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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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발해국(渤海國)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와 거란(요) 동경 녹주압록군절도(淥州鴨淥軍節度)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4. 1. 20. 09:48

윤여동설 발해국(渤海國)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와 거란() 동경 녹주압록군절도(淥州鴨淥軍節度)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이 확실 최초주장

 

 

 

[발해국 서경압록부와 거란의 녹주압록군절도 신주로 비정되는 지금의 고북수진. 이곳은 고조선의 도읍 백악산아사달로 비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신당서 발해전(渤海國傳)을 보면, 발해5(渤海國五京)의 명칭과 위치 그리고 관할 주()에 대하여,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숙신의 옛 땅(肅愼故地)으로 상경(上京)을 삼고 용천부(龍泉府)라 하니,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 3주를 다스리고,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그 남쪽을 중경(中京)으로 삼고 현덕부(顯德府)라 하니,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 6주를 다스리고,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예맥(동예의 오기)의 옛 땅(濊故地)으로 동경(東京)을 삼고 용원부(龍原府) 또는 책성부(柵城府)라고 하였는데,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 4주를 다스리고,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옥저의 옛 땅(沃沮故地)으로 남경(南京)을 삼고 남해부(南海府)라 하니,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 3주를 다스리고,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 고구려 옛 땅(高句麗故地)으로 서경(西京)을 삼고 압록부(鴨淥府)라 하니,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豐州), 정주(正州) 4주를 다스린다................

  용원(東京龍原府)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도(日本道, 일본 가는 길)이고,

  남해(南京南海府)는 신라도(新羅道, 신라 가는 길)이다.

  압록(西京鴨淥府)은 조공도(朝貢道, 중국에 조공 가는 길)이고,

  장령(長嶺府)은 영주도(營州道, 영주 가는 길)이며,

  부여[東扶 餘府]는 거란도(契丹道, 거란 가는 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위치를 충분히 찾을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역사학자들이 그 위치를 찾지 못했던 것은, 전혀 엉뚱한 곳을 발해국의 강역으로 잘못 알고, 그곳에서 5경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발해국의 원래 강역은 한반도 동북쪽이 아니라 지금의 발해(渤海) 북쪽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를 중심으로 하는 대흥안령 부근이기 때문이고, 서경압록부를 설치한 고구려 옛 땅(高句麗故地)이라는 곳도 지금의 북경 북쪽, 동북쪽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고대의 요동(遼東)이 지금의 요하 동쪽이 아니라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에 위치했던 지금의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이고,[필자주 : 고대의 10리는 지금처럼 4km가 아니라 약 2.3km였다]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이 북경 북쪽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국내성(國內城)이 북경시 연경현 영녕진(永寧鎭), 환도성(丸都城)이 북경시 회유현 발해진(渤海鎭), 평양성(平壤城)이 하북성 승덕시(承德市)로 밝혀졌으며,

  요수(遼水)가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 압록강(鴨淥江, 鴨綠江)은 백하(白河)로서 일반적으로 백하(白河)와 조하(潮河)가 합류되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 살수(薩水)가 고북구를 지나는 조하(潮河), 패수(浿水)가 난하(灤河) 중류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해의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는 당연히 옛 압록강(鴨淥江, 鴨綠江)이 흐르고 있던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에서 찾아야 했던 것인데, 그를 알지 못하고 한반도 북쪽 압록강 부근에서 찾으려 했으니 그곳에서 발해국 서경압록부의 편린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북경(北京) 동북쪽 사마대장성(司馬臺長城)이 지나는 고북수진(古北水鎭), 신성자진(新城子鎭) 부근이 바로 발해국의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로 비정되는 곳이고, 이 부근이 바로 신주(神州)”인 것이다.

 

  이는 요사(遼史) 동경도 녹주압록군절도(渌州鴨渌軍節度) 조에, “녹주압록군절도는 본래 고구려고국(本高句麗故國)인데, 발해에서는 서경압록부(西京鴨渌府)라고 불렀다. 성의 높이는 3장이고 광륜(둘레)20리이다. 신주 환주, 풍주, 정주 4개주를 다스린다(渌州鴨渌軍節度 本高()麗故國 渤海號西京鴨渌府 城高三丈廣輪二十里 都督 神, , , 正 四州事)”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발해전에는 고구려 옛 땅(高句麗故地)으로 서경(西京)을 삼고 압록부(鴨淥府)라 하였다고 하였는데, 요사에는 녹주압록군절도(渌州鴨渌軍節度)는 본래 고구려고국(本高句麗故國)인데, 발해에서는 서경압록부(西京鴨渌府)라고 불렀다고 하였으니 분명 같은 곳을 말하는 듯한데, 과연 故地(고지)”故國(고국)”이 같은 의미인지는 의문스럽다. 어찌되었든 그 땅이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것 만은 확실한데, 이랬기 때문에 거란 소손녕과 고려의 서희가 강동6주를 놓고 담판할 때 서로 자기 나라가 고구려 땅을 더 많이 차지했고,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환주(桓州)는 고구려의 중도성이다........(녹주압록군절도의) 서남쪽 200리에 있다(桓州 高()麗中都城 故縣三桓都神鄕淇水皆廢 高()麗王於此剏立宮闕 國人謂之新國 五世孫釗晉康帝建元初爲慕容所敗宮室焚蕩 戶七百 隸渌州 在西南二百里)” 라고 기록되어 있어 환주(桓州)가 곧 환도(丸都)임을 알 수 있고,

  “풍주(豐州)는 발해에서 반안군을 설치했다........(녹주압록군절도의) 동북210리에 있다.(豊州 渤海置盤安郡 …… 隷淥州 在東北二百一十里)”

  “정주(正州)는 본래 비류왕의 옛땅이다.....(녹주압록군절도의) 서북쪽 380리에 있다)(正州 本沸流王故地 國爲公孫康所倂 渤海置沸流郡 有沸流水 …… 隷淥州 在西北三百八十里)”라고 기록되어 있어 옛 송양의 비류국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송양의 비류국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용관진(龍關鎭)으로,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북경시 회유현 발해진(渤海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정주(正州)의 동남쪽 380리 지점이며, 환주(桓州, 丸都城)의 동북쪽 200리 지점에 위치했던 발해의 서경압록부와 요나라 때의 녹주압록군절도는 바로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수진(古北水鎭), 신성자진(新城子鎭) 부근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발해의 서경압록부는 발해국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이 세운 나라 정안국(定安國)의 도읍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역사 속 수수께끼의 장소였던 발해의 서경압록부거란의 녹주압록군절도그리고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豐州), 정주(正州)의 위치를 찾은 것인데, 이를 과연 몇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을런지............

  왜냐하면 반도식민사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눈을 돌려 고대의 요동(遼東)이었던 지금의 북경 부근 대륙을 바라보아야 우리 상고사와 삼국사기 기록 속 고대사의 미스테리를 풀 수 있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한 올바른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역사 강역은 절대 찾아낼 수 없다.

 

지금까지 그 위치가 아리송했던 풍주(豐州)가 거란 녹주압록군절도의  동북쪽 210리에 위치했다고 하였으니, 혹시 옛 광개토왕, 장수왕 때의 "북풍(北豐)"의 남쪽 부근으로서 지금의 하북성 난평현 대둔진(大屯鎭), 장백만진(張百灣鎭) 부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고조선의 세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도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霧靈山, 해발 2,116m) 부근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고조선은 건국지 우수하 벌판의 아사달(阿斯達)에서 패수 동쪽의 평양왕검성(平壤王劍城)으로, 다시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도읍을 옮겼고, 결국에는 첫 도읍 아사달로 돌아가서 소멸하고, 그 땅이 나누어져 열국시대가 되고 말았는데,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대륙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