양성이었던 하북성 승덕시까지 가는 길목 중간 요충지에 위치한 하북성 난평현(灤平縣) 부근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고, 옛날 고구려 장수왕이 연나라의 풍홍이 망명해오자 배치했던 평곽(平郭)도 바로 지금의 난평현 부근으로서 그 동쪽 지금의 소과영촌(燒鍋營村) 일원의 산성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현재의 요하(遼河)를 옛 요수(遼水)로 착각하고는 지금의 요하 동쪽에서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을 찾고 있었고, 건안성(建安城), 평곽성(平郭城)을 찾고 있었으니 어찌 찾아낼 수 있었으리오.

지금의 발해 북쪽은 우리 상고사, 고대사의 역사 강역이었고, 발해 동쪽 요동반도 일원은 고대의 왜국(倭國)이었다. 이것이 우리 고대사의 진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시라.

 

[: 하북성 승덕시 난평현 동쪽 소과영촌(燒鍋營村) 일원의 고구려 건안성(옛 평곽성) 추정지, 좌표 : 동경1172628초 북위405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