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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민중원에 조성된 민중왕릉(閔中王陵)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古崖居) 부근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많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4. 6. 29. 18:33

윤여동설 고구려 민중원에 조성된 민중왕릉(閔中王陵)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古崖居) 부근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많다 최초주장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민중왕 4(A.D.47) 조를 보면,

  “여름4월 왕이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을 하였다.

  가을7월 또 (민중원에서) 사냥을 하다가 석굴을 보고는 측근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여기에 장사지낼 것이며, 따로이 능묘를 만들지 말라하였다.

  5(A.D.48) 왕이 죽었다.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왕의 유언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민중왕(閔中王)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 4대 민중왕릉은 민중원(閔中原)이라는 곳의 석굴에 장사지냈음을 알게 한다.

 

☆ 고구려 왕릉조성지가 왕의 시호가 되는 첫 사례가 바로 이 민중왕릉이다.  

 

  그런데 이때 고구려의 도읍은 국내(國內)였다.

  고구려 2대 유리왕 22(A.D.3) 겨울 10월에 졸본(卒本)으로부터 국내(國內)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왕릉은 당시의 도읍이었던 국내(國內) 부근에 조성했다고 보아야 하고, 따라서 민중원(閔中原)이라는 곳도 국내 부근에 위치한 벌판일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國內)는 지금 중국 북경시 연경현(延慶縣) 영녕진(永寧鎭) 일원으로 밝혀졌으므로 석굴이 있었다는 민중원(閔中原)도 연경현(延慶縣) 부근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바로 그 연경현에 선사인들이 살았다고 하는 고애거(古崖居)”라는 석굴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고구려 민중왕이 지금의 연경 고애거 부근의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곳에 옛사람들이 만든 석굴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왕의 능묘를 하나 만들려면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하고,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을 알고 있던 민중왕은 그것이 국력의 낭비이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이라 판단하고는, 석굴에 장사지내면 아주 간단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측근들에게 자신이 죽거든 그곳 민중원 석굴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을 것이다.

 

고애거(古崖居)가 정말로 옛날 선사인들이 그 바위굴 속에서 혈거생활을 했는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왜냐하면 고구려 초기에 그 석굴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신을 안치하는 석굴묘였을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민중왕도 자신이 죽거든 따로 능묘를 만들 필요없이 그곳 석굴에 간단하게 장사 지내달라는 말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 오지에 사는 소수 민족 중에는 높은 절벽의 바위굴 속에 시신을 장사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고구려 왕실이나 신하들로서는 지금까지 제왕을 석굴에 장사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왕설래 했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왕의 유언이니 유언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느 사람은 어찌 왕을 석굴에 장사지낼 수 있느냐고도 했을 것인데, 결국 고구려 왕실과 신하들은 왕의 유언에 따라 시행하는게 옳다고 판단하고는 민중원 석굴에 장사 지내게 된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구려 왕실에서는 아무리 민중왕의 유언이 그렇다 해도 기존에 그곳에 있던 자그맣고 허름하며, 무너지고 깨어진 석굴에 왕의 시신을 장사지낼 수는 없었을 것이고, 새로이 크게 석굴을 파고, 문양도 새기고 벽화도 아름답게 그려 왕릉으로서의 격에 어울리게 만든 후 그곳에 민중왕을 장사지냈을 것이고, 입구도 튼튼하게 밀봉했을 것이며, 그 왕릉 부근으로는 일반 백성들의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고구려 4대 민중왕릉은 지금 연경 고애거(古崖居) 부근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많고, 고애거 부근은 고구려 민중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채로 온전하게 발견될 가능성도 있는 곳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북경 팔달령장성 너머 연경(延慶)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었던 영녕고성(永寧古城)도 구경하시고, 용경협(龍慶峽) 입구에서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두곡이궁(豆谷離宮) 터를 둘러보시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고, 또 그 동쪽 두곡동원(豆谷東原)에 조성된 유리왕릉도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경 고애거에서는 고구려 민중왕릉(閔中王陵)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고구려 민중왕의 능을 찾아 첫 발견자로서 우리 역사에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