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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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은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 아니고, 그곳의 고분벽화는 고구려고분벽화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4. 9. 7. 05:45

윤여동설 한반도 북쪽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은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 아니고, 그곳의 고분벽화는 고구려고분벽화가 아니다 - 최초주장

 

 

 

  지금 반도식민사관론자들은 한반도 북쪽 압록강변에 위치한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을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이라 주장하며, 고구려 졸본(卒本), 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관련 사서의 기록들을 모두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 일대에 대입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요수(遼水)인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동쪽 북경(北京) 일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고대사의 진실이었다.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鴨綠江)은 북경 북쪽 백하(白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지금의 밀운수고 일원을 지칭하는 것이고, 살수(薩水)는 조하(潮河), 패수(浿水)는 난하(灤河) 중상류를 말하는 것이고, 난하 하류는 백제의 백강(白江, 백촌강이라고도 한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발해 동북쪽 지금의 요하(遼河)를 옛 사서 기록 속의 요수(遼水)로 잘못 인식하고는, 모든 사서 속 요동(遼東) 관련 기록들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요서(遼西) 관련 기록들은 지금의 요하 서쪽에 대입하여 해석하고 있으니, 우리 고대사가 제대로 해석될 리 없고, 옛 역사의 현장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밝혀본 바에 따르면, 고조선(古朝鮮)의 왕검성(王儉城)은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承德市)의 피서산장(열하행궁) 자리였다.

  그리하여 한() 무제 때 육군인 순체는 고대의 요동(遼東)인 지금의 북경에서 군사들을 출발시켜 왕검성(王儉城)인 하북성 승덕시로 향하였던 것이고, 수군인 순체는 산동반도에서 북서쪽으로 발해(渤海)를 가로질러 건너 패수(浿水, 지금의 난하)를 타고 올라가 왕검성(王儉城)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 역시 하북성 승덕시로서 수 양제 때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북경 서남쪽 하북성 탁군(涿郡, 지금의 탁주시)에서 군사들을 출발시켰고, 요동(遼東, 지금의 북경)을 지나 평양성(平壤城, 하북성 승덕시)까지 갔다가 철군할 때 살수(薩水, 지금의 조하 고북구 부근)에서 박살났고, 결국에는 수나라가 망해 버렸다.

  당 태종 때 당나라 역시 고구려 평양성을 목표로 침공할 때 하북성 정주(定州)에서 군사들을 출발시켰고, 고생고생 끝에 요택(遼澤)을 지나고 요수(遼水, 지금의 영정하)를 건너 요동성(遼東城, 지금의 북경)까지는 함락 시켰으나 안시성(安市城, 지금의 북경시 회유)에서 막혀 압록강(鴨淥江, 지금의 밀운수고)도 건너지 못하고 철군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서의 전쟁 기록들을 필자의 주장에 따라 대입하여 해석해 보면 필자의 주장이 옳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사실이 이러하다면,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이 지금의 길림성 집안(集安, 輯安)일 리 만무하고, 졸본, 환도성도 그 부근일 리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고구려 호태왕릉(광개토왕릉), 장수왕릉 등이라고 하고 있는 집안(集安, 輯安) 부근의 고총들은 고구려 왕릉일 리 없고, 오회분 등 고분벽화 역시 고구려고분벽화가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고대사를 너무도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호태왕비가 왜 지금의 집안(集安)에 세워져 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그 비석을 다른 곳에서 옮겨오지 않았다면, 고구려와는 전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 왜 호태왕비가 세워져 있는 것일까?

 

  진짜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은 고대의 요동이었던 지금의 북경 북쪽 연경현 영녕진(永寧鎭)을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역시 연경현의 북쪽에 위치한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을 말하는 것이며,

  환도성(丸都城), 안시성(安市城)은 북경시 회유(懷柔)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구려왕들에게 주어진 작위에 한결같이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이라 했던 것이고, 고구려의 건국지가 현토군과의 경계지역이라 했던 것이다.

  백제(百濟 : 온조백제, 대륙백제) 역시 고대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한 지금의 하북성 당산, 진황도 부근이었고,

  신라(新羅)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일원이었으며,

  가야(伽倻)는 요녕성 호로도시(葫蘆島市) 일원이었다.

  그리고 말썽 많은 임나(任那)는 하북성 진황도시(秦皇島市)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발해 동쪽 요동반도(遼東半島)는 요동이 아니라 고대의 왜국(倭國)이었고, 부근에 여국(女國), 모인국(毛人國), 다파나국(多婆那國, 용성국이라고도 한다)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 고대사의 참 진실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해석하는 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이다.

  우리는 모두 오랜 세월동안 속아온 것이다.

  여러분도 속았고, 필자도 속았던 것인데, 필자는 속은 것을 먼저 깨달은 것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줘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고대사에 관하여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테니 그것이 진짜 문제인 것이고, 세뇌가 이렇듯 무서운 것이다.

  우리 역사연구자들에게는 지금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이 매우 필요한 때다.

  눈을 크게 뜨고 우리 대륙 고대사의 진실과 그 역사의 현장들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루 빨리 우리 역사 윤여동설이 우리 대륙 고대사의 진실임을 깨달아야 우리의 고대사가 바르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