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대 평양 대동강(大同江)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무열하(武烈河) - 최초주장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 평양성이었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의 지형과 습수, 선수, 열수의 위치]
사기 권115 조선열전 제55를 보면,
“朝鮮有濕水,洌水,仙水三水合爲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조선에는 습수, 열수, 선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하여 열수가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도 이 세 강이 과연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설왕설래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세 강의 위치를 올바르게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세 강이 합류되는 지점 부근에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 필자주 : 중국 사람들은 왕험성(王險城)이라 불렀다]이 위치하고 있었고, 전한 낙랑군(樂浪郡)의 치소였던 조선현(朝鮮縣)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 세 강 즉 습수(濕水), 선수(仙水), 열수(洌水, 列水라고도 한다)를 정확히 찾는 것이 우리 역사 강역의 중심 강역을 찾는 지름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한반도 북한 평양을 고조선의 왕검성, 한사군의 낙랑군 치소 조선현,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으로 이해하고는
지금의 요하(遼河)를 고대의 요수(遼水)라 하고,
지금의 한반도 북쪽 압록강(鴨綠江)을 고대의 압록강(鴨淥江)이라 하며,
지금 한반도 청천강(淸川江)을 고대의 살수(薩水)라 하고,
지금 한반도 대동강(大同江)을 고대의 패수(浿水)라 하기도 하는데, 모두가 틀렸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요하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정하의 동쪽 북경(北京)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한사군의 낙랑군(樂浪郡)은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서,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은 바로 고조선의 왕검성이었고, 고구려의 평양성이었으며, 고려의 서경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후한서에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에 위치했었다는 고대의 요동군이 바로 지금의 북경 일원이고,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설치했던 낙랑군이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원이었고, 이곳이 곧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이었다면,
우리의 고대사 전부를 모두 다시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는 동북아 역사학계에 있어 천지개벽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고 해석해야 진짜 역사이지, 입장이 난처하다고 하여 적당히 얼버무려 버리는 역사는 진짜 역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사서들에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고구려와 백제는 지금의 발해(渤海) 북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고,
백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신라와 신라의 남쪽에 위치했었다는 가야 그리고 신라의 북쪽에 위치했었다는 동예와 맥, 예맥의 서북쪽에 위치했던 옥저와 옥저의 북쪽에 위치했던 말갈(옛 숙신, 읍루, 물길, 여진), 동부여, 거란 등 우리 고대사와 연관되어 언급되는 모든 나라들이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습수(濕水), 선수(仙水), 열수(洌水, 列水) 역시 지금의 발해 북쪽 대륙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고,
환국(桓國), 단국(檀國), 고조선(古朝鮮)도, 한사군(漢四郡)도, 삼한(三韓)도, 삼국(三國)과 가야(伽倻)도,
그리고 발해국(渤海國)과 고려(高麗)도 모두 발해 북쪽 대륙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며, 심지어 왜국(倭國, 일본)도 발해 연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습수(濕水)는 하북성 승덕시 서쪽을 흐르는 이손하(伊遜河),
선수(仙水)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동쪽을 지나는 무열하(武烈河),
열수(洌水, 列水라고도 한다)는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의 피서산장이 바로 고조선의 왕검성터였고, 고구려 평양성터였으며, 고려의 서경이었다는 말이 되고, 지금 피서산장 동쪽으로 무열하(武烈河)가 흘러 난하(灤河)에 합류되는데, 고려의 서경이었던 평양성의 동쪽 바로 아래로 대동강(大同江)이 흘렀다고 하니 그렇다면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시내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무열하(武烈河)가 곧 고려 때의 대동강(大同江)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옛 열수(洌水, 列水)였고 패수(浿水)였던 난하와
옛 선수(仙水)였으며 대동강(大同江)이었던 지금의 무열하(武烈河)는 엄연히 다른 강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옛 열수(列水, 洌水)와 패수(浿水)는 지금의 발해 북쪽 난하(灤河)를 말하는 것이고,
대동강(大同江)은 옛 평양(平壤)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피서산장 동쪽을 지나는 무열하(武烈河)를 말하는 것이며,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은 청나라 때의 피서산장이 있던 바로 그곳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였던 것이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의 중심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의 현장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고,
우리 고대사는 영영 미로를 헤매게 될 것이며 가설의 역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사고의 폭을 넓혀 발해 북쪽 대륙을 바라보라.
그곳에 우리의 옛 땅이 있으니.............
[참고]
전한 낙랑군(樂浪郡)과 패수(浿水)의 위치

후한서 지리지 제23 군국5 낙랑군 조를 보면,
“낙랑군은 (전한) 무제 때 설치했는데, 낙양 동북 5천리에 위치한다. 18개성으로서 호구수는 61,492호이고, 인구는 257,050명이다.
조선(朝鮮), 남감(邯 ),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占蟬),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冥), 열구(列口)[곽박 왈,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열(列)은 물의 이름이라 했다. 열수(列水)는 요동(遼東)에 있다],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누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낙도(樂都)“라고 기록되어 있다.
패수(浿水)는 옛 왕검성, 평양성이었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지나는 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수경(水經)에,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於臨浿縣 東入於海)"라고 기록하고 있어 지금 한반도의 대동강과는 물길이 반대로 흐르기 때문에 한반도 북한 평양을 지나는 대동강을 옛 기록 속의 패수(浿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중국 하북성 진황도 서쪽 갈석산 부근을 지나 발해로 흘러드는 난하(灤河 : 열수이다)는 내몽골 섬전하(閃電河)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승덕시 서쪽에서 이손하(伊遜河 : 습수이다)를 합류하고, 승덕시의 남쪽을 지나면서 또 무열하(武烈河 : 선수이다)를 합류한 후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승덕현에서 노우하(老牛河)를 합류하고, 대장자에서 유하(柳河)를 합류한 후 계속 흐르다가 폭하(瀑河)를 합류한 후 반가구수고로 들어가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다시 남쪽으로 대흑정수고를 지나고 천서를 지나 장하(長河)를 합류하면서 동쪽으로 잠깐 흐른다. 그리고 다시 청하(淸河)와 합류해 방향을 동남쪽으로 돌려 천안을 지난 후 노룡에서 청룡하(靑龍河)와 합류한 후 서남쪽으로 잠깐 흐르다가 낙정 동쪽에서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서 수경에서 말하고 있는 패수(浿水)에 대한 기록은 바로 이 강 즉 지금의 난하 강물의 흐름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