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신라 40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금관총이 신라 어느 왕의 왕릉이었을 것이라고 말들하고 있지만 신라 56명의 왕 중에 이사지왕이라는 왕은 없었다. 그렇다면 금관총은 신라의 왕릉이 아니라 이사지라는 왕의 능이라는 말이 된다. 필자는 일찍이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왜냐하면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주에 있는 옛 고총들은 과연 누구의 무덤일까? 필자가 보기에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의 신(新)나라가 멸망한 후 쫓겨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세운 흉노족왕조의 왕릉들일 것이고, 이사지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 중 이사지왕이라..

카테고리 없음 2013.07.05

윤여동설 - 황룡사 장육존상이 조선 중기까지 존재하고 있었다고라?

윤여동설 - 황룡사 장육존상이 조선 중기까지 존재하고 있었다고라?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 소원을 빌면 반드시 들어준다고 하는 심우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한반도 경주 (전) 황룡사지 목탑지 발굴 당시 현장모습] [한반도 경주 (전) 황룡사지장육삼존불 좌대석]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황룡사(皇龍寺) 장육 편을 보면, "신라 24대 진흥왕 재위 14년 계유(A.D.553) 2월에 용궁 남쪽에 궁궐을 지으려 하였는데,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나자 이를 고쳐서 절을 짓고 이름을 황룡사(黃龍寺)라 하고, 기축년(A.D.569)에 이르러 담장을 쌓아 드디어 17년 만에 완공했다. ☆ 황룡사(皇龍寺)라고도 하고, 황룡사(黃龍寺)라고도 하였으니 어떤 것이 원래의 이름인지 헷갈린다. 혹시 처음에는..

카테고리 없음 2012.03.18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 - 최초주장   [위 : 경주오릉, 이 고총들을 신라 혁거세왕릉, 알영왕후릉, 남해왕릉, 유리왕릉, 파사왕릉이라고 비정하고 있으나 이는 신라 왕릉들이 아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한반도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 중 제대로 명명된 곳이 7기 뿐”이라고 그의 유저 “신라왕릉 연구”에서 주장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으나, 사실 신라왕릉들이 잘못 비정되었다는 주장은 조선시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 능묘 조를 보면,   “혁거세릉,미추왕릉,법흥왕릉,태종무열왕릉,진흥왕릉,선덕왕릉,효소왕릉,성덕왕릉,헌덕왕릉,흥덕왕릉,김유신묘,김인문묘,김양묘”에 대한 조성위치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

카테고리 없음 2012.03.03

윤여동설 - 신라 천주(泉州)는 지금의 요녕성 수중(綏中)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천주(泉州)는 지금의 요녕성 수중(綏中) 부근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54대 경명왕 8년(A.D.924) 조를 보면, “정월에 사신을 후당(後唐)에 보내 조공하였는데,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 왕봉규(王逢規)도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55대 경애왕 4년(A.D.927) 조를 보면, “3월 후당(後唐) 명종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王逢規)를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삼았다. 4월 지강주사(知康州事 : 權知康州事의 오기인듯) 왕봉규가 임언을 사신으로 후당에 보내 조공을 바치니 명종이 중흥전에서 불러보고 물건을 하사하였다. 강주(康州)소관의 돌산(突山) 등 4개 고을이 태조(고려태조 왕건)에게로 귀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천주..

카테고리 없음 2012.01.28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8년(B.C.1) 조를 보면, “11월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까지 갔다가 큰 눈을 만나 돌아오고 말았다” 라고 하면서 우리 삼국역사서에 우두산성(우수산성)이 등장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춘천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맥국인데 신라의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牛首州 : 首는 頭로도 쓴다)로 만들고 군주를 두었다. 문무왕 13년에는 수약주(水若州 : 오근내라고도 하고 수차약이라고도 한다)라고 불렀고, 경덕왕이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에 춘주(春州)로 만들었고..............조선 태종 13년에 지..

카테고리 없음 2011.12.10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첨성대는 죽은 자의 환생을 염원하던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라 죽은 자의 환생을 염원하던 곳이었다?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경주에 있는 첨성대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자랑한다.   이는 삼국유사 기이 제1 선덕여왕 지기삼사 조의 맨 끝에 "이 왕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에 관한 기록은 일체 보이지 않고,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신라 첨성대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지금 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사각 기단 위에 원형으로 돌을 돌려 쌓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도록 쌓고, 맨 위에는 직선의 돌을 우물정자(井) 형태로 조립해 놓아 안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첨성대의 중간에는 출입..

카테고리 없음 2009.09.10

윤여동설논쟁 - 이성계는 고려 왕씨들을 정말로 바다에 빠뜨려 죽였을까?

윤여동설논쟁 - 이성계는 고려 왕씨들을 정말로 바다에 빠뜨려 죽였을까?    대동기문을 보면,   “왕씨는 고려 태조의 자손이다.  우리 태조(이성계)가 즉위한 후에 왕씨들이 난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그들을 모두 한 섬 속에 가서 살도록 유인하자 여러 왕씨들은 다투어 배에 먼저 올랐다.  배가 중간쯤 이르렀을 때 헤엄 잘 치는 사람을 시켜서 물속에 숨어들게 하여 그 배 밑바닥을 뚫어 물이 스며들게 하여 모두 빠져 죽게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간에 전해지기를 이후 왕씨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왕(王)자를 변형시켜 옥(玉), 전(全), 전(田)씨 등으로 성씨를 바꾸었다는 말도 있어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옛날에 한 왕조가 멸망하고 새 왕조가 서게..

카테고리 없음 2009.08.31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우리의 옛 역사는 환인시대, 환웅시대를 지나며 홍산문화(요하문명)를 꽃피웠고, 고조선에 이르러 청동기문화를, 다시 한과 위만조선, 부여시대에 이르러 철기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부여는 다시 고구려가 되고, 고구려는 한사군 중 임둔군, 낙랑군, 구현토군(낙랑동부도위)과 요동군, 대방군을 흡수함으로써 대제국이 되었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발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발해는 다시 요·금·원·청·중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만조선은 다시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사군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고,  한은 다시 삼한(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마한에서 백제가,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다가 통일신라가 되..

카테고리 없음 2009.05.14

윤여동설 - 발해 북쪽 대륙고려와 한반도의 반도조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 북쪽 대륙고려와 한반도의 반도조선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발해 북쪽 대륙 하북성이 중심이었고, 이성계의 조선은 한반도가 중심이었다.    윤여동설에 의한 환인환국, 환웅단국으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 발해, 고려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라는 것이다.    환인환국의 중심강역은 하북성과 내몽골 적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로도산(七老圖山) 부근이고, 환웅단국의 중심강역은 칠로도산 동쪽 노로아호산(努魯兒虎山) 부근이며,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서 이때 고조선의 최대강역은 서쪽으로는 황하 북부 오르도스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요하까지, 남쪽으로는 발해와 황하하류를 ..

카테고리 없음 2008.12.22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우리 고대사가 실제 이루어진 곳이 어디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 고대 역사의 현장에 관한 한 아직 정설이 없고 가설만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가설이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이라 정의할 수 있으므로 우리 고대사가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은 아직 정확히 찾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고대사의 현장이 과연 어디인가라는 질문에는 현격하게 다른 상반된 두 주장이 존재한다. 첫째는 한반도를 우리 역사의 중심지로 보고 해석하는 한반도중심설이 있고, 둘째는 발해 서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 지역을 우리 고대사의 중심 강역으로 보는 난하중심설(윤여동설)이 있다. 한반..

카테고리 없음 2008.12.19

윤여동설 - 한반도 역사의 진실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고대역사가 전개되었을까? - 최초주장       필자는 지금까지 고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 지역이라 하였고, 한반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바로 도읍을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서 비로소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로부터 그 이전 한반도에는 어떠한 역사가 펼쳐졌던 것일까?   한반도에도 구석기 유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소량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랜 옛날의 일이라 언급하지 않겠고, 고조선시대쯤부터는 많은 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

카테고리 없음 2008.10.24

역사논쟁 -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순 엉터리 거짓말

박창범은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박창범은 이 시대 최고로 멋진 책이름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의 저자이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는 삼국의 일식 기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 즉 일식최적관측지가 어디인가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고조선시대의 천문현상을 분석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찾아보려 하다가 그것이 기록의 부정확성으로 여의치 않자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삼국사기 속의 일식기록 관측지가 정말로 한반도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 박창범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한반도에 위치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가 한반도로 나타날 것..

카테고리 없음 2008.10.20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일연의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삼국유사가 쓰여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자인 일연이 죽은 때가 84세 때인 1289년이었으므로 그 이전 언젠가 삼국유사를 집필했을 것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삼국이전의 우리 상고사에 대하여 다루지 않고, 오직 삼국시대 만을 다룬데 비해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 왕검조선을 시작으로, 부여, 삼한, 한사군, 삼국과 가야, 후백제와 발해까지를 언급하고 있고, 불교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훨씬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카테고리 없음 2008.06.05

윤여동설 -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한 신라 왕릉의 조성위치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능은 담암사 북쪽(曇巖寺北) 사릉(蛇陵)(박씨)  ☆ 삼국유사에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는 어느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다. 7일 뒤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는데 왕후 역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합해서 장사지내려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오체로서 오릉을 만들고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담엄사(曇嚴寺) 북릉이 이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2대 남해차차웅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박씨) 3대 유리이사금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박씨) 4대 탈해이사금의 능..

카테고리 없음 2008.05.22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신라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신라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양서 신라전(梁書 新羅傳) 신라(新羅)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양나라와는) 서로 1만리쯤 떨어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사람들이 고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도망하여 가자, 마한에서는 동쪽 경계의 땅을 분할하여 주고 그들을 살게 하였는데, 그들이 진(秦)나라 사람이므로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비슷한데,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고(孤), 도둑을 구(寇),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며, 서로를 부를 때 모두 도(徒)라고 하여 마한과 같지 않다. 또한 진한의 ..

카테고리 없음 2008.01.16

윤여동설 - 포석정은 나라의 운명을 점치던 곳이었다?

윤여동설 - 포석정은 나라의 운명을 점치던 곳이었다? 삼국유사 기이 제2 처용랑과 망해사 조를 보면, 신라 49대 헌강왕 때 "왕이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어 보였는데, 좌우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왕에게만 보였다. (남산신이) 춤을 추어 보였고, 왕이 손수 사람들 앞에서 춤을 따라 추었다. 신의 이름을 혹은 상심이라 했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에게 이 춤이 어무상심 또는 어무산신이라 전해지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이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카테고리 없음 2007.12.09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는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삼국사기와는 달리 한 승려가 전국에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비전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상고사로부터 후백제까지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그 다음에 불교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어 우리 고대역사와 불교의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하는데, 그 내용이 정사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역사의 전면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역사 뒷면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우리 역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책을 만든 목적이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찰의 승려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또 일연 개인이 아닌 종단차원에서 삼국유사를 만들었..

카테고리 없음 2007.12.07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세상이 또 한번의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이때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한반도만이 우리 역사의 전부라고 인식하며 웅크리고 살 것인지, 우리 선조들이 내몽골 부근까지를 차지하고 주변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고 경쟁하며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었다고 자부하며 활개펴고 살 것인지 선택해야할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논하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하고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삼국사기는 김부식을 비롯한 고려의 학자들이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에 편찬한 신라· 고구려· 백제 ..

카테고리 없음 2007.12.06

윤여동설 - 한반도 대구는 신라의 달구벌(達句伐)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대구는 신라의 달구벌(達句伐)이 아니다 - 최초주장 신라 31대 신문왕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죽은 문무왕의 장자였다. 따라서 그는 그 아버지 문무왕으로부터 신라본토와 옛 백제 땅 그리고 고구려 남쪽 땅 일부를 물려받아 그 땅을 아홉 주로 나눈다. 넓어진 강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의 신라지역을 나누어 상주·양주·강주라하고, 옛 백제지역을 나누어 웅주·전주·무주라 하며, 옛 고구려 남쪽지역을 나누어 한주·삭주·명주라 한다. 신당서에는 이때 신라의 강역이 횡으로 1천리, 종으로 3천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북성 당산, 진황도, 요녕성 수중, 호로도, 내몽골 고륜기 부근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 북사 신라전에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23

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금주고탑 부근의 금주시 옛사진(1932) :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이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북사 신라전을 보면,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땅이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나라 때의 낙랑 땅(필자주 : 이는 후대 신라가 낙랑 땅의 일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남겨지게 되었다)이다. 진한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사람들이 고역을 피해 그곳으로 오자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분할하여 주어 그들을 살게 했는데, 그들이 ..

카테고리 없음 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