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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0. 18. 08:07

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금주고탑 부근의 금주시 옛사진(1932) :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이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북사 신라전을 보면,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땅이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나라 때의 낙랑 땅(필자주 : 이는 후대 신라가 낙랑 땅의 일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남겨지게 되었다)이다. 진한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사람들이 고역을 피해 그곳으로 오자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분할하여 주어 그들을 살게 했는데, 그들이 진나라 사람이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했다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 조에는 최치원의 말을 인용하여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와 있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수(탁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과 마을을 사탁, 점탁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연나라는 북경 서남쪽 역현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다. 대륙의 연나라 사람들이 한반도 경주까지 피난해 왔다고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연나라와 진한은 그리 멀리 떨어진 곳 일 수 없다.  
   
  구당서 신라전에는,
  "신라는 한나라 때의 낙랑(필자주 : 신라가 진흥왕 때 낙랑 땅의 일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살았다고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땅에 위치하고 있다.........왕이 사는 곳을 금성이라 하는데, 둘레가 7∼8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1에는,
  "신라시조 혁거세는 전한 오봉 원년 갑자에 나라를 세웠는데, 서울 주위가 장(가로)이 3,075보이고, 횡(세로)이 3,018보이며, 35동네, 6부로 되어 있었다.
  국호는 서라벌이라 하였는데, 혹은 사라, 사로, 신라라고 하였다..........혁거세 21년에 궁성을 쌓아 이름을 금성이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북사의 기록과 연결시켜 보면, 그곳이 곧  삼한 중의 진한에 해당되는 곳이었으며, 금성 주위가 가로, 세로 약 2∼3km의 사각형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후한서 한전을 보면,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고,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낙랑


                 마한                     진한    
                (54국)                    (12국)
           
                                          변한
                                          (12국)


                               왜(임나왜를 말하는 듯)

 

  그런데 마한이 지금의  당산,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으므로 그 동쪽에 있었다는 진한은 결국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호로도  부근에 위치했고, 변진 즉 변한은 그 남쪽인 흥성, 산해관 부근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천년 도읍 금성은 한반도의 경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녕성 호로도, 금주(錦州) 부근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나라의 도읍을 해변 항구에 둘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도읍인 서라벌(금성)은 해변에서 어느 정도 내륙으로 들어간 안전한 곳에 위치했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 32대 효소왕 8년(A.D.699) 9월 조를 보면 "동해물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왕도에서 들을 수 있었다(東海水戰 聲聞王都)"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평소에는 파도소리가 들릴 수 없는 바닷가 해변으로부터 어느정도  멀리 떨어진 서라벌(금성)까지 바닷물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기이한 일이라 하여 사서에 기록하여 전했을 것이므로 서라벌(금성)의 위치는 해변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임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 조에는, "신라 전성기에 서울(서라벌 금성)에 17만 8,936호, 1,360방, 55개 동네, 35개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 집에 평균 5명의 식구가 있었다고 본다면 당시 서라벌(금성)의 인구가 89만 4,68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지금 한반도의 경주에서 과연 90만 명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지, 그 만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공간이 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90만 명의 인구가 18만 호의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신라의 건국지 서라벌(금성)일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들을 세밀히 읽고 종합해 보면, 서라벌(금성)은 동쪽, 서쪽, 북쪽은 높은 산맥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남쪽에도 남산이라는 산이 있었으며, 왕성이었던 금성의 서쪽으로는 계림(시림이라고도 한다)이라는 숲 또는 산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여러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다.
 
[서라벌(금성)과 진한 6부의 위치]

 

                                                                    금산 가리촌(북촌)

                                                                        (한기부)

 

                                                                                                      명활산 고야촌(동북촌)

                                                                                                         (습비부)

 


                             (서촌)  무산대수촌                 금성                       알천 양산촌(동촌)
                                        (모량부)                 (서라벌)                           (급량부)

 

 

                                                                                                자산진지촌(동남촌)
                                                                                                     (본피부)


                                                                   돌산고허촌(남촌)
                                                                       (사도부)

     

*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의 진한6부에 대한 기록 중 금산 가리촌의 촌장 지타가 처음에 명활산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금강산에 내려왔다의 오기이고, 또 금산 가리촌이 동촌에 속한다고 한 기록 역시 북촌의 오기임에 틀림없고, 또 명활산 고야촌의 촌장 호진이 금강산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명활산에 내려왔다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산천 조의 기록에 금강산은 부의 북쪽 7리에 있어 북악이라고도 불렀으며, 명활산은 부의 동쪽 11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금성)을 찾으려면 한반도의 경주를 떠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로 가야한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선조들이 옛 신라사람이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자신의 선조가 옛 신라인이요, 고려인 임을 잊어버린 것이다.

  하기야 신라가 역사에서 사라진지 이미 천년도 넘었고, 고려가 멸망한지도 600년이 넘었으니........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금성)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천년 영화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없었다.