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 여근곡(女根谷)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요녕성 조양시 조양현 양산진(羊山鎭) 칠도하자(七道河子), 좌표 : 동경120도25분33초 북위41도12분14초]
삼국사기 신라본기 27대 선덕여왕 5년(A.D.636) 조를 보면, “여름5월 두꺼비들이 대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두꺼비의 성난 눈은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는 서남쪽 변경에 역시 옥문곡(玉門谷)이라는 곳이 있다하니 반드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골짜기에 잠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하고는 곧 장군 알천과 필탄 등으로 하여금 가서 뒤지게 하였더니 과연 백제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이를 엄습하여 모조리 쳐 죽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유사 기이제1 선덕여왕 지기삼사(知幾三事) 조를 보면, “둘째는 영묘사 옥문지에 겨울인데도 두꺼비들이 많이 모여들어 3, 4일 동안 울어댄 일이 있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은 급히 각간 알천, 필탄 등에게 명하여 정병 2천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쪽 변경으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디인지 찾아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엄습해서 모두 죽이라고 하였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각 군사 1천명씩을 거느리고 서쪽 변경에 가보니 과연 부산(富山)아래 여근곡이 있었고, 그곳에 백제군사 5백명이 와서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백제 장군 우소란 자가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었으므로 포위하고 활로 쏘아 죽였다.
또 뒤에 백제군사 천2백명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모두 쳐서 죽여 한사람도 남기지 않았다“라고 삼국사기보다 좀 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 선덕여왕 지기삼사란, 당나라에서 모란그림과 모란씨를 보내왔는데, 그림을 보고는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고, 옥문지의 두꺼비를 보고는 옥문곡에 백제군사가 침입한 것을 미리 알았으며, 자신이 죽을 날을 정확히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었다는 신라 서라벌 서쪽의 옥문곡(玉門谷) 또는 여근곡(女根谷)이라는 곳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산천 조에는 여근곡이 경주부의 서쪽 41리에 위치했다고 하였다.
지금의 한반도 경주시 서쪽에 위치한 건천읍 오봉산 여근곡이 신라 선덕여왕이 말한 그 여근곡이 맞을까?
아니다.
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천년역사를 이은 나라였고, 지금의 금주시(錦州市)가 옛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이었다.
따라서 신라 선덕여왕이 말한 여근곡(옥문곡이라고도 불렀던 듯하다)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의 서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위 그림을 보면,
여근곡 추정지 지형은, 소릉하 강물이 심하게 구부러져 흐르며 마치 남자의 성기 비슷한 지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옛 사람들이 그 지형을 보고는 재치스럽게 여근곡(옥문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