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徐羅伐) 서쪽 서악리(西岳里, 西嶽里)에 조성된 신라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태종무열왕릉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를 보면,
23대 법흥왕(法興王)과 24대 진흥왕(眞興王)은 “애공사(哀公寺) 북봉(北峯)에 장사 지냈다”고 하였고,
25대 진지왕(眞智王)과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은 영경사북쪽(永敬寺北)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능묘조를 보면,
“법흥왕릉, 태종무열왕릉, 진흥왕릉이 함께 서악리(西岳里, 西嶽里)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이들 왕릉들은 모두 서악리 일원에 있던 애공사(哀公寺)와 영경사(永敬寺)라는 절 부근에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주부 서쪽 서악리에 김유신묘(金庾信墓)가 있다고 하였고, 김인문묘는 서라벌의 서원(西原 : 서쪽벌판)에 조성했다고 하였으며, 김양묘는 태종왕릉에 배장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신라의 서악과 서악리를 찾으면, 이들 신라 왕릉들의 조성위치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북보타산 풍경]

[북보타사 관음보살상인데,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조각한 것을 보면, 혹시 신라에서 선도산 성모로 추앙받았던 신라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사소태후(裟蘇太后, 婆蘇太后라고도 한다) 설화가 전해져 그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라의 서악(西嶽)과 서악리(西岳里, 西嶽里)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선도산(仙桃山)이 경주부 서쪽 7리에 있는데, 신라에서 서악(西嶽)이라 부른다”고 하였으므로 신라의 천년 도읍지 서라벌의 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선도산이 곧 신라의 서악(西嶽, 西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상북도 경주(慶州)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금주시의 서쪽 방향에 위치한 산인 지금 금주시(錦州市)풍경명승구로 지정되어 있는 북보타산(北普陀山)을 신라의 서악(西嶽, 西岳)이라 할 수 있다.
☆ 지금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북보타산에는, 북보타사(北普陀寺)라는 절도 있어 옛 신라의 애공사나 영경사의 흔적이 아닌가 싶은데, 지금 중국에서는 그 부근이 옛 신라 중흥기의 왕릉원이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역사를 지우기 위해서 그랬는지 그 부근에 근래에 공원묘지를 대규모로 조성해 놓았다.
그렇다면 서악리(西岳里,西嶽里)는 또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서악리(西岳里,西嶽里)는 신라 서라벌 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악(선도산)의 산 동쪽 동네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서악리(西岳里,西嶽里)에 조성된 신라왕릉은,
23대 법흥왕릉 : 애공사 북봉(哀公寺北峰)
24대 진흥왕릉 : 애공사 북봉(哀公寺北峰)
25대 진지왕릉 : 영경사 북쪽(永敬寺北)[삼국유사에는 애공사 북쪽]
29대 태종무열왕릉 : 영경사 북쪽(永敬寺北)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애공사(哀公寺)와 영경사(永敬寺)는 서로 가까이 인접해 있던 사찰이었던 듯하고, 신라왕릉들은 동쪽의 서라벌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성했을 것이다.
서악리 신라 김씨왕릉원의 대강의 위치 좌표는 동경121도04분19초 북위41도09분55초 일원으로 비정된다.
위 그림을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