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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4. 8. 31. 17:09

윤여동설 신라 관산성(管山城)의 실제위치를 공개한다 최초공개

 

 

 

 

 

[관산성 실제 위치 확대사진 : 출입구가 마치 대롱처럼 길다고 하여 관산성(管山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좌표는 동경1191253초 북위411307초이다]

 

  백제와 신라가 온 국력을 기울여 피터지게 다투었고, 결국 신라가 차지함으로써 신라가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던 관산성(管山城)은 옛 우수주(우두주, 춘주, 춘천)였던 지금의 중국 요녕성 능원(凌源) 서쪽 대서산(大西山)의 옛 성터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15(A.D.554)조에는, “백제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쳤다. 군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이를 맞아 싸우다가 불리하여 신주(新州)군주 김무력이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교전하게 되었는데, 그의 비장인 삼년산군 고간도도가 급히 몰아쳐 백제왕을 죽였다. 이때에야 모든 군사들이 이긴 틈을 타서 싸워 크게 이기고 백제의 좌평 4사람과 사졸 29,600명을 목 베니 말 한 필도 돌아가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32(A.D.554)조에는, “가을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려고 친히 보,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이르렀더니 신라의 복병이 튀어나오므로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신라본기와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또 일본서기에는 성왕이 전선에서 고생하는 아들인 창(후일의 위덕왕)을 위문하기 위하여 가다가 신라 매복군에게 잡혀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하였는데,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바로 이 관산성 또는 관산성 부근에 위치한 구천에서 백제 성왕이 전사한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백제 성왕이 전사한 장소인 그 관산성이나 구천의 위치에 대하여 명확하게 밝힌 학자가 없는데, 이는 역사학자들이 (반도백제를 제외한) 고려로부터 그 이전은 발해 북쪽 대륙역사이고, 이성계의 이씨조선부터가 한반도 역사임을 깨달아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백제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도, 구천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