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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3백리 장성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7. 6. 18. 23:37

윤여동설 - 신라 3백리 장성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장성(長城)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한반도에서 장성의 흔적은 어느 한곳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후대인 고려시대에도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역시 한반도에서는 장성의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한반도에서는 역사서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장성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41대 헌덕왕 18(A.D.826) 조를 보면,

   "가을7월 우잠태수 백영을 시켜 한산(漢山) 북쪽의 여러 주와 군 사람들 1만을 징발하여 패강(浿江 : 패수)에 장성 3백리를 쌓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패강(패수)은 한반도의 대동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경 동쪽을 흐르는 지금의 난하를 말하는 것이고, 북한산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을 말하는 것이며, 한산(漢山)은 그 남쪽 오봉산(五鳳山)을 말하는 것이다.

  앞서 한산이나 북한산은 옛 백제 땅이었고, 백제는 건국시조인 온조왕 때부터 그 부근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또 진사왕 때인 386년에는 청목령(靑木嶺)으로부터 팔곤성(八坤城)을 지나 서쪽으로 바다까지 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필자 주 : 자비령에 장성을 쌓은 듯하다]

  지금의 난하 반가구수고 부근은 난공불락의 요새 관미성이 위치하고 있던 곳으로서 옛날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상호 공수의 요충이었다.

  그런데 후대 백제 땅을 신라가 병합했던 통일신라 헌덕왕 때 신라가 한산북쪽 사람들을 징발하여 패강(패수)3백리 장성을 쌓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지금의 난하에 장성을 쌓았다는 말로써 이때 신라는 440여년전 백제 진사왕이 청목령으로부터 서쪽으로 바다까지 쌓았던 백제 5백리장성의 일부분을 대대적으로 보수했거나 국경선을 약간 남쪽으로 내려 지금의 난하 반가구수고를 가로지르는 성을 새로이 쌓았을 것이다.

  이때 신라의 헌덕왕은 패수(지금의 난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장성을 쌓아 북쪽의 발해말갈이 난하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침공로를 차단함으로써 식량공급원 역할을 하던 평원지역인 옛 백제 땅을 지키고자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