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똥을 많이 싸서 황후가 된 신라 지증왕비 연제부인의 고향 서라벌 모량부(무산대수촌)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 지증왕비 연제부인이 살던 곳은 서라벌의 모량부(무산대수촌)였다고 하는데, 서라벌은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로 밝혀졌고, 모량부는 서라벌의 서쪽에 위치한 동네였으므로 지금의 금주시(錦州市) 서쪽 북보타산 부근 동네를 말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 제1 지절로왕(智哲老王) 조를 보면,
신라 제22대 지철로왕(智哲老王)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또는 지도로(智度路)이고, 시호는 지증(智證)이다.
시호(諡號)는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말로 왕을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한 것도 이 왕부터 시작하였다.
왕은 영원(永元)2년 경진(A.D.500)에 즉위하였다.[혹은 신사년이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영원3년(A.D.501)이 된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척5촌[34.5cm]이나 되어 배필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관리들을 삼도(三道)로 보내어 배필을 찾아보도록 하였다.
관리들이 모량부(牟梁部)의 동로수(冬老樹)라는 나무 밑에 이르렀을 때, 개 두 마리가 북만 한 똥 한 덩어리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 동네 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말해주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여기서 빨래하다가 숲속에 눈 것입니다.”하였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 여자의 신장이 7척5촌[172.5cm]이나 되었다.
이 일을 갖추어 왕께 보고하자 왕은 가마를 보내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황후로 봉했고 여러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였다.
[第二十二智哲老王姓金氏名智大路又智度路諡曰智證諡號始于此又鄕稱王爲麻立干者自此王始王以永元二年庚辰卽位[或云辛巳則三年也]
王陰長一尺五寸難於嘉耦發使三道求之使至牟梁部冬老樹下見二狗嚙一屎塊如鼓大爭嚙其兩端訪於里人有一小女告云此部相公之女子洗澣于此隱林而所遺也尋其家儉之身長七尺五寸具事奏聞王遣車邀入宮中封爲皇后群臣皆賀] 라고 기록되어 있어, 피식 웃음짓게 하는데, 오늘은 신라 지증왕비 연제부인이 살던 곳을 찾아 보기로 한다.
진한6부는,
동촌인 급량부(及梁部)로서 원래의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중흥부]
동남촌인 본피부(本彼部)로서 원래의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통선부]
남촌인 사량부(沙梁部)로서 원래의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남산부]
서촌인 모량부(牟梁部)로서 원래의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장복부]
북촌인 한기부(漢岐部)로서 원래의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가덕부]
동북촌인 습비부(習比部)로서 원래의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임천부]를
말하는 것인데,
모량부(牟梁部)에서 상공의 딸을 찾아 왕에게 보고했다고 하였는데, 모량부는 서라벌의 서쪽 동네인 무산대수촌을 말하는 것이므로, 연제부인이 원래 살던 곳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의 서쪽인 북보타산(北寶陀山) 부근 동네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